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저에게 최고의 스승이셨습니다

가을입니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문득 낙엽 · 단풍 · 버버리코트등의 단어가 생각납니다. 오래 전 노트를 보니 울지 않아도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건 왜?”라는 낙서가 적혀 있기도 하네요.

생각나는 노래가 있으신가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라는 최백호의 노래도 생각나고, 바리톤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도 떠오릅니다. 이럴 땐 혼자 노래방에 가서 좋아하는 가을 노래나 실컷 불러보는 건데 말입니다.

좋아하는 시가 있으신가요? 학창 시절엔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구르몽의 시가 멋져 보였는데, 지금은 왠지 영랑 김윤식의 -매 단풍들것네라는 시가 더 가슴에 와닿습니다.

-매 단풍들것네 / 장광에 골불은 감닢 날러오와 /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 -매 단풍 들것네

모든 게 순간이고 모든 게 찰나임을 말해주는 듯 엊그제 푸르던 나뭇잎이 어느덧 붉게 물들어 갑니다. 대자연의 섭리와 위대함을 느끼기에 단풍만 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가을만 되면 산으로 들로 단풍을 찾아 나서는가 봅니다.

이번 호 콩나물신문 더 피플의 주인공은 수필가 김태헌입니다. 김태헌 수필가는 학창 시절에 키웠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글쓰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비록 늦은 나이지만 일곱 형제의 장남으로, 또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서 짊어졌던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비로소 어린 시절의 꿈을 좇아가는 그의 모습이 시월의 붉은 단풍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김태헌 수필가님, 안녕하세요. 최근 정읍 상춘문학상, 울주이바구 공모전, 영광 강항문화제 대한민국 K-문예제전등에서 연거푸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먼저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글은 쓸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상 소식을 들으면 기쁘고 기분 좋지만, 수상작을 읽어보면 실수했거나 아쉬웠던 부분이 눈에 먼저 보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쓴 글을 평가받는다는 것은 두렵다고 생각합니다. 공모전의 경우에 자유 주제도 있지만, 주최 측에서 제시한 정해진 주제를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과해야 하기에 늘 신경이 곤두섭니다. 토씨 하나에 의미가 달라지기에 진지하게 살펴보고 퇴고했던 과정이 떠오르죠. 상 받는다는 자체가 영광이지만, 제가 제대로 글을 쓰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삼습니다.

 

울주 간절곶 해변에 선 김태헌 수필가
울주 간절곶 해변에 선 김태헌 수필가

 

위 상 외에도 지난 2년 동안 전국 공모전에서 많은 수상을 하셨습니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하였는데, 미뤄놓았던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2021년에 처음으로 공모전에 도전하였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주관하는 제20회 공무원 연금문학상(공무원연금공단이사장)과 산림문화작품 공모전(산림조합중앙회장)에 수필을 응모하여 상을 받으면서 용기를 냈습니다.

지난해에는 제 삶의 이력서 같은 초록등대라는 제목의 수필을 응모하여 제10회 등대문학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평택사랑 전국 백일장 장원(평택시장상), ()충무공김시민장군 추모사업회 주관 전국 통일문예작품 공모전 최우수상(충남도지사상), 대한민국독도문예대전 특선(경북예총회장상), 경기수필공모 대상(경기한국수필가협회), 한국디지털문학상 공모전에서 은상(한국디지털문인협회)과 순천스토리텔링 전국 공모전 우수상(순천문화재단)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글로벌문학상(글로벌뉴스통신), 허암예술제 전국 백일장 공모전(인천광역시 서구문화원), 코벤트가든문학상(강원경제신문), 울주이바구 공모(울주문화재단), 상춘문학상(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정읍무성서원), K-문예대전 공모전(강항선생기념사업회)과 기성 작가 대상으로 공모하는 남명문학상(김해일보)을 각각 수상하였습니다.

 

한국디지털 문학상 시상식에서 김종회 황순원문학관 관장(좌)과 이상우 한국추리소설가 협회장(우)와 함께
한국디지털 문학상 시상식에서 김종회 황순원문학관 관장(좌)과 이상우 한국추리소설가 협회장(우)와 함께

 

학창시절부터 글을 잘 쓰셨나요? 오늘의 김태헌 수필가가 있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이야기는 잠을 설치게 하였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중학교에 다닐 때 세계문학전집 50권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막연하게나마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지요. 군대를 전역하고 현실 앞에 섰을 때, 제 꿈은 멀어지고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글쓰기를 할 수 없었고, 바쁜 직장생활에 매달렸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내 글짓기에서 처음으로 입상하였습니다. 2006년 법무부에서 직원과 직원 가족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 산문 부문에 응모하여 2등으로 뽑혀 법무부장관상과 상금을 받았습니다. 퇴직하면 수필을 공부하여 공모전에 도전하고, 글쓰기 소질과 문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면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제3회 상춘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함께
제3회 상춘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함께

 

김태헌 수필가님의 글 속에 아버지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아버지 자랑 좀 해주세요.

