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일), 부천시 수라갯벌 시민생태탐방단 참가 후기

모퉁이 쉼터에서 지낸 지도 한 달이 꼬박 넘었다. 부천의 여자 단기 청소년쉼터인 모퉁이 쉼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면서 자립을 위한 단계를 점층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힘을 실어준다. 최근 모퉁이 쉼터에서 평화미래플랫폼 파란과 전환을 꿈꾸는 공간 열린이 함께하는 '우리동네 살림장터'에 참여하게 되었고 나는 사진 촬영 봉사자로 함께하게 되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기 좋아해 관련한 일을 갈망하고 있던 차에 영광이었다.

전환을 꿈꾸는 공간 열린에서 진행된 '우리동네 살림장터'를 통해 파란을 알게 되었다. 평화미래플랫폼 파란'평화'로운 사회와 '미래'세대의 삶에 연대하는 사회, 수평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플랫폼'을 꿈꾸며 2019년에 창립한 시민단체이다.

우리동네 살림장터의 수익금은 지역 청소년 시설 자립 기금과 새만금 신공항 건설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수라갯벌을 지키는 데 사용되었다. 파란과 열린은 장터 셀러와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수라갯벌 시민생태탐방단을 모집했고 나 또한 여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새벽 6시 반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과 함께 3시간 걸려 군산에 도착했다.

군산시 소음피해 복지회관
군산시 소음피해 복지회관
차 안에서 바라본 미군기지 주변 풍경
차 안에서 바라본 미군기지 주변 풍경
차 안에서 바라본 미군 기지 주변 풍경
차 안에서 바라본 미군 기지 주변 풍경

 

수라마을과 미군기지를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았다. 고층 건물의 미군들을 위한 숙소와 대비되는 영락없는 시골 마을이 인상 깊었다. 군산공항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산시 소음피해 복지관을 보게 되었다. 가뜩이나 전투기 소리로 시끌벅적한 이곳에 또 공항을 짓겠다니······. 학교마저 허물어지고 아이들이 사라지고 없는 이 마을에 아직 남아있는 주민들의 피해가 얼마나 극심할지 체감도 되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던 격납고들과 철조망이 엉켜있는 힘없는 땅들을 지나쳤다. GUNSAN AIR BASE라고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군산공항이 매해 적자에 시달린다는데 새만금 신공항을 짓겠다는 발상이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장면이었다.

 

하제마을 팽나무지킴이 문정현 신부
하제마을 팽나무지킴이 문정현 신부
600년 팽나무 아래에서 문정현 신부로부터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하제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부천생태탐방단
600년 팽나무 아래에서 문정현 신부로부터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하제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부천생태탐방단
문정현 신부와 성가소비녀회인천관구 수녀님들
문정현 신부와 성가소비녀회인천관구 수녀님들

 

하제마을에 도착해 600년 된 팽나무 앞에서 문정현 신부님을 뵈었다. 신부님은 나이테를 일일이 세어 나무의 나이를 가늠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커다랗고 웅장한 나무 아래에서 내가 얼마나 작아지던지, 눈을 감고 팽나무를 힘껏 안아보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오래오래 자리를 지켜주어 고맙다고. 즐겨보았던 드라마에 나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니 경이로움을 금할 수 없었다. 천년 하제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품어왔다는 점에서 팽나무의 천연기념물 지정은 무척 의미가 깊다고 신부님이 이야기해 주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는다면 팽나무는 결국 신공항의 활주로 밑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팽나무 인근에 있는 할머니 소나무.
팽나무 인근에 있는 할머니 소나무.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대나무만 무성하다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대나무만 무성하다
대나무밭 언덕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대나무밭 언덕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이제는 유물이 된 하제 마을 버스 정류장
이제는 유물이 된 하제 마을 버스 정류장
살아있는 마을의 희미한 흔적
살아있는 마을의 희미한 흔적
그리고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고양이기 우리에게 길을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고양이기 우리에게 길을 묻는다.

 

장화를 신고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님을 만나 북서 수라에서 남수라 쪽으로 횡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 시간 넘게 비가 올지도 모를 이 날씨에 갯벌을 횡단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폭신한 갯벌과 오 단장님의 넘치는 설명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수라에는 법정 보호종 40~50여 종이 살아간다. 수라갯벌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새 중 하나인 도요새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출발해 알래스카, 시베리아까지 가는 1이상 여정에서 한번은 쉬어야 하는데 그곳이 한국 갯벌이라고 오 단장님은 알려주었다. 매립된 갯벌은 새들에게 어떠한 쉼터도 집도 되어주지 못한다. 수라갯벌의 많은 새는 지금 새만금 신공항 건설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갯벌에 빠지지 않도록 발에 힘을 주며 걸어야 했다. 발목을 훌쩍 넘는 장화에 양말까지 신었으나 물이 언제 들어갔는지 축축했고 불편했으며, 움푹 파여 물이 고인 갯벌은 깊이가 가늠되지도 않아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나는 이토록 사소한 것에도 불안해했는데 새들에게는 자꾸만 돌아올 곳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묵묵히 걸어갔다.

