『매일 매일 패밀리데이』 / 무피 지음, 송소정 옮김 / 로그인

익숙한 옛이야기 하나만 하자.

가난하지만 서로 깊이 사랑하며 행복한 부부가 있다. 이 둘의 소원이라면 자신들을 닮은 아이 한 명만 있으면 하는 것이다. 부부는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정성으로 기도한다. 아주 무더운 어느 날 지나가던 노승이 물 한 그릇 청해 마시고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그 아이는 나라를 구할 아이군요. 10살 생일을 넘길 수 있다면 말이지요. 부부의 선한 마음과 정성이 가득하니 내 이 자루를 주겠소, 잘 간직하시오. 이 안에 있는 구슬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요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침 그날은 기도한 지 천일이 되는 날이었고, 그날 이후 10개월이 지나 부부에게 귀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부모와 주변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고 그 지혜와 총명함이 갓난아기 때부터 특별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세 식구는 세상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그러나 잘 자라던 아이는 아홉 해 생일을 지나고 조금씩 약해지더니 급기야 몸져눕고는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백약이 무효하고 이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마침 세상 모든 병을 고치는 명약이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런데 그 약은 100일 길을 가야 하는 험한 산속 동굴에 있는 옹달샘 근처에서 돋아나는 풀뿌리라고 한다. 100일 길이 문제가 아니다. 험한 산세도 괜찮다. 허나 옹달샘을 지키는 100년 묵은 지네가 있다고 한다. 그 연유로 지금껏 아무도 그 풀뿌리를 가져올 수 없었다고 한다.

부모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10년 전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노승이 주고 간 자루다. 자루를 열어보니 빨강, 파랑, 노랑의 삼색 구슬이 들어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위급한 상황을 내다보고 아이를 위해 주고 간 것이 분명하다. ‘10살만 넘기면이라는 말을 하며 건네주지 않았던가! 아비는 길을 나서기로 했다. 설령 이 구슬이 그저 구슬에 불과하더라도 더 이상 방법도, 지체도 할 수 없다. 그들은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어차피 자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어미는 아이 곁에서 병시중을 하고, 아비는 결국 험한 길을 떠났다.

모진 고생 끝에 드디어 깊은 산 동굴 앞에 이르렀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음산한 기운과 한기가 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동굴 속으로 발을 딛는다. 동굴 깊은 곳, 정말 옹달샘이 있었고 그 옆에 신비롭고 영롱한 풀이 자라고 있다. 정말 먹으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풀이다. 허나 풀에 가까이 다가가니 집채만 한 검은 물체가 있다. 풍겨내는 냄새도 아주 역하다. 자세히 보니 지네인데 호랑이도 삼킬만하다. 다행히 잠을 자고 있다. 숨을 죽이며 다가가 조심스럽게 살살 흙을 파서 풀을 캤다. 아이를 살릴 약초가 손에 있다.

이때 지네가 잠에서 깨어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무조건 동굴 밖으로 뛰기 시작했다. 점점 지네의 날름거리는 혀가 느껴진다. 잡혀 죽기 직전이다. 순간 구슬이 생각났다. 손에 잡힌 노란 구슬을 던지자, 구슬이 깨지면 흙과 바위가 지네 위에 쏟아진다. 지네가 흙에 묻혔다. 안도의 숨을 쉬는데 흙이 들썩거리며 지네가 움직인다. 다시 다가오는 지네를 향해 파란 구슬을 던진다. 구슬이 깨지며 차가운 한기가 지네를 덮치고, 곧 얼게 만든다. 동굴 입구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네가 여러 번 꿈틀거리자, 얼음은 떨어져 나가고 지네가 다시 다가온다. 이제 마지막인가? 온 힘을 다해 남은 빨간 구슬을 냅다 던진다. 정통으로 지네를 맞춘 구슬은 깨지면서 지네 몸에 불을 붙인다. 화염에 휩싸인 지네는 몸부림을 치지만 맹렬한 불은 결국 지네를 완전히 태운다. 타버린 지네를 자세히 보니 지네는 사라져 없고 100년 묵은 산삼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산삼과 약초를 구해 온 덕분에 아이는 건강을 되찾고 후에 나라를 덕으로 잘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다나 뭐라나.

추억은 인생을 살면서 꺼낼 수 있는 신비한 구슬이다. 특별히 별거 아닌 경험과 추억일지라도 사랑하는 부모와 함께 한 추억과 경험들은 역경 앞에 언제든지 꺼내 던질 수 있는 신비로운 삼색 구슬이다. 돈과 시간을 내어 얻을 수 있는 추억도 있겠지만 아빠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랑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추억이 관계를 살찌우고 풍성하게 한다. 돈과 시간만 있다면 제주도에서 낯선 아저씨가 끌어주는 조랑말을 탈 수 있다. 그러나 늘어진 속옷, 헐렁한 반바지 차림에 태워주는 말놀이는 사랑하는 아빠기에 가능하다. 아무것도 아닌 매일 저녁 10분의 놀이를 아이는 기억하고 훗날 추억한다. 힘들 때, 그리울 때, 용기가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두려움을 주는 그 무엇을 향해 던질 수 있는 신비한 구슬이다.

일본 엄마 무피 작가의 만화, 매일매일 패밀리데이!는 행복한 가족 만들기를 위한 행복 레시피다. 99가지의 간단한 놀이를 소개한다. 오늘 당장, 지금 바로 할 수 있다. 특별히 무더운 여름, 집 나가면 고생인 휴가철. 매일매일 패밀리데이!에 소개된 몇 가지만 아이들과 해보자. 즐거울 뿐 아니라 행복이 흔들릴 때, 힘을 얻고 싶을 때, 용기가 필요할 때 던질 우리 집만의 신비로운 삼색 구슬이 마구마구 생길 것이다.

 

남태일(언덕위광장 광장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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