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성 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실존이란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다. 인간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에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있어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완전하지 않은 나 자신이 스스로 완전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타인과의 문제가 생기는 것도 불완전한 타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기에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은 완전하지도 않고, 인간이 만든 제도나 사회도 완벽할 수가 없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인간이란 불완전하기에 현실적으로 부조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마을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를 따라잡았을 때 페레의 그 얼굴. 피로와 고통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그의 뺨 위에 번득이고 있었다. 그러나 주름살 때문에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았다. 눈물방울은 그 일그러진 얼굴 위에 퍼졌다가 한데 모였다가 하며 니스칠을 해놓은 듯 번들거렸다. 그리고 또 성당, 보도 위에 서 있던 마을 사람들, 묘지 무덤들 위에 제라늄꽃들, 페레의 기절, 어머니의 관 위로 굴러떨어지던 핏빛 같은 흙, 그 속에 섞이던 나무뿌리의 하얀 살, 또 사람들, 목소리, 마을, 어느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일, 끊임없이 도는 엔진 소리, 그리고 마침내 버스가 알제의 빛의 둥지 속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리하여 이제는 드러누워 12시간 동안 실컷 잠잘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의 나의 기쁨, 그러한 것들이다.”

장례식을 치르느라 오랜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이 지쳤기에 장례식이 끝난 후 쉬고 싶은 것이 어쩌면 나약한 인간의 당연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관습과 인식은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지 말라고 한다. 실존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 이방인이라는 낙인이 찍혀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인 굴레에 스스로 구속이 되어 우리는 스스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누군가는 언제 어느 순간 이방인이 되어 버릴지 알 수가 없다. 모든 사회적 상황과 제도에 완벽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페르낭델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둘이 옷을 다 입었을 때, 내가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것을 보고 마리는 매우 놀란 듯이 상을 당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언제 그런 일을 겪었는지 알고 싶어 하기에 나는 어제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흠칫 뒤로 물러났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런 소리를 사장에게도 한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말을 해본댔자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사람이란 언제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이방인일 수 있다. 사회적 제도,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규범, 오래된 관습, 도덕과 윤리, 그러한 것들 안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한다면, 이방인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 마리가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지만 네가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나는 그저 받아들인 것뿐이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할 것인가, 다만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생각해 보는 듯했으나,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잠시 또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할 말이 없이 잠자코 있노라니까, 마리는 웃으면서 내 팔을 붙들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실존적 존재인 인간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제도가 어떤 것이든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랑도 변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면 바로 결혼 생활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일까?

 

 

알베르 카뮈(위키백과)
알베르 카뮈(위키백과)

 

사랑이 없다고 해도 같이 살 수도 있고, 사랑하더라도 같이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랑이 없기에 결혼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사랑이 변하면 같이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랑을 해야 결혼을 하는 것이라면 사랑하는 데도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실존은 우리가 만들어 낸 제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져 내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눈앞에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뜨거운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후볐다. 그때 모든 것이 흔들렸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하늘은 활짝 열리며 불을 비 오듯 쏟아놓는 것만 같았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총을 든 손에 경련이 났다. 방아쇠는 부드러웠다. 나는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를 만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 바로 그때였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이상한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굳어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삶은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다. 어쩔 수 없음,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 어떤 알 수 없음이 우리의 인생을 채워가기도 한다.

삶이 완전하다면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 비합리적인 것도 무수히 많고 완벽하지 않은 것은 셀 수없이 많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많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많다.

나는 전에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언제나 나는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계속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너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삶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상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타인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대체 뭐란 말인가? 흔히 말하는 그 하나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더불어 너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다.”

우리 안에도 뫼르소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예외 없는 실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은 부조리하기에,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상이 채워지기도 한다. 그러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내가 알 수 없는 어딘가에는 내가 모르는 뫼르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실존적 존재이기에 완벽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실존적 존재이기에 그들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부조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존재함으로, 실존적 존재만으로도 삶은 충분하다. 부조리한 삶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내적 평안은 거기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 정태성(한신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