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부천군 역사 (37회)

경기도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지난 2019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항일 독립운동을 기념하고 동시에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친일 잔재의 종류와 내용을 발굴하고 청산하기 위해 친일 문화 잔재에 관한 연구용역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경기도민은 친일 인물, 친일 시설(기념비, 기념물, 건축물), 친일 교육 잔재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으며, 해당 자료를 아카이빙하여 공개함으로써 도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뿐만 아니라 친일 청산의 길잡이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경기도 친일 문화 잔재 아카이브 포털서비스

우리 부천에 남아 있는 친일 문화 잔재가 많지만 기념비로 좁혀서 접근해보면 총 4(신안주씨 삼세 적선비, 이성환 교육송덕비, 이찬 중추의관 자선비, 주영식 자선 기념비)이 나옵니다. 오늘은 그중 하나인 이성환의 교육송덕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성환은 부천역 남부 심곡리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친일 행위를 한 인물입니다.

 

오류양조장(梧柳釀造場-심곡리 43) 운영

이성환은 소사역(현 부천역) 앞 심곡리에서 오류양조장을 운영하였습니다. (1940728일 매일신보) 그 당시 심곡리에 양조장이 있었으므로 심곡양조장이라고 이름을 지었을 것 같은데 오류양조장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성환의 집이 오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업체 운영은 심곡리에서 하였으나 집은 오류리였던 것입니다. 현재는 서울시 구로구에 있는 오류동에 해당합니다.

이성환은 오류양조장을 기반으로 1934년에 창립된 인천조선주조조합(조합장 최병두)에 간사로 참여합니다. 인천부, 강화군, 부천군의 세 지역에서 운영하는 양조장 업주들이 모여 만든 이 조합은 조합원이 총 34명으로 인천부 14, 부천군 12, 강화군 8명이었습니다. 양조장은 모두 38개소에 이르렀습니다.

인천조선주조조합 창립총회 개최 기사. '간사 이성환'이라는 직책과 이름이 보인다.
인천조선주조조합 창립총회 개최 기사. '간사 이성환'이라는 직책과 이름이 보인다.

 

장학사업

집이 오류동이다 보니 이성환은 오류지역에서 오랜 세월 장학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1930(소화 5)부터 역 앞 자택에서 아동 20여 명을 모아 야학으로 시작하여 1939년에는 심상학원이라는 재단을 세워 심상소학교로 승격시켰습니다. 개인 사재 5만 원을 기부하였으며, 그 사이에도 여러 번 운영비뿐만 아니라 증축에도 많이 기부하였습니다. (193928일 매일신보) (193941일 매일신보)

이러한 노력에 부천 군민과 소사 면민들이 감동하여 1937421일 오류학원에서 송덕비 제막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부천 군수가 약사 보고를 하고 소사 면장 원영상이 축사할 정도로 관리들도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1937424일 매일신보)(1937427일 조선신문)

 

5만원 거금을 들여 오류학원을 승격시켰다는 이성환 씨 관련 기사
5만원 거금을 들여 오류학원을 승격시켰다는 이성환 씨 관련 기사
교육가 이성환 씨 송덕비 제막식 기사. 기사 속 사진이 이성환 씨다.
교육가 이성환 씨 송덕비 제막식 기사. 기사 속 사진이 이성환 씨다.

 

하지만 이렇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장학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의 지배와 수탈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덕분이었습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소사면의(素砂面議)

1935년과 1939년에 소사면의로 당선되었습니다. 면사무소는 일제의 말단 통치기구였기 때문에 면장과 면의와 활동은 친일의 자발성과 적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소사 신명 신사 신역조영봉고제 기부

일제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중일전쟁으로 촉발된 군수물자와 인력을 보충하고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사를 활용하였는데 여기에 이성환은 20원을 기부하였습니다. (1939519일 매일신보)

 

소사신명신사 신역조영봉고제 기사
소사신명신사 신역조영봉고제 기사

 

3. 국민정신총동원 부천연맹 이사 참여

일제는 전쟁에 나간 출정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하고 동시에 전몰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소사신사에서 진행하였으며 동시에 국민정신총동원 부천연맹 결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 행사에는 황거요배, 국가합창, 황국신민 서사 등이 이루어졌는데 이성환은 이사로 참여합니다. (1938716일 매일신보)

황거요배(皇居遙拜)는 일본 국민과 식민지 백성들이 천황의 거처가 있는 동쪽으로 고개를 숙여 절을 하던 예법으로 궁성요배, 동방요배라고도 한다.

4. 지원병후원회 이사 참여(1939214일 매일신보)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전투병이 부족함에 따라 우리나라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게 됩니다. 지원병들을 모집할 때 부천 군수, 면장, 지역유지 등의 많이 참여하게 되는데 이성환은 지원병후원회에 이사로 참여하게 됩니다.

 

지원병 후원회 각지 발회식 성대
지원병 후원회 각지 발회식 성대

 

5. 국방헌금

이성환은 19408, 인천경찰서에 국방헌금 5백 원을 헌납합니다. (194087일 조선신문)

 

이성환이 국방헌금 오백원을 냈다는 당시 신문 기사
이성환이 국방헌금 오백원을 냈다는 당시 신문 기사

 

6. 표창

일제는 10년 이상 근무한 구장들에게 소사읍 승격에 맞추어 표창을 하게 되는데 이성환은 현저한 공로자로 인정되어 표창을 받게 됩니다. (19411014일 조선신문)

7. 각종 광고

기원 2600년 기출동장사무운장구(1940.1.1. 조선신문), 근하신년(193113일 조선시보), 축흥아신춘(194015일 매일신보) 등 다양한 광고를 지속적으로 합니다.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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