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지속협과 함께 하는 부천둘레길 6구간 48Km 모니터링
-1코스 향토유적숲길 두 번째 구간(부천식물원–원미산–소사역)

한때, 산에 심취해 주말만 되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이산 저산 크고 작은 산을 헤매고 다니면서 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하나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소일을 위해, 또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른다고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것 외에 좀 더 고상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영국인 조지 리 맬러리의 대답은 오늘날 산에 관한 최고의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으나 한갓 정복자의 궤변일 뿐이다.

우리 선조들은 산을 배움과 자기 수양의 공간으로 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산이 갖는 덕은 참으로 크고도 위대하다. 산은 자애로우니 만물을 생육하고, 산은 지혜로우니 스스로 변화에 대응하며, 산은 준엄하니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기개가 있다. , 산은 천 리 밖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지녔고,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그 공덕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을 지녔다.

사람으로 말하면 현인 중의 현인이요, 군자 중의 군자다. 그 현인군자의 덕을 가슴에 품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라면 참으로 훌륭한 답변이 될 수 있겠다고 좋아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무슨 고상한 철학자도 아닌 바에야 이런 대답은 너무 무겁다.

 

새로 설치된 원미산 전망대에 선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새로 설치된 원미산 전망대에 선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조선 정조 때 문인 이옥(李鈺)은 이른바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최대 피해자다. 그는 성균관 유생 시절 명청 소품(소설이나 수필류)에 심취해 당송 고문(古文)에 반기를 들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정조는 그에게 두 번이나 충군(充軍) 명령을 내렸는데, 충군이란 지금으로 말하면 군대에 징집되어 가는 것으로 당시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 양반에게는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이로 인해 이옥은 출세에 대한 욕망을 접고 고향 집에 칩거하였으나, 정조의 거듭된 핍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문체를 지켜냈으니, 이는 곧 우리 근대문학 태동에 필요한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런 이옥이 성균관 유생 시절, 북한산을 유람하며 쓴 중흥유기(重興遊記)』 「총론에는 시 형식을 빌려 아름답다라는 뜻의 자를 무려 51번이나 사용했다. 비록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단지 아름답다라는 말만으로 산을 오르는 목적을 설명하기에는 이 또한 너무 가볍다.

 

베르네천 발원지인 ‘칠일약수터’ 모니터링
베르네천 발원지인 ‘칠일약수터’ 모니터링

 

이쯤해서 존재(存齋) 박윤묵(朴允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조선 정조 때 위항시인 박윤묵은 북한산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인물이다. 어느 가을 친구들과 단풍구경을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병이 나서 못 가게 되자 그 아쉬움을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했다.

벗님네들, 누가 단풍나무 한 그루 그려서 / 나에게 보내주오 / 한번 보면 눈이 맑아지고 / 두 번 보면 가슴이 맑아지며 / 세 번 보면 나도 단풍나무가 되어 / 의연히 백운대 아래 서 있으리니”(존재 박윤묵의 한북풍수가중에서)

존재 박윤묵의 시를 접한 이후, 무엇 때문에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 그루 단풍나무가 되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준비해 놓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없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지난달 23(), 부천지속협 모니터링단과 함께 원미산 코스를 걸으며 느꼈던 단상을 잠깐 적어보았다. 주말이기도 하고 또 추석 명절을 앞둔 가을이라서인지 둘레길에는 이용객들이 제법 많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고, 이어폰을 꽂고 묵묵히 길을 걷는 사람도 있고, 건강에 좋다는 소문 때문인지 맨발로 조심조심 돌길을 걷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며 한껏 자연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한때는 산에서 음주가무가 일상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라디오 볼륨을 한껏 올린 채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이용객은 아직도 가끔 눈에 띈다. 그런 분들에게 한 그루 단풍나무가 되어 보라는 말은 차마 하기 어렵지만, 단풍나무가 되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제발 좀 자제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드린다.

 

봉배산 산불감시초소
봉배산 산불감시초소

 

언젠가 장난삼아 산을 대하는 바른 자세라는 시를 쓴 적 있는데, 정말이지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라디오 볼륨을 올리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원미산은 해발 167m의 낮은 산이다. 하지만 정상에 서면 동서남북으로 관악산, 소래산, 계양산,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미(遠美)라는 이름은 우리말 먼 뫼(먼 산)’의 차자 표기라고 하는데, 지금 계양산 아래 있는 부평 관아에서 멀찍이 보이는 산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방 먼 곳까지 다 보이는 산으로 정의하고 싶다.

면적은 좁은데 이용객은 많아서 원미산 등산로는 말 그대로 만신창이(滿身瘡痍). 곪고 터지고 붓고 덧난 상처를 외면한 채 산길을 걷자니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든다. “산아, 미안해~” “산에 사는 모든 생명들아, 미안해~, 미안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원미산 정상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낡은 정자를 보수하고, 이정표를 세우고, 전망대를 만들고, 계단을 설치하고, 체육 시설을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을 위하는 일이다. 오늘도 원미산 오색딱따구리는 제발, 내 집에서 나가줘~”라며 큰소리로 시위를 한다.

 

산을 대하는 바른 자세

산 아래 설치되어 있는

에어브러시는

산을 내려올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애써 산에서 축적한

아름다운 꽃향기와 싱그러운 나무의 감촉

정답게 지저귀는 새 울음소리와

맑은 물의 기운을

털어내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산을 오르기 전에 먼저

170센티미터의 키와

80킬로그램의 몸무게와

160밀리미터 에이치지의 혈압을 가진

한 남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리고 그의 네 가족과

다섯 마리의 고양이를 몽땅 털어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깃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산을 오르라는 뜻이다

 

산 아래에서 신었던 구두와

산 아래에서 입었던 양복은

잠시 그곳에 벗어두어도 좋다

 

-현해당 시 산을 대하는 바른 자세전문

 

 

이종헌(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원미산 오색딱따구리(사진 출처 김동숙 활동가 블로그 「숲뭉치」)
원미산 오색딱따구리(사진 출처 김동숙 활동가 블로그 「숲뭉치」)
이름 모를 등산객이 써놓은 '소사역 방향' 표시
이름 모를 등산객이 써놓은 '소사역 방향' 표시

 

부천지속협 함께 하는 부천둘레길 6구간 48㎞ 모니터링(3차) 안내
일시 : 10월 14일 토요일 9시~12시
집합장소 : 서울신학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주차장 
코스 : 서울신학대학교(백주년기념관 주차장 집합출발) - 하우고개 - 마리고개 - 성주중 - 송내역(도착)
♧봉사시간 2시간 받고 환경도 살리고 줍깅 환경정화운동 환경캠페인 행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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