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연휴의 도시는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다가 서점이나 들러볼까 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는 적막감마저 들 정도로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정류장 나무 의자도 한가롭게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 내가 탈 버스도 열네 번째에 있다는 표시등이 들어와 빈 의자에 앉았다. 그냥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오랜 메모 습관 때문인지 저절로 가방에서 수첩과 펜이 따라 나왔다. 아무튼 5월의 초록 바람이 살랑살랑 내 볼을 간지럽게 만지고, 왕복 6차선 도로에는 몇 대 안 되는 자동차만 드문드문 빨간불 정지선 앞에 멈췄다가 떠나고 있었다. 쭉 서 있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은 어느새 진초록으로 물들어 잘 자란 청년의 모습으로 빛났다. 그동안 무심히 스치고 지나쳤던 사물들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우리 집 아파트 창이 새삼 높아 보였다.

나는 매일 닭장 같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곤 했다. 그 문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철저하게 무장된 사회적 이미지 틀에 갇혔다. 그 속에서 아주 당당한 여자로 씩씩한 엄마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한 가지 남편이 없다는 현실을 감추고 무장 하느라 더 열심히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 무장의 무게를 견디느라 안간힘을 쓰고 버텼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힘이 되었다. 종교도 위로가 되었고 문학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한참을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 한쪽 끝부터 써늘해지는 것이었다. 연휴의 도시 한복판에 모든 끈이 떨어져 나가고 나 홀로 덩그러니 던져진 느낌.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안 그런 척 갑옷으로 무장하고 살아온 가슴 밑바닥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외움이라는 글자 하나가 튀어나와 내 치마폭에 툭 떨어졌다. 잘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내 몸 하나 어디다 포근하게 기댈 곳이 없다는 고독감이 순간적으로 밀려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은 왜 그렇게 쏟아지는지. 대낮에 길 위에서 주책없이 흘리기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무장으로 감추고 옭아매고 살았던 내 마음에 살짝 틈이 생기고 말았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흐르는 대로 두었다. 그때 파지를 실은 수레가 내 앞을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할머니 뒷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파지 더미에 온몸을 묻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약한 어깨에 힘을 주고 앞으로만 전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내 가슴이 오월의 도시 속에서 문드러지고 말았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사진 출처(픽사베이)

 

그 사람은 본인이 의사이면서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열흘을 버티다 말 한마디 못 하고 우리 가족 곁을 떠나고 말았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울부짖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행복했던 순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일과 같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수를 다하지 못하고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난 게 억울하고 가슴이 아렸다.

나에게 남겨진 세 아이를 건사하는 일만이 살아가는 목표였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사치 같아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었다. 나는 짝이 없는데도 짝이 있는 것처럼 무장하고 살았다. ‘과부라는 단어가 왜 그리 싫은지 글자도 보고 싶지 않았고 듣기도 싫었다. 내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써 부정했다. ‘과부라는 말을 입 밖에 내뱉는 사람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성경에 가장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과부의 동전 한 닢으로 비유할 때도 불편했다. 신부님 강론에 과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마치 주홍글씨처럼 심한 정서적 알레르기로 숨어버리고만 싶었다.굳이 내 입으로 내가 먼저 나는 남편이 없어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이사 갔지만 9층에 살았던 부부가 실은 본부인을 내쫓고 어느 날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와 살았다. 오래된 주민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진짜 부부처럼 행세하고 무장하고 살다 갔다. 쇼 윈도 부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집안에서는 남남처럼 살면서 밖에서는 잉꼬부부인 척 무장하고 사는 모습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야말로 가면으로 무장한 도시가 아닐까.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아하는 척, 있는 척, 서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사람과 사별하고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항상 엊그제 같았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무의식 속에 외로움의 실체는 저 혼자서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텅 빈 도시 한복판에서 흘렸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급히 외출하려고 차려입고 마지막 구두까지 완벽하게 꾸미고 나왔지만, 왠지 허전한 느낌. 가장 중요한 속옷 하나가 빠진 것 같은 나의 결핍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여러 겹의 옷으로 가렸지만, 마지막 중요한 부분을 가리는 속옷은 잃어버린 짝과 같은 것이 아닐까.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무장하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었다. 누구도 그것은 실제로 겪어 보지 않고서는 이해 못 할 것이다. 버스가 내 앞에 멈추었지만 탈 수가 없었다. 그냥 보내고 다음에 오는 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할머니가 끌고 가던 파지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득 그 파지의 모양이 마치 짝을 잃고 아닌 척 살아가고 있는 내 외로움의 실체처럼 보였다.

텅 빈 연휴, 5월의 도시 한 복판에서 사회적 갑옷으로 무장하고 살아가고 있던 나의 가면이 바람에 흔들린 하루였다.

 

【창작 노트】 5월의 연휴 텅 빈 도시, 버스 정류장에서 무장하고 살아온 나의 가면이 바람에 흔들린 하루

서순옥(수필가)

 

서순옥 수필가
서순옥 수필가

 

서순옥 프로필

<수필과 비평> 2001년 등단

문인협회 회원

<수필과 비평> 작가회의 이사.

<수필과 비평> 작가회의 부천지부장 및 부천수필가협회 회장 역임

저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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