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비탈길을 오르자 정상이다. 작은 언덕 같다. 육지는 이미 꽃이 다 졌는데 섬은 이제 한창이다. 꽃이 늦게 핀다는 이름의 만화도(晩花島), 이름이 괜한 게 아니었나 보다. 연분홍색의 복숭아꽃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고 벚나무가 꽃잎을 눈처럼 털어내자 일행이 환호한다. 꽃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 걸까.

잠깐 피었다 지는 꽃을 눈처럼 맞으며 아래로 내려가니 소나무와 나지막한 나무들 사이로 오솔길이다. 하얀 꽃에 향기가 짙은 찔레나무 순을 꺾어 입에 넣는다. 풀냄새에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닝닝한 맛의 찔레를 어릴 때 손에 가득 꺾어 허기를 달랬다. 옛 생각을 하며 걷는데 길옆에 가느다란 잎들이 보인다. 분명 달래다. 야생 달래를 보는 건 몇십 년만이다. 손가락으로 흙을 파니 동글동글한 하얀 뿌리가 수염 같은 뿌리를 길게 달고 나온다.

어느 해 이른 봄이었다. 아침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가 밖에 나갔다 오시더니 동네 아주머니 몇 명이 달래를 캐러 간다고 하신다. 식물도 잘 자라는 곳이 따로 있어 그곳은 달래가 많다고 했다. 나도 호미와 다래끼를 챙겨 아주머니들을 따라갔다. 언덕을 넘고 사래가 짧은 밭들이 있는 골짜기를 지나 산을 올랐다. 산 중턱도 가지 못해 땀이 나고 힘이 들었다. 괜찮은 척했다. 산마루까지 두어 번 쉬고 다음은 내리막길이다. 산 너머는 응달이라 아직 땅이 얼었다.

산을 더 내려가자 산비탈 바닥에 작은 밭들이 나타났고 우린 호미질을 했다. 땅은 몸을 열지 않아 호미가 튕겨 나왔다. 서릿발만 하얗다. 아줌마들은 이제 햇살이 들면 금방 녹을 거라고 했다. 미처 녹지 않은 땅을 큰일 집에 개 어리대듯 이쪽 한 번 긁고 저쪽을 한 번 파도 찾는 달래는 보이지 않았다.

이 밭에 뭐 심은 건 아니겠지?”

아주머니 한 분이 밭을 살피며 말했다.

이렇게 일찍 뭘 심었겠어. 호미도 안 들어가는데.”

그래도 잘 살펴봐, 혹시 가을에 씨 뿌려 놓은 게 있으면 안 되니까

농사를 짓는 분들이라 빈 벌판 같은 밭에 신경을 쓰셨다. 밭을 유심히 보던 사람들은 약재로 쓰는 시호가 가끔 보인다며 아마 지난해 캤나보다 했다.

 

전남 장흥 선학동 봄 풍경
전남 장흥 선학동 봄 풍경

 

햇볕이 내리쬐자 땅은 호미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고 빨갛게 올라오는 달래가 보였다. 머리카락같이 가늘어 잘 보이지 않던 게 한 번 눈에 익으니 자주 보였다. 여기저기 다닐 필요도 없었다. 김을 매듯 앞으로 나가면 달래가 동글동글 하얀 얼굴을 내밀었다. 이렇게 많은 달래는 처음 본다며 모두 신이 났다. 처음에는 얼마나 캘까 싶었는데 달래 캐는 재미가 쏠쏠했다. 호미질이 서툴고 땅에 붙어 잘 찾지 못하던 나도 다래끼를 가득 채웠으니 아주머니들은 말할 것도 없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산을 넘은 보람이 있었다. 모두 만선을 한 어부처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산 중턱쯤 올랐을 즈음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한 남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가까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중학교 때 나와 같은 방에서 자취하던 친구 아버지였다. 친구 아버지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벌컥 화를 내며 손해배상을 하란다. 아니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단다. 아줌마들은 의아한 표정이다.

밭에는 지난가을에 시호를 뿌려 놓았단다. 시호는 한 번 심으면 3년 있다가 캐는데 다 파헤쳐놓았으니 몇 년 농사를 망쳤단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겁도 났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도 친구 아버지라 조금 안심도 됐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후 친구 아버지는 내려갔고 우리는 걱정의 무게를 더해 산을 올랐다. 조금 전의 즐거움은 어디 가고 모두 표정이 어둡다. 달래의 무게보다 걱정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다시 올라온 산마루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일이 이렇게 시원하게 마무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에는 달래를 이고 가슴에는 걱정을 한 보따리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동네 아저씨들이 다시 산을 넘어 밭 주인을 만나 얼마의 보상을 해 주었다. 불같이 화를 내던 밭 주인도 나를 봐서 이 정도로 끝낸다고 했다.

처음으로 나물 캐러 원정을 가서 호미 끝에 나오는 희열을 느꼈으며 그만큼 마음고생을 했던 달래다. 그 후 마을에선 산 너머로 달래 캐러 가는 일은 없었다.

섬은 달래가 지천이다. 도구도 없이 손가락으로 캔 달래가 손안 가득했다. 사람들도 나처럼 파란 봄을 움켜쥐었다. 주위가 온통 향긋한 냄새로 가득하다.

이 섬에도 누가 달래 씨앗을 뿌린 건 아니겠지?

 

허윤설(수필가)

허윤설 작가
허윤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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