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성 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영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는 11살의 나이에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로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주인공 햄릿이 사랑했던 여인인 오필리아를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오필리아는 물에 잠긴 채 죽어 있습니다. 오필리아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햄릿은 아버지인 국왕을 잃었고 두 달도 되지 않아 어머니가 자신의 숙부와 결혼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어떤 여인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아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고통의 물결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가? 죽음은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음의 번뇌도 육체가 받는 온갖 고통도, 그렇다면 죽고 잠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열렬히 찾아야 할 삶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잠들면 꿈도 꾸겠지. , 여기서 걸리는구나. 이 세상의 온갖 번뇌를 벗어던지고 영원히 죽음의 잠을 잘 때 어떤 꿈을 꾸게 될 것인지, 이를 생각하면 망설여지는구나. 이 망설임이 비참한 인생을 그토록 오래 끌게 하는 것이다.”

햄릿에게는 삶이 허망했습니다. 더 이상 살아가고픈 의욕이나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을 없애는 것 외에는.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삶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햄릿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인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실수로 죽이게 됩니다.

오필리아는 애인이었던 햄릿의 실수로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비탄에 빠지게 되고 이로 인해 오필리아마저 정신적으로 미쳐 햄릿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인마저 잃은 햄릿의 복수가 두려웠던 햄릿의 숙부이자 왕은 햄릿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아의 오빠를 이용해 햄릿과 결투를 벌이게 하고 이 결투 과정에서 오필리아의 오빠와 햄릿의 어머니마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왕은 햄릿에 의해 결국 죽게 되고 맙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긴 했지만, 햄릿도 그 많은 짐을 짊어진 채 목숨을 잃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삶이 파멸에 이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John Everett Millais 「Ophelia」 (위키백과, 구글프로젝트)
John Everett Millais 「Ophelia」 (위키백과, 구글프로젝트)

 

오필리아는 자신이 사랑했던 햄릿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실성한 채 헤매다가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습니다. 밀레이의 그림에서 오필리아는 수면에 떠 오른 채 죽음에 이른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오필리아가 수면에 떠 있는 채 죽은 모습은 아마도 삶과 죽음, 아버지와 애인, 사랑과 진실, 등 우리의 삶은 수많은 경계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둑에 보면 아름다운 하얀 꽃이 피어 있지만, 강의 수면에는 그 꽃잎들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한때는 아름다웠던 것도 언젠가는 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오필리아의 얼굴 위로는 나뭇가지가 늘어져 있습니다. 자신의 사랑과 희망이 그렇게 덧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표현한 듯합니다. 그 주위에는 날카로운 풀들이 있는데 이는 그녀 내면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필리아의 손 근처에는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떠 있습니다. 아마 그녀는 햄릿과의 사랑은 순수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간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수면에 떠 있는 상태의 오필리아 위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꽃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기쁨과 슬픔, 사랑과 아픔, 고통과 영광 등 삶의 여러 가지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필리아의 몸짓과 표정을 보면 그녀는 아주 순수하고 연약해 보입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듭니다. 사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그녀에게 운명은 너무나도 가혹했던 것입니다. 햄릿을 사랑하고 싶어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만든 아픔을 간직한 채 그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오필리아는 강물에 자신을 맡긴 채 세상을 떠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삶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기에 그녀는 그저 강물에 모든 것을 맡겼던 것 같습니다. 마음 아프지만, 그것이 어쩌면 운명이고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삶에는 아름다운 순간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어쩌면 더 위대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 정태성(한신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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