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학교회장선거에 나갔다. 부부는 혹시 학생회장이라도 될까 전전긍긍하며 부디 떨어지길 빌었다. 회장 엄마가 어머니회장이 되는 것이 학교의 오랜 관행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마는 하되 선거운동은 안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딱히 선거운동도 안하고 여자가 회장 후보로 나왔다고, 학교에서는 일진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로 상처를 입지는 않은 듯 했다.
선거 결과 세명의 후보가 근소한 표차로 당선자와 낙선자가 갈렸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아이는 부회장이 됐다.

 

다음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치맛바람 좀 날린다는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회에 들어야 하고 회장 엄마(이 사람도 학교에서 소문난 치맛바람)와 만나 보라는 내용이었다. 아이 엄마는 '그러마' 하고 답만 하고는 그냥 있었다. 예상대로 회장 엄마라는 사람(벌써 어머니회 회장이 되어 있었다)이 직접 전화를 했다.

내용인즉슨, 아이 엄마더러 어머니회에 와서 감사를 맡아달라는 것과, 내일 모레 학교에 방문할 때 교직원들 접대 용도로 간식비를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둘이서 어떻게 대응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가난' 모드 였다.
"일 때문에 너무 바빠 어머니회에 참석이 어렵고, 간식비도 같이 부담하고 싶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내기가 힘들다"고 답했다.

회장 엄마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런 대비도 안하고 아이를 회장 선거에 내보냈냐? 애가 회장이라도 됐으면 어쩔뻔 했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또 "학교운영위원을 했으면 학교가 어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미 우리 집과 아이 엄마에 대한 정보를 훤히 꿰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 엄마는 '아이가 회장이 되는 것 하고 엄마가 어머니회 임원이 되는 것 하고 꼭 상관이 있어야 하냐'고 따지려다 말았다. 말을 더 이상 섞기 싫어서 일테다. 말이 통할리도 없을테고.

"형편이 안된다고 나가지 말라 했는데, 아이가 당선하더라도 절대 엄마는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내버려 뒀다"고 말했다.
끝까지 우리는 '가난' 컨셉이었다. 뭐 실제로 가난하기도 하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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