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이부치_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 / 글·그림 최덕현 / 북멘토

직업상 서점에 자주 간다. 서점에 가면 책이 내뿜는 고유한 냄새가 있는데 어느 서점을 가도 비슷하게 맡을 수 있다. 나는 이 냄새가 좋다. 내게는 기대와 설렘을 담은 냄새다. 특히 머리 싸맸던 고민, 무엇인가 정리 안 된 생각을 산뜻하게 정리한 책을 만나면 흥분이 된다. 게다가 매대에 깔린 책을 보면 요즘 우리 사회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있다. 하여 책을 사지 않더라도 서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둘러보는 시간은 유명한 박물관에 가는 것 이상, 전시회 관람 이상의 가치와 유익이 있다.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는 책들은 심리학과 자기계발서다. ‘당신을 당신답게 하라는 유의 책들이 서점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을 점령하고 있다.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고 당당하게, 욕 좀 먹어도 괜찮다라며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치여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고 있다. 이런 책들의 꾸준한 인기는 현대인의 당차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지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촘촘한 그물 같은 관계망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관계 안에서 힘을 얻기도 하지만 관계 자체가 너무나 어려워 조직을 떠나고 싶을 때도 많다. 허나 떠날 수 없기에 더 절망적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의 작은 숨구멍을 내주는 책들이지 싶다.

긍정적 자기 돌봄은 개인뿐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허나 자기 돌봄을 자신 외에 모든 존재를 수단으로 삼는 것으로 이해하면 문제는 심각하다. 요즘 한국 사회는 자기 돌봄의 욕구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왜곡되어 서로를 향한 투쟁이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개인과 개인, 자녀와 부모, 학생과 교사, 정부와 국민 등 모든 관계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갈등과 폭력이 나타난다. 어디에서도 안전과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누구도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백한 잘못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 소위 사회적으로 목소리 큰 사람이면 가해자라도 더 당당한 것이 현실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너도나도 사과하지 않는 사회,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권리와 이익만 누리고 챙긴다. 책에서 봤던 말세, 디스토피아가 이런 세상이지 않을까.

일제의 식민 통치부터 제주 4.3, 한국 전쟁,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까지 한국은 근현대사에 가슴 아픈 사건을 너무나 많이 겪었다. 더구나 4.16 세월호에서 10.29 이태원 참사 그리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도 끊이지 않았다. 여전히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책임도 사과도 없다. 희생자와 그 가족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국민 가슴에는 분노가 층층이 쌓인다. 상처가 잘 다뤄지고 회복되기 위해서는 책임자의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 사과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첫발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기다.

 

『뚜이부치』 표지
『뚜이부치』 표지

 

최덕현 작가의 만화 뚜이부치는 제2차 세계 대전의 3대 비극 중 하나인 난징 대학살에 관한 그래픽 노블이다.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이었던 아즈마 시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렸다. 아즈마 할아버지는 중국으로 여행을 오면서 손주에게 물어 중국어 뚜이부치를 외웠다. 사과받아 줄 당사자는 없지만 벼르고 벼르던 그 말, ‘뚜이부치’. 아즈마 할아버지는 과연 할 수 있을까? 직접 읽고 확인하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잘못은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진짜 용기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관계에서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하는 말이 미안합니다이다. 이 말을 할 수만 있고, 또 들을 수만 있다면 엇나간 관계가 다시 잘 맞춰지지 않을까 한다. 자주 할 말은 아니라도 반드시 해야 할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일본에 한마디 한다면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전쟁과 만행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란다.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 책임이 우리의 용서보다 선결될 일임이 분명하다. 일본이 다 이상 비겁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태일(언덕위광장 광장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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