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콩나물분투기

콩나물신문이 창간 10주년이란다.

창간 준비에서 실제 운영까지 6년 이상을 몸담았던 콩나물신문에 대한 나만의 축하이고, 회상이다. 창간 10, 그때나 지금이나 콩나물신문의 고민은 여전한 거 같다. 조합창립일 함께 사진을 찍은 중학생 딸내미가 벌써 3년 차 어린이집 선생이 되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어려서 큰댁에 가면 건넌방 한 귀퉁이에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쳇다리 위에 앉아 있는 항아리 시루가 있었다. 쳇다리 아래 물받이 통에는 바가지가 둥둥 떠 있고 호기심에 물을 떠 시루에 부으면 이내 물은 흘러내린다. 퍼부으면 퍼부은 대로 그 자리에서 물은 모두 아래로 빠져버린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콩나물시루는 밑 빠진 독처럼 물 한 방울 고이는 법이 없다. 그러나 보자기 속 콩은 어느새 샛노란 콩나물로 자란다. 물이 모두 흘러내린 줄만 알았는데 시루 속 콩은 흘러내리는 물을 머금고 자라는 것이다. 물이 그냥 흘러 버린다고 헛수고를 한 것은 아니다.

 

콩나물 물주기
콩나물 물주기

 

콩나물신문협동조합, 가끔 콩나물 생산업자들의 신문이냐는 오해를 받지만, 콩나물신문은 건강한 지역신문을 꿈꾸는 부천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모여 만드는 협동조합 운영원리의 지역신문이다. 지난 2013년 초, 콩나물신문사가 입주해 있는 담쟁이문화원(원장 한효석)에서 협동조합 창업 관련 강의가 있었다. 이곳에서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자발적 소모임을 가졌다. 자동차, 주거, 의료, 보험, 교육, 카페 등등에서 다양한 논의와 시도가 있었고 개중에는 창업에 성공하기도 하고, 논의에만 그치기도 했다. 이후 문화원에서 건강한 지역신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3회에 걸쳐 지역신문 관련 특강을 개설했다. 지나고 보니, 키로 곡식()을 까부르듯이 협동조합으로 키질하고, 지역신문으로 한 번 더 키질한 셈이다. 콩나물신문 시루에 콩(조합원)들은 이렇게 모이기 시작했다.

20138월부터, 협동조합 강의와 지역신문 특강을 들은 이들이 구심점이 되어 콩나물시루에 지속적으로 물주는 일이 시작되었다. 매주, 자신의 생업이 끝나는 저녁이 되면 담쟁이문화원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함께 제호를 정하고, 정관과 규약을 만들고, 출자금과 조합비를 정했다. 넘치는 열정으로 첫 협동조합신문이라는 순천의 광장신문을 견학하기도 했다. 지역의 한계와 협동조합을 도구화 한 점에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으며,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모여 조. . (0일보 인수 성공하는 그날까지)을 외쳤다. 일이 끝나면 미친 듯이 달려가 유쾌한 만남을 가졌다. 하룻밤이 지나면 콩나물이 자라듯 이렇게 콩나물신문도 커갔다.

창간 준비모임을 시작하면서 창간 준비호도 만들었다. 열린 편집회의를 통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B급 신문이라는 평도 들었지만, 조합원들은 오히려 이런 평가를 즐겼다. 기성언론의 행태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에게 발칙한 B급 신문의 유쾌함을 주자는 데 뜻을 모았다. 만드는 사람이 신나서 만들면 보는 사람도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콩나물신문은 준비 3호가 나올 즈음인 20131116일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후로 준비 5호까지 발행을 했고, 지난 2014225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창간 준비호에서는 신문이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로 파격을 주어 조합원들이 만들고 싶은 신문을 만들었다(지금도 그렇지만). 그러나 안 되는 일도 있다. 주간지와 인터넷 신문을 목표로 창간하였으나 주간지의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다.

창간 이후 400여 명의 조합원을 모으고 정기구독자를 모았으나 각자 생업을 가진 조합원들이 신문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공공기관에 앵벌이 하지 않고, 신문을 전단지로 만들지 않으며 400여 명의 조합비와 구독료로만 우리가 꿈꾸는 신문을 만드는 일은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인지도 모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아무리 힘이나 밑천을 들여도 보람 없이 헛된 일이 되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정말 밑으로 다 빠지고 남는 게 없지만,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콩나물은 보이지 않은 사이에 무성하게 자란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건강한 지역신문을 꿈꾸며 들이는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로 비춰질 것이다. 그러나 콩나물신문(시루)이라는 비계(scaffolding, 飛階)를 설정하고 이곳에 물을 부으면 시루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콩나물로 성장한다. 협동조합 지역신문이라는 것이 수익만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콩나물신문협동조합은 열린 편집회의열린 이사회를 통해 조합원들이 만들고 싶은 신문을 만들고, 공론을 모아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기에 얻는 것 없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콩나물시루에 물주는 일이다. 콩나물신문이라는 시루에 모인 조합원들이 흐르는 물처럼 스치는 인연에 서로 성장하는 것이다.

콩나물신문은 실패를 겁내지 않는다. 협동조합신문의 사초(史草)를 쓰는 심정으로 성공과 실패를 기록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에 눈치 보지 않고 약한 자에게 메가폰(확성기)이 되는 신문이다. 즐겁게 만들고 보는 이가 행복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리하다 망해도 좋다. 사람 남기는 장사가 가장 큰 장사라 하지 않던가. ‘우리가 원하는 신문, 만들어 보니 어려운 게 아니더라하는 사람들을 남기는 일이다. 콩나물신문의 이러한 성공과 실패 경험이 공유되고 지역마다 콩나물신문과 같은 건강한 지역신문들이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이들이 연대한다면 조. . (0일보 인수 성공하는 그날)도 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오산[吳山](콩나물신문협동조합 전 이사장)

 

오산 전 이사장(현 부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오산 전 이사장(현 부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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