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부천군 역사 - 제39회

일제는 19306(소화 5)<부천군(富川郡) 군세일반(郡勢一班)>을 발표합니다. 4장의 보고서인데 앞뒤 표지를 빼면 두 장으로, 한 장은 지도이고 다른 한 장은 행정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도를 통해 군청 위치, 행정구역, 철도, 수로, 도로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행정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통해서 지세, 토지, 기온, 호구, 교육, 종교, 위생기관, 농업, 임업, 광업, 수산, 교통, 금융, 상공, 저축단체, 재정, 군 면 직원, 자선 회원(일본적십자원, 애국부인회원) 등 그 당시 부천군의 현황을 살필 수 있습니다.

부천군(富川郡) 군세일반(郡勢一班) 속 관내도
부천군(富川郡) 군세일반(郡勢一班) 속 관내도

 

부천군청의 위치

부천군청은 특이하게 부천군에 있지 않고 인천부(仁川府 寺町二番地)에 있었습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부천군이 탄생하게 되고 거대한 부천군은 인천부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인천부에 두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천군은 인천부를 중심으로 육지 9, 바다 6면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곳이 인천부이기 때문입니다.

 

2. 가구 수(戶口)와 인구

부천군의 총가구 수는 14,390이었으며, 남성은 38,797명 그리고 여성은 38,557명으로 총 75,354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일본인은 270가구로 남성은 576, 여성은 504명으로 총 1,080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은 198가구로 남성은 566, 여성은 186명 총 752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선인들은 13,922가구로 남성은 37,655, 여성은 35,867명 총 73,522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부천군군세일반
부천군군세일반

 

3. 교육시설

일본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학교가 딱 한 곳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소사심상소학교(素砂尋常小學校)로 지금의 부천역 남부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훈도(교사)3명이었는데 모두 일본인이었습니다. 우리 조선인들이 다니는 공립보통학교는 총 7곳이 있었으며, 소사, 부천, 소래, 부평, 서곶, 영종, 대부입니다. 소사공립보통학교는 지금의 부천역 남부에 있었으며, 부천공립보통학교는 인천 문학에 위치하였습니다. 명칭만 부천공립보통학교이지 지금의 부천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당시 서당 또한 보통학교 다음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화 4년(1929) 경기도 부천군 군세 일반
소화 4년(1929) 경기도 부천군 군세 일반

부천군에는 고등보통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진학을 하려면 다른 곳의 학교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기사가 바로 193517일 자 조선신문(朝鮮新聞)입니다.

 

소사소학교 중등학교 입학졸 양호

[인천] 백명 생도 경인선 소사공립소학교 매년 중등학교 지망생도 15명 내외

△京中(경중) 1경기도립상업 1선린상업 2인천고녀 6경성제2고녀 2명  합계 12

 

4. 기타

지금의 통신을 담당했던 우편소는 주안, 소사, 부평에 있었으며, 경인선 역()은 주안, 부평, 소사, 오류동으로 총 4곳이 있었습니다. 수리조합은 부평과 소래에 그리고 금융조합은 소사, 주안, 부평에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금리가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인의 경우 최고 3, 최저 2분 그리고 보통 2.5분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조선인은 최고 4, 최저 2, 보통 3분이었습니다. 일본인보다 조선인들의 금리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의료환경도 열악했습니다. 부천군에는 병()원이 없었으며, 의료인으로는 의사 1명 의생 6명 치과의 1명에 불과했습니다. 간호부, 약제사, 제약자 등은 없었으며 이로 인해 종두인허원(種痘認許員) 22, 약종상(藥種商) 14, 산파 1명 등이 의료를 담당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부천 최초의 병원은 부천역 남부에 위치한 소사의원(素砂醫院)으로 김응석(金鷹錫) 의사가 1934년에 개원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세부 내용은 193685일 자 동아일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소사의원

경인선 소사역전에 있는 소사의원은 부천군내에 유일한 의료기관이다. 원장 김응석(金鷹錫)씨는 함흥(咸興) 출생으로 일즉 함흥고보(咸興高普)를 마치고 경성총독부의전(京城總督府醫專)을 졸업한 후 동교(同校)에서 내과를 1년간 연구하였다. 청진(淸津)에서 다년간 사계(斯界)에 명성을 날리다가 소화 9년에 소사에서 개업하였는데 많지 않은 시일에 벌써 씨의 성망(聲望)은 상당히 원문(遠聞)되었다. 병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씨의 명철한 진료와 능숙한 시료(施療)에 날로 넓어가서 환자가 원래(遠來)한다. 동원(同院)에는 내과, 외과, 소아과를 주로 부천과 및 화류병과(花柳病科)까지 부설하야 무료진찰을 하며 씨는 부천군내 15공보교(公普校)의 교의(校醫)를 담임하고 있어 일반의 촉망과 호평은 날로 높아간다. -1936년 8월 5일 자 동아일보 부천지방소개판 <의료>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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