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지속협과 함께 하는 부천둘레길 6구간 48Km 모니터링(제4회)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은 송내 남부역을 출발해 원천공원-시민의 강상동 호수공원굴포천봉오대로에 이르는 약 6구간이다. 송내역 남부 MS코스메틱 상가를 나오자마자 둘레길 3코스 표지판이 보이는데 (사실은 잘 안 보이니 신경 써서 살펴봐야 한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1호선 전철 경인선과 나란히 둘레길이 이어진다.

 

1호선 전철 경인선과 나란히 이어진 둘레길
1호선 전철 경인선과 나란히 이어진 둘레길

 

우리나라 철도의 효시로 기록되는 경인철도가 개통된 것이 18999월의 일이니, 경인선의 역사도 어느덧 100년을 훌쩍 넘었다. 개통 당시는 모갈이라는 증기기관차가 노량진에서 제물포(지금의 인천역)까지 33.2를 하루에 두 번 오가며 시속 10로 달렸는데, 시간은 대략 3시간 20분이 소요됐다. 그러다 1년 후인 1900, 서울역까지 확장 개통되면서 속도는 두 배 이상 빨라져 시속 221시간 45분이 걸렸다. 이는 당시 우마차 또는 4인 가마로 12시간이 걸리던 것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는데 1899919일 자, 독립신문에 실린 다음 기사에서 당시 백성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경인철도회사에서 어저께 개업 예식을 거행하는데, 인천에서 화륜거(火輪車)가 떠나 삼개 건너 영등포로 와서 경성에 내외국 빈객들을 수레에 영접하여 앉히고 오전 9시에 떠나 인천으로 향하는데,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수레를 각기 방 한 칸씩 되게 만들어 여러 수레를 철구로 연결하여 수미상접하게 이었는데,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경인선을 달리는 열차의 속도는 얼마나 빨라졌을까? KTX는 시속 300이상을 달린다지만 놀랍게도 경인선을 달리는 열차의 속도는 평균 시속 30~40로 그렇게 많이 빨라지지는 않았다. 이유인즉, 중간중간에 새로운 역이 많이 생겨 가다 서기를 반복하기 때문인데, 부평~소사(현 부천역) 구간만 해도 부개, 송내, 중동 등 3개 역이 새로 들어섰다.

지난 100년 동안 숱한 사람들이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안고 때로는 환호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오갔을 경인선 철길을 따라 터벅터벅 길을 걷노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진다. 교통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리해지면 사람의 삶도 더 나아져야 하는데 지난 100년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오늘도 무심한 경인선 열차는 덜커덩덜커덩 지친 몸을 이끌고 송내 벌판을 지나 서울로 향한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시절,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송내는 온통 포도밭 천지였다. 개강 파티를 핑계로 수업도 빼먹은 채 보랏빛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포도밭에서 정신없이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유난히 닭살 커플이던 KP는 그날 포도밭 데이트를 끝으로 헤어졌다고 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 막걸리를 그렇게 취하도록 마시지 않아도 됐으련만.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한적한 둘레길을 걷다 보니 길은 어느덧 송내고등학교 정문을 지나 경인철도를 넘는 인도교로 이어진다. (인도교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으므로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경인철도를 넘는 인도교
경인철도를 넘는 인도교
원천공원
원천공원
원천공원에 우뚝 서 있는 고 이일영 작가의 작품 
원천공원에 우뚝 서 있는 고 이일영 작가의 작품 
시민의 강 표지석
시민의 강 표지석

 

원천공원은 부천 시민의 강이 시작되는 발원지(물론 인공으로 조성된 물길이기에 발원지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인데 인공폭포와 함께 호수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고() 이일영 작가의 작품 약동하는 부천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설명에 따르면 이 동상은 이일영 작가가 부천의 발전과 번영을 염원하며 19909, 부천역 북부광장에 설치한 작품으로 2015,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근육질의 남녀 3인이 생명의 상징인 물항아리를 시민의 강으로 쏟아붓는 모습이 무척이나 역동적으로 느껴지는데 (물론 개인적으로는 평범한 남녀 시민을 주인공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문제는 안내판을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작가와 작품에 관한 설명만 있지, 진짜 중요한 작품의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진짜 없는 것인지, 아니면 필자가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없다면 시민 공모를 통해서라도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위의 약동하는 부천이라는 명칭은 필자가 주먹구구로 갖다 붙인 것이니만큼 그런 진부한 이름 말고 정말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고 작품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서 부여해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닐까.

원천공원 이곳저곳에 세워진 표지석들은 불과 이십몇 년의 세월이건만 어느덧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멸이 심하다. 그러니 국보 제318호 포항 중성리 신라비처럼 천년 세월을 견디고도 자획이 뚜렷한 비석은 얼마나 큰 공력을 들여 제작한 것인지 새삼 그 정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부천시가 천년 후에도 오늘의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자 한다면 이런 작은 표지석 하나부터 정성을 다해 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상동 시민의 강 수변길

 

시민의 강 수변길은 마치 유럽의 어느 한적한 도시를 걷는 듯,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층이 낮은 아파트는 반대편 고층아파트에 비해 한층 아늑해 보이고, 물길따라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와 그 사이사이에 놓인 벤치, 그리고 작은 책방은 지나는 길손에게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쉬어가도 좋다고 말하는 듯하다. 비록 자연수가 아닌 생활 하수를 재처리한 물이지만 작은 개울 속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노닐고 물밖에는 흰색 백로가 물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물길이지만 전혀 인공적이지 않은, 상동 시민의 강은 오히려 오래전부터 있어온 자연스러운 물길같은 느낌이다. 그 물가에 앉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23년의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다가 문득 오래전에 써두었던 시 한 편을 꺼내 흥얼거려보는 것도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을 걷는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생명들(사진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생명들(사진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생명들(사진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생명들(사진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생명들(사진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생명들(사진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생명들(사진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부천둘레길 제3코스, 물길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난 생명들(사진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제3코스 답사에 나선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제3코스 답사에 나선 부천지속협 둘레길 모니터링단
가을 산에서

산 너머에 산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다른 산이 있네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단풍으로 물든 시월의 산을 오르듯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네

 

낙엽에 묻힌 길

옛사람의 자취 보이지 않아도

산골짝 흐르는 차가운 물소리 따라

저 홀로 붉었다 지는

이름 모를 열매들의 속삭임 들으며

그리움 한 짐

서러움 한 짐

훌훌 털어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네

 

산 너머에 산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다른 산이 있네

 

현해당(시인, 인문기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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