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평화 재단 부천 본부가 부천시 평화통일 기반조성 지원사업의 하나로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DMZ 평화누리길 걷기행사에 다녀왔다. 올해, 2023 평화누리길 걷기는 지난 107일부터 시작해 1118일까지 4차에 걸쳐 진행되며, 이번 2차 행사에는 허원배 남북 평화 재단 부천 본부 이사장을 비롯한 38명의 참가자가 함께했다.

1021() 아침 8, 부천시의회 앞 도로를 출발한 버스가 철원 역사문화공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 아침에 한바탕 쏟아진 소나기 때문인지 철원의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다.

 

철원 노동당사 앞에 선 남북 평화 재단 부천 본부 ‘2023 DMZ 평화누리길 걷기’ 2차 답사단
철원 노동당사 앞에 선 남북 평화 재단 부천 본부 ‘2023 DMZ 평화누리길 걷기’ 2차 답사단
수리 중인 철원노동당사. 1946년 북한 조선노동당에서 세운 러시아식 건물로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리 중인 철원노동당사. 1946년 북한 조선노동당에서 세운 러시아식 건물로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철원은 강원도 고성군과 마찬가지로 남북으로 분단 된 군()에 속하며 일제강점기에는 경원선과 금강산 선이 교차하는 한반도 중심부 교통의 요충지로 크게 번성했던 상업 도시였다. 일제 말 철원읍 인구는 8만이었고 은행 2개와 여고, 도립병원도 있었는데 현재 철원읍 인구는 그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철원도호부조에는 철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본래는 고구려 철원군(鐵圓郡)이다. 모을동비(毛乙冬非)라고도 한다. 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철성군(鐵城郡)이라고 고쳤다. 뒤에 궁예(弓裔)가 송악군(松嶽郡)에서 이곳으로 와서 도읍을 정하고, 궁실을 지어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이라고 하였다. 고려 태조가 즉위하게 되어서는 수도를 송악으로 옮기고, 철원을 동주(東州)로 고쳤다.”

소이산(所伊山)은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그 이름이 보인다. 해발고도 362.3m의 낮은 산이지만, 흡사 부천의 원미산처럼 정상에 서면 넓은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내의 백마고지(백마산), 김일성 고지(고암산), 그리고 그 건너편으로 북한 지역의 평강고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에는 함경도 경흥에서부터 회령-길주-함흥-영흥-안변-철원-영평-한성[목멱산]으로 연결된 제1로 봉수대가 설치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며,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 레이더기지로 운용되면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다.

 

대동여지도 속 철원과 소이산
대동여지도 속 철원과 소이산
소이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 소이산 모노레일은 왕복 1.8KM로 운영되며, 소이산 재송평의 황금들녘을 관람 할 수 있다.
소이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 소이산 모노레일은 왕복 1.8KM로 운영되며, 소이산 재송평의 황금들녘을 관람 할 수 있다.
소이산 지뢰꽃길
소이산 지뢰꽃길
지뢰 표지판과 모을동비 동인들의 시
지뢰 표지판과 모을동비 동인들의 시
정춘근 시인의 「지뢰꽃길」 시비 앞에 선 남북평화재단 부천본부 허원배 이사장
정춘근 시인의 「지뢰꽃길」 시비 앞에 선 남북평화재단 부천본부 허원배 이사장

 

2012년에 이르러서야 철원군은 이곳에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라는 총 4.8의 탐방 길을 조성했는데 길은 각각 지뢰꽃길[1.3], 생태숲길[2.7], 봉수대 오름길[0.8]로 구성되어 있다.

철원 출신 정춘근 시인의 지뢰꽃이라는 시에서 유래된 지뢰꽃길은 이곳이 지뢰매설지역이라는 군부대의 경고판과 함께 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철조망, 그리고 그 철조망에 매달린 붉은색의 지뢰팻말과 이름 모를 시인들의 시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철조망과 지뢰가 전쟁의 상흔이라면 시는 그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민초들의 설움이요 한 맺힌 절규가 아닐까?

생태숲길과, 봉수대 오름길을 지나 소이산 정상에 오르니 광활한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좌측으로는 1952106일부터 1015일까지 한국군과 미군이 중국인민지원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백마고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10일 동안 12차례의 공방전이 펼쳐진 백마고지 전투는 중공군 1만 명, 한국군과 미군 3,500명의 사상자를 내며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전망대 가운데로는 멀리 북녘땅의 고암산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관광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백마고지를 잃었다는 보고를 받은 김일성이 그곳 고암산에서 사흘간이나 통곡했다고 하며 그래서 고암산을 달리 김일성 고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소이산 봉수대 오름길
소이산 봉수대 오름길
소이산 정상 지하 교통호 입구
소이산 정상 지하 교통호 입구
소이산 전망대에 선 남북 평화 재단 부천 본부 ‘2023 DMZ 평화누리길 걷기’ 2차 답사단
소이산 전망대에 선 남북 평화 재단 부천 본부 ‘2023 DMZ 평화누리길 걷기’ 2차 답사단
소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철원평야. 좌측으로 백마고지(1)와 고암산(2)이 보인다.
소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철원평야. 좌측으로 백마고지(1)와 고암산(2)이 보인다.

