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최근에 재활의학과 전문의 선생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사연을 하나 들려줬습니다. 어떤 할아버지 환자가 크게 다쳐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2년간의 치료를 통해 식사를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는데, 자식들이 아버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살던 집을 팔았다고 합니다. 환자는 도움을 받으면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터전을 잃어 갈 곳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의학으로 환자분을 살려 놓았지만, 그 이상을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통탄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다시 하나의 생각을 곱씹게 됩니다. 의학은 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의학, 건강에 대한 학문은 환자의 모든 걸 다 치유하고 해결해 줄 순 없습니다. 의사로서 환자가 잠을 못 자든, 기분이 우울하든, 허리가 계속 아프든 어떠한 고통 상황에서 제 의학적 지식으로 환자를 완전히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듭니다. 환자의 상태가 의학의 논리대로 나아지지 않을 때, 내가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 때도 있습니다. 더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이 환자를 아프게 할 때에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의학은 신이 아닙니다. 건강에 관한 뛰어난, 그리고 계속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지만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수학 공식이 아니어서, 완전히 해결되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질병의 많은 부분은 스스로 이겨내는 면이 있고, 개개인은 완전히 풀릴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면 의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사진 출처 픽사베이
사진 출처 픽사베이

 

제가 생각하는 의학은 건강에 관한 기술로, 의학에 기반을 둔 의료는 돌봄의 한 영역을 차지합니다. 의학은 질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단독 열쇠로 비칠 수 있지만, 질병은 병균뿐만 아니라 여러 환경 요소와도 상호작용합니다. 따라서 의료는 돌봄이라는 폭넓은 영역의 하나로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로병사에 있어 온전히 독립적일 수 없는 부분들을 돌봄으로 챙기고, 그중 하나가 의료가 됩니다.

의학은 돌봄이라는 폭넓은 개념과 함께해야 합니다. 의학을 과학적 측면으로만 보게 되면 사람의 정의는 참 좁아집니다. 의학의 눈으로 사람은 해결 가능한 문제인 질병을 가진 존재로 헤아려지며, 그 질병과 관련된 삶과 환경의 맥락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 의학에 의해 사람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의학은 언제 빛을 발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의학이 그만의 과학적 기반을 튼튼히 함과 동시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돌봄이라는 넓은 체계 속 자신의 역할을 인지할 때입니다. 의학으로 행하는 의료는 기술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 사람을 돌볼 역량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의료는 돌봄과 엮여 사람의 삶에 개입하고, 사람들에게 튼튼한 안전망이 되어줘야 할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정은(부천시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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