저에게 최고의 스승이셨습니다. 산과 들을 놀이터 삼아 휘뚜루마뚜루 뛰어다니며 궁금했던 것을 예를 들어가며 비교 설명해 주셨지요. 동물과 식물은 물론 독초와 약초 구별법, 밤하늘의 별자리, 사계절의 변화와 삶과 죽음에 관한 호기심을 자상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피부 조직 속에 출혈로 자주색 멍이 생기는 자색반병이라는 희소병을 알았습니다. 주변에서 풀독이 올랐다고 하였는데, 혈변을 보고 온몸이 마비되었습니다. 축 늘어진 저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안개 자욱한 어둑새벽을 나서던 생각이 납니다.

생전에 술과 담배의 근처에도 가지 않고, 새벽에 들판에 가시면 별이 총총 돋아날 때야 집으로 돌아오셨지요.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농사일과 노동으로 7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저와 4년 동안 병마와 싸운 어머니의 병원비를 감당하려고 고래실논을 팔아야 했던 심정을 헤아리면 슬프고 아픕니다. 정작, 당신은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는지도 모르고 입원하신 지 보름 만에 세상을 등졌지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먹먹하고 아려옵니다. 이 순간도 그리움과 뭉클함에 눈시울에 자란자란 이슬이 고입니다.

 

고향 들녘
고향 들녘

 

일찍 작고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장남 노릇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동생을 두 명이나 고시에 합격시켰다고 들었는데, 형으로서 참 뿌듯하시겠습니다.

제가 살아온 길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1985년 결혼하던 해에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당시, 저는 유도를 하다가 오른발 골절로 수술하였습니다. 예쁜 딸 둘을 한 번에 얻었지만, 미숙아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지요. 두 어른이 세상을 등지고 새 생명 둘이 태어났어요. 앞날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 아득했습니다. 하지만, 공부 잘했던 동생들을 모른 채 외면할 수 없었지요. 험한 세상을 안내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수돗물로 배고픔을 참아가면서 사법시험과 행정고시에 각각 합격한 동생들이 대견스럽지요. 극한 조건을 이겨내고 자신을 증명하였습니다. 묵묵히 따라주고 자신을 이겨내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고 삶의 용기를 얻었습니다.

공모전 수상 작품집
공모전 수상 작품집

 

부천 원종동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천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시간의 2/3를 부천에서 지냈습니다. 남다른 애착이 있습니다. 1984년부터 40년 가까이 원종동에서만 살았으니, 토박이나 마찬가지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터전입니다. 장모님의 사촌 동생인 제 고향의 후배가 아내를 소개했어요. 아내는 지금의 까치울역에서 가까운 부천 무릉도원수목원 도로 건너편 작동 204번지에 살았지요. 야트막한 산자락에 밭과 다랑논이 있고 실개천이 흐르는 아름답고 고즈넉한 시골이었습니다. 까치가 많이 살아서 까치울이라고 불렀지만, 쥣골이라는 아름다운 이름도 있습니다. 장모님을 비롯하여 처남과 처제들도 원종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으니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헌 수필가는 콩나물신문에 '김태헌의 아름다운 베르네川’을 연재한 바 있다. 사진은 베르네천의 아름다운 풍경 
김태헌 수필가는 콩나물신문에 '김태헌의 아름다운 베르네川’을 연재한 바 있다. 사진은 베르네천의 아름다운 풍경 

 

수필뿐만 아니라 소설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가로도 데뷔하실 건가요?

제가 처해 있던 가정환경도 어려웠고, 가지 많은 나무처럼 집안의 대소사가 많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직장에 다닐 때는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꼭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친구 중에 평생 소설만 쓰는 전업 작가가 있습니다. 저를 너무 잘 아는 친구인데, 만날 때마다 소설을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합니다. 현재, 수필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도 소설을 쓰려고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나리오를 공부하고 각색했던 경험도 있어서 소설 쓰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립니다.

 

콩나물신문 우편발송 작업을 마친 후 봉사자들과 함께. 김태헌 수필가는 조합원 가입 후 3년 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우편발송작업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콩나물신문 우편발송 작업을 마친 후 봉사자들과 함께. 김태헌 수필가는 조합원 가입 후 3년 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우편발송작업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콩나물신문 조합원이자 이사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콩나물신문 자랑 좀 해주세요.

부천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건강한 지역 신문입니다. 여러 여건이 열악한데도 창립 10주년을 맞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요. 누구든지 콩나물신문 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기사를 써서 올릴 수 있어 시민 모두가 주인입니다. 널리 알려진 분보다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이웃의 따뜻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간섭이나 눈치도 보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싣는 건강한 언론이지요. 특히, 인권, 환경, 생명, 복지, 여성, 봉사 부문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추천받아 시상하는 콩나물 시민상은 콩나물신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콩나물신문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시민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시민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란 콩나물신문이야말로 진정한 부천 시민의 신문입니다.

 

인터뷰이종헌(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김태헌 수필가(캘리그라피 이주희)
김태헌 수필가(캘리그라피 이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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