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소설 비, 근대건축관, 동국사, 근대미술관-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근대문화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군산에 다녀왔습니다. 군산은 조선 후기 개항부터 일제의 국권 침탈 그리고 식민 지배까지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이를 활용하여 설명까지 해주는 기념관, 박물관, 문학관 등이 조성되어 있어 관광과 역사 공부를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예전 민족문제연구소 본부에서 12일로 답사를 추진했는데 참여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습니다. 짧은 오후 일정으로 왔기에 군산항을 접하고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장미동, 월명동을 중심으로 답사했습니다.

 

첫 번째, 채만식 소설 비()

가장 먼저 마주한 유적이 채만식의 소설 비였습니다. 채만식은 군산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우리에게 태평천하, 탁류등으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성과 때문인지 군산에는 소설 비 외에 월명공원에 문학비, 내흥동에 채만식문학관, 임피면에 채만식 도서관 등이 있습니다. 소설 비는 채만식의 일생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동시에 문인으로서의 재능과 성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작가 가운데 가장 투철한 사회의식을 가진 사실주의 작가의 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라고 끝을 맺고 있는데 위의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채만식은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문인으로서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일제에 맞서 문학 활동을 하지 않고 부역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 친일 인명사전 문학인 52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비 그 어디에도 친일 행적에 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군산시라는 공공기관이 채만식의 일생을 왜곡하는데 앞장서는 꼴입니다. 군산시는 채만식의 일생을 가감 없이 모두 설명하는 자료를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제공해야 하며 채만식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제대로 된 자료와 설명 제공 없이 평가와 판단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채만식 소설 비
채만식 소설 비

 

두 번째, 군산 근대건축관

근대건축관은 ()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일제의 침탈부터 수탈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는 군산 답사의 핵심 박물관입니다. 이곳을 통해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의 자본 수탈, 일본인들의 이주, 경제 상황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는데, 192014.6%였던 수탈량이 1933년에는 53.4%까지 상승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생산량은 많이 증가하지 않았으나 반출량은 급속하게 증가하였으니 수탈이 무리하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농지가 일본인들 손에 넘어갔습니다. 일본에서 넘어와 우리나라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싼 가격으로 농지를 구입하여 농장주가 되었습니다. 군산의 대표적인 일본 지주가 구마모토인데 이 사람이 소유한 농지 면적이 35백 정보였다고 합니다. 여의도 면적에 10배가 넘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1526개 면에 걸쳐있었다고 하니 이 당시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의 고단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화폐, 시대의 변화에 따른 군산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 등을 모두 볼 수 있으며, 특히 군산 공회당, 군산역사, 군산 부정, 일본인 가옥 등 희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공회당(公會堂)을 옛날 신문상으로만 봐서 어떤 곳인지 이해를 잘하지 못했는데 군산 공회당을 통해 우리 부천지역의 소사 공회당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군산 근대건축관
군산 근대건축관
군산항의 쌀 반출 추이
군산항의 쌀 반출 추이
군산 공회당 모형
공산 공회당 설명 글
공산 공회당 설명 글

 

공회당은 상공회의소의 전신으로 소사공회당에서 이루어진 행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사산업조합 정기총회(1935124일 경성일보), 양계강연회(1939129일 매일신보), 가절맞아 공적표창(1939215일 매일신보), 부천유도회 결성식(19391217일 매일신보), 소사지급전화추첨(1940111일 매일신보) 등이 있었는데 이러한 행사와 사업은 모두 일제 지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사람들의 표창 수여와 수탈 그리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동국사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1909년 우치다(內田佛觀)를 비롯해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들이 금강선사(錦江禪寺 긴코젠지)란 이름으로 군산에 포교소로 개창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13년에 현 위치로 옮겨와서 완공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국사는 군산에 거주하는 일본인 신자들을 위한 사찰로 기능하였는데 해방 이후에는 소유가 정부로 이관되었다가 1970년 대한불교조계종 24교구 선운사에 증여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방문할 때는 기와 교체 작업으로 인해 가림막이 쳐져 있어 전체를 볼 수 없었습니다. 경내에는 2012년 일본 조동종이 세운 참회의 비석과 2015년에 세워진 소녀상이 있어 식민 지배와 강제 동원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치유 과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국사 가까운 곳에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과 군산항쟁관이 있습니다. 특히 군산은 전북지역에서 3.1운동이 최초로 일어난 곳으로 35일 독립 만세운동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민족항쟁 의식이 높은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국사
동국사
동국사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박준수 군(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어린이 회원)
동국사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박준수 군(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어린이 회원)
동국사 경내에 세워진 소녀상
동국사 경내에 세워진 소녀상

 

네 번째,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근대미술관은 옛 일본 제18 은행군산지점으로 지금은 리모델링하여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방문할 당시 ‘Re-turn’이라는 주제로 손 석 작가의 작품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뒤편에는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여순감옥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여순감옥 전시관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일생과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의거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년부터 옛날 신문을 통해 부천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천은 도시화와 개발로 인해 대일항쟁기 유적과 건축물이 없는 상황이라 이해가 쉽지 않았는데 군산을 통해 부천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역사와 유적을 역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군산이 부러웠습니다.

부천시는 일제 잔재에 관한 연구와 함께 대시민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동시에 식민 지배와 강제 동원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의 행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를 배우지 않고 잊으면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건축물을 활용해 만든 군산 무궁화 식당
일제강점기 건축물을 활용해 만든 군산 무궁화 식당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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