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박 간병 일지』 / 미아오 지음, 박지민 옮김 /이덴슬리벨

코로나 이전 부산에서 뭉친 이후 처음이다. 급하게 서로 연락을 하고 시간을 맞췄다. 거래처 상담도 앞으로 뒤로 조정하면서 겨우 시간을 정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일 장소가 가까운 곳이라는 점이다. 대전 이남이었으면 아마 여러 형편상 각자 일정에 따라 방문해서 스치듯 흔적만 겨우 볼뻔했다. 맞다.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살가운 친구들이지만 이곳저곳에 흩어져 바쁘게 살아가느라 큰일이 아니면 전체가 다 모이기 쉽지 않다.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친구들의 얼굴을 본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묻어나는 우리다.

친구 어머니 영정에 예를 올리고 친구들과 둘러앉는다. 혈기 왕성한 청년 시절에 만났는데 어느덧 우리가 만났던 그 시절, 우리를 닮은 자녀들이 있다. 결혼식을 할 때마다 우르르 몰려다녔고, 돌잔치는 또 얼마나 즐겁게 다녔는가? 종종 조부모님의 장례식도 갔지만 조부모님은 아주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 때가 지나고 나니 죽음과 장례가 한걸음에 훅하고 달려와 옆에 서 있다. 우리 모두 연로한 부모님이 계신다. 부모님의 죽음이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구나 싶다.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나면 결국 그다음은 우리의 차례가 되겠지. 그때는 마주 앉아 잔을 나누던 친구를 그리워하며 사진 속에 웃는 얼굴로 만나겠구나 싶다.

쉰이 훌쩍 넘은 중년 아저씨, 아줌마이니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구동성으로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정말 없단다. 혈압, 당뇨, 복부비만, 심혈관 질환 등 염려하는 내용이 거기서 거기다. 예방부터 치료, 한방에서 양방을 넘어 효과 있는 민간요법까지 정보가 넘치고 넘친다. 이야기만 들으면 건강하게 백 살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서 진심으로 친구의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상주 친구가 문상객을 맞다가 잠시 짬을 내서 왔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몇 년 전부터 폐가 굳어지는 질환이 있으셨단다. 해서 오래 사시지는 못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급히 돌아가실지는 몰랐다고 한다. 이제 겨우 일 년 정도 투병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투병이라는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쉰다. ‘병을 고치려고 병과 싸운다라는 투병, 그 말이 가지고 있는 고단함,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누군가 병시중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고, 안타깝지만 우리 역시 병시중을 받아야 할 때가 올지 모른다. 인생의 한 지점에서 얼마든지 이런 시간을 겪을 수 있다. 그런 시간이 온다면 어쩌지? 피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인생의 다섯 가지 복, 소위 오복이라고 일컫는 복이 있다. 문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장수(長壽), (), 강녕(康寧) 등이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장수다. 허나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장수는 아닌 것 같다. 장수 앞에 무병(無病)이 붙어야 진짜 복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무병장수의 복을 누리면 좋겠다. 그러나 모두가 무병장수를 누릴 수 있다면 더 이상 이라고 말하지 않겠구나 싶다. 해서 죽음보다, 장수보다 더 간절한 것은 무병하면 좋겠다. 아프고 아프다가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싶지는 않다. 더구나 각자도생, 각자도사의 사회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나의 독박 간병 일지』 표지
『나의 독박 간병 일지』 표지

 

나의 독박 간병 일지는 대만 친구가 그린 만화다. 엄마의 투병을 위해 싱가포르로 거처를 옮겨 병시중했던 내용을 그렸다. 다행히 잘 치료되어 간병 생활에 대한 위로를 받았다 싶었는데 사랑하는 아빠, 작가에게 슈퍼히어로였던 아빠의 췌장암 발병과 투병에서 마주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끝내 아빠는 돌아가셨고, 간병 기간 지친 자기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동시에 아빠에 대한 마음을 회복하며 그린 만화이다. 글에 담지는 못했지만, 간병하면서 겪는 가족 간의 미묘한 갈등, 애쓰고 수고하는 자신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상처와 속상함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스스로를 잘 돌보기를 통해 긴 병에 효자는 못 되어도 자신다움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 준다.

30분 만에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간병은 쉽지 않다, 아니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싶다. 한 개인, 한 가정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사회가 나서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전히 부족하지만) 다양한 혜택이 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일평생, 이 땅에서 수고한 분의 지구별 여행 마무리도 우리 사회가 나서서 돌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말이다.

 

남태일(언덕위광장 광장지기)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