새만금에 여전히 남아있는 갯벌 수라(繡羅)라는 이름도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로 오 단장님이 붙여준 것이라고 했다. 수라갯벌은 200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국내 최대의 갯벌이다. 넓은 면적과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계의 보고로 불린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으로부터 수라갯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민생태탐방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으로부터 수라갯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민생태탐방단
수라갯벌 탐방
수라갯벌 탐방
수라갯벌 탐방
수라갯벌 탐방
수라갯벌 탐방
수라갯벌 탐방
야생동물들을 위한 자리 만들기
야생동물들을 위한 자리 만들기
수라갯벌과 소녀
수라갯벌과 소녀

 

영화에는 말라버린 갯벌에서 조개들이 땅속에서 버티다 비가 오자 바닷물이 들어온 줄 알고 모두 나와 입을 벌렸다가 죽는 장면이 나온다. 해수가 아니라 민물인 걸 몰랐기 때문이다. 갯벌을 걷는 내내 폐사된 조개들을 안타깝게도 정말 쉽게 많이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어떻게 버려졌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쓰레기들도 마주해야만 했다. 뱃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새들을 찍은 다큐를 본 적이 있다. 해양쓰레기로 버려진 비닐봉지를 먹이로 착각해 먹는 새들을 기사로 접했다. 바닷가에서 플로깅을 했을 때 자루 포대 가득 쓰레기를 담았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쓰레기들이 새들의 먹이로 오인되어 섭취되면, 새들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번식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이는 생태계의 균형을 위협하며, 새들에게 큰 위험을 일으킨다.

영화 수라를 보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아름다움을 본 죄’. 새들의 군무를 보면서 이 말이 순식간에 와닿았다. 새들의 군무라는 말은 이해되지 않았을뿐더러 일자로 나는 새들을 떠올리지도 못했는데 수라의 새들을 보니 정말로 아름다움을 본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바닥을 보고 걷는 습관을 지닌 나였지만 정말이지 하늘에서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옛날에 내가 쓴 글을 떠올렸다. 도시에서 얻은 행복은 금방 휘발되지만, 자연에서 얻은 행복은 잔류하더라는 그런, 멋모르고 썼던 글이 다시금 떠올랐던 풍경이었다.

 

먹이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민물 가마우지떼
먹이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민물 가마우지떼

 

갯벌을 걷다 보니 키보다 더 큰 갈대와 억새들을 자꾸만 손으로 치워가며 걸어가야 했다. 너무 깊숙이 빠지지 않게 종종 눕혀진 갈대들을 밟고 가기도 했다. 오 단장님은 다 같이 갈대를 밟아달라고 말했다. 밟힌 억새와 갈대들은 새들의 집이 되고 쉼터가 되어준다고 했다. 여러 명이 좁혀가며 원을 그리며 밟아주었더니 금세 커다란 연잎처럼 자리했다. 갈대와 억새가 걷는데 장애물처럼 느껴졌는데 새들에게는 쉼터나 집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수라갯벌 횡단 후 갯벌이 살아있지 않다면 무엇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생각했다. 오 단장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이겨야 하는 건 아니라고, 자연과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지 거스르며까지 살아가면 안 된다고 말이다. 물이 넘치는 마을은 방조제를 더 높고 견고하게 쌓아야 하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이주하는 게 맞다고. 자연을 점점 잃어가고야 마는 인간들은 결국 우리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
수라갯벌에서 ‘신공항 건설 말고 수라갯벌 보존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부천생태탐방단
수라갯벌에서 ‘신공항 건설 말고 수라갯벌 보존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부천생태탐방단

 

영화 수라에서 언급된 말처럼,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수라갯벌은 평화를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귀중한 자연의 선물이다. 우리는 수라갯벌을 보호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미래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갯벌은 결국 간척해야만 발전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매립지에 살았고 간척된 신도시에 살고 있다. 어렸을 때 장화를 신고 오이도 갯벌에 들어가서 조개를 캐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이제 오이도 갯벌 문은 단단히 닫혀 자유롭게 출입이 어렵다. 나는 그저 고층 아파트에서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갯벌이 되었다가 바다가 되는 모습만 볼 수 있다.

갯벌은 언젠가 바다가 된다. 오 단장님이 말했다. 우리가 갯벌이라고 부르는 한 수라갯벌도 바다가 될 것이라고. 살아있는 수라갯벌이 바다가 될 날을 기다린다.

모두가 평화를 말하던 수라에서, 우리는 그저 평화를 원할 뿐이다. 우리는 수라갯벌을 지키고 싶다. 우리는 자연을 지키고 싶다. 우리는 인간을 지키고 싶다.

 

마지막으로 황윤 감독의 인터뷰 문장을 인용한다.

다 사라진 땅에서 우리는 외로워서 어떻게 살 거예요?’

 

홍예원(부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 모퉁이입소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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