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영숙 포토에세이

지난 가을 남북 평화 재단 부천 본부에서 개최한 ‘DMZ 평화누리길 걷기행사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철원 역사문화공원을 출발해 학저수지까지 가는 코스였는데 오전에 소이산을 한 바퀴 돌고 정상에 올라가 광활한 철원 평야를 조망하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인지 학저수지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저녁해가 고대산 너머로 기울기 시작한 때였다.

서걱이는 갈대와 군데군데 무리 지은 연잎에 감탄하며 일행들 모두 수천수만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오리 떼의 군무를 카메라에 담기 바빴는데, 나도 그 화려한 비상을 몇 컷 카메라에 담기는 했으나 전문가용 카메라가 아닌 일반 핸드폰으로 자연의 그런 웅장함과 신비함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 아닐 수 없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우연히 사진을 확대해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확대된 사진 속에는 수백 수천만 개의 꽃송이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게 아닌가.

사진을 축소해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면 꽃송이들은 저녁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물비늘로 변했다가 확대하면 다시 탐스러운 꽃송이로 변하니 처음부터 물비늘을 찍은 것인지, 아니면 꽃송이를 찍은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물론 꽃송이라는 것도 나만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것이었다.

이 경험이 있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카메라가 사실을 기록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허구를 창조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영숙 작가는 오랫동안 부천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중견 사진작가다. 그녀는 핸드헬드라는 독창적 기법으로 이른바 카메라의 탈 카메라화에 앞장서고 있는데 한마디로 카메라로 수채화를 그리는 작가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 같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가는 이영숙 작가의 최근 작품을 그의 포토에세이와 함께 콩나물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앞에서 소개한 윤세명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영숙 작가 역시 8회 대한민국 사진축전』 「참여작가 부스전에 참여해 관람객들의 호평과 함께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사진작가 이영숙
사진작가 이영숙

 

이영숙 포토에세이 자연에 꿈을 더하다

 

찰나를 사는 우리가 결코 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자연은 늘 그대로인 듯하지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이미 지나가고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이처럼 순간적인 것들에 대한 연민과, 흩어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욕망, 잊혀질 뿐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을 극복하고 싶은 의지.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사진 쪽으로 몸을 기울인 것은.

자연에 꿈을 더하다 1
자연에 꿈을 더하다 1

 

아직도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나의 작업은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기반으로 하지만, 단순한 풍경으로써의 자연이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로 구분되듯이, 자연이 나를 통과하며 굴절되면 새로운 생각과 더 많은 이야기가 생겨난다. 본래의 아름다움에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더해져 꿈속 같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 같기도 하고,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의 기척인 듯도 하다. 과거와 미래, 기억과 환상, 설렘과 기대가 함께 복작거린다.

자연에 꿈을 더하다 2
자연에 꿈을 더하다 2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보이는 대로 찍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나만의 상상력을 보태는 일. 이것은 먼 우주에 꽃씨 하나를 남기는 간절함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전설 속에 묻혀 있던 태고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존재의 뼈대만으로 우뚝 선 의연함과 하얗게 바래 색깔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나목의 처연함이 공존하는 절대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자연에 꿈을 더하다 3
자연에 꿈을 더하다 3

 

또한 온 대지에 따뜻한 온기를 퍼뜨리는 어린 연두의 위로이면서, 가끔은 화려한 색깔로 본래의 슬픔을 감춘 성숙한 얼굴이었다가, 품 넓은 그늘을 거두고 끝내는 떠나보내야 할 작별 인사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대열을 이루어 달려오는 바다의 성급함이 함께하고, 소심한 꽃들의 재잘거림까지 더해지면 느슨해진 시간과 공간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섞여든다.

자연에 꿈을 더하다 4
자연에 꿈을 더하다 4

 

이와 같이 나만의 생각을 구현할 방법으로써 핸드헬드는 어설픈 작가 시절 운명처럼 다가온 한 장면에서 이끌어낸 새로운 장르다. 핸드헬드 기법을 적용한 이번 작업은 모두 나를 통과한 자연물이 대상이다. 어디에나 있을 듯한 사소한 것들, , 바다, 바람, , 나무 등에 나만의 색깔을 얹어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해 보았다.

자연에 꿈을 더하다 5
자연에 꿈을 더하다 5

 

결국 사진작가란 무심한 자연마저도 남들과 다르게 보고, 새로운 감각과 사유로 나만의 무늬를 그려 보이는 사람이다. 다르게 표현해야 낯설게 보인다. 그래서 순식간에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가슴을 파고들어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느리지만 차곡차곡 시간의 겹을 쌓으며, 기존의 사고를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갈 때만 가능한, 쉽지 않은 과제이다.

자연에 꿈을 더하다 6
자연에 꿈을 더하다 6
자연에 꿈을 더하다 7
자연에 꿈을 더하다 7

 

이영숙(사진작가)

 

  이영숙  프로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미술학사)

중앙대 디지털 사진가 과정 수료

2022 5회 개인전 나비일레라(서울)

2022 대한민국사진축전 DDP부수전(서울)

2022 남송미술관 초대전 가벼운 영혼(가평)

2020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2020 (서울)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부스전

2018 4회 개인전 푸른소멸(부천)

2016 3회 개인전 신들의정원(서울)

2016 경기도 향토작가선정 초대전 가람의 미(안산)

2012 2회 개인전 윤회 SAMSARA(부천)

2007 1회 개인전 화양연화花樣年華』(부천)

 

   단체전     

*2022.연변국제사진문화제(중국)

*2022 2회 중국국제창바이산 사진문화제(중국)

*2022 인천 해양미디어 페스티벌(인천)

*2020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2020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부스전

*2016 갤러리시선 초대전 / 가람의 미(안산)

*2021 H포토8인기획전/화이트리버(부천)

*2019 토포하우스참여전 / 나무연가(서울)

*2009 여류작가 3인 기획전 / 무진{霧津}(부천)

*2012 여류작가 3인 기획전 / 화몽(華夢)(부천)

*2013 11인 기획전 / 꿈의원행(부천)

*2012 H포토 6인기획전 / 회상(灰相)(부천)

*2015 H포토8인기획전 / 기와(분천)

 

     출판     

2022 나비일레라

2018 푸른소멸

2016 신들의정원

2012 SAMSARA

*2009~2010 중앙승가대 포토에세이 연재

*2007~2016 월간해인 사진부기자

*경기도사진대전 초대작가

*2012~2018부천아트벨리 예술특성화교육 사진강사(덕산초등학교)

*2019~ 리테일핸드헬드아트 사진강사()

*2006~사진작가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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