 

소이산 정상에서 내려와 철원 노동당사까지는 상허 이태준의 촌뜨기길이 펼쳐진다. 상허 이태준은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월북 작가로 1904년 이곳 철원읍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설 촌뜨기19343, 농민순보에 발표한 작품으로 주인공 장군이가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마을을 떠나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장군이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안악굴(용담) 외진 오막살이에서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산짐승을 잡아 연명한다. 가난하지만 밥은 굶지 않고 살았는데 일본 경찰이 화전과 숯 굽기, 사냥을 금하면서 생계가 막막해졌다. 마침 사냥을 나온 순사부장이 장군이가 몰래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장군이는 스무날이나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 것이었다.

유치장에서 나온 장군이는 안악굴에서는 살길이 막막하여 마을을 떠날 결심을 한다. 2년을 기한으로 아내는 당분간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은 도시로 나가 돈을 벌어 농사지을 밑천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이틀 후,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장군이는 읍내로 향하고, 장군이의 아내는 친정으로 향한다. 장군이는 비록 못생기고 밉기만 한 아내이지만 헤어지기가 아쉬워 아내를 다시 불러 읍내로 데려가 아내가 좋아하는 이차떡[인절미]을 사 먹인 후 헤어진다.

철원군은 지난 2016년 장군이가 유치장에 갇혔던 철원경찰서, 장군이가 실랑이하던 철원읍사무소, 안악굴 이웃들과 이별하는 언덕, 선왕댕이(성황당), 아내와 이별하는 율이리 삼거리, 아내와 이차떡을 먹던 떡전거리, 아내와 이별하는 관전리 길 등 5.4촌뜨기길을 조성하였다.

문득 소설 촌뜨기속 장군이의 독백이 자꾸만 입안에서 맴돈다.

내길래 그래두 떠나 본다, 너이는 지냈니, 암만 기들을 서보렴. 몇 해나 견디나.”

촌뜨기길 표지판
촌뜨기길 표지판
철원 DMZ 평화의 길 철원노동당사~학저수지 코스
철원 DMZ 평화의 길 철원노동당사~학저수지 코스
철원 DMZ 평화의 길 철언노동당사~학저수지 코스
철원 DMZ 평화의 길 철언노동당사~학저수지 코스
화개산 도피안사 일주문
화개산 도피안사 일주문
국보 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223호 삼층석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참가자 부부
보물 제223호 삼층석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참가자 부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철원노동당사를 출발해 학저수지까지 약 6철원 DMZ 평화의 길을 걸었다. 중간에 잠시 들른 도피안사(到彼岸寺)에는 국보 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 삼층석탑이 전쟁의 와중에도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에 위치한 학저수지는 옛날부터 학이 많이 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21년 일제가 설비하였다가 광복 후 중앙농지개량조합이 보수 확장한 인공 저수지이다. 다량의 수생식물과 어종이 서식할 뿐만 아니라 철새들의 휴식처로도 유명하다.

서걱이는 갈대와 군데군데 무리 지은 연잎에 감탄하며 학저수지 수변 길을 걷고 있으려니 저녁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물비늘 사이로 수천수만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오리 떼의 군무가 장관이다.

 

학저수지. 멀리 오른쪽에 우뚝 솟은 산은 금학산이다.
학저수지. 멀리 오른쪽에 우뚝 솟은 산은 금학산이다.
학저수지의 갈대
학저수지의 갈대
새들의 군무
새들의 군무
새들의 군무(출처 철원문화원)
새들의 군무(출처 철원문화원)

 

문득 황순원의 단편소설 이 떠오른다. 38 접경 이북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은 어린 시절 단짝 친구인 성삼이와 덕재 이야기를 통해 남북이 이데올로기적 갈등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남쪽 치안대원인 성삼이는 농민 동맹 부위원장을 했다는 이유로 잡혀 온 덕재를 호송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 함께 했던 학 사냥을 떠올리며 결국 덕재를 풀어준다.

걷기를 마친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뉴스를 검색해 보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소식이 긴박하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와 그 땅에서 울부짖는 생명들의 절규를 접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피해자는 결국 힘 없는 민초 아니던가?

2023 평화누리길 걷기 3차는 오는 114(), 강원평화누리길 2코스 두루미 머무는 길, 4차는 1118(), 강원평화누리길 7코스 한묵령길을 각각 걸을 예정이다.

 

이종헌(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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