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대한의사협회의 의대증원 반대 의견이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로 불이 붙어 결국 진료거부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저도 전공의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때문에 의사 진료거부를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의사협회는 빠지고 전공의 중심으로 왜곡된 보건의료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진료거부를 이어갔었습니다. 의사들의 정당한 주장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억울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철없고 오만한 행동이었습니다. 되살리기 싫은 기억인데 후배들이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주장만이 중요하고 남들은 모르는 것 같고. 나의 주장이 올바르면 무조건 실행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 당시 어느 시민단체 활동가가 의사들에게 대화를 하자면서 했던 말이 어슴푸레 떠오릅니다.

 

의료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우리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 의사 진료거부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진료거부를 중단하고 이후에 문제 해결을 위해 같이 노력하자

 

왜곡된 보건의료 시스템의 시작은 지난 박정희 정권 때 첫 단추를 잘못 낀 의료보험 시스템과 모든 의료를 민간에 맡겨 공공의료의 씨를 마르게 한 것입니다. 국가에서 보건의료 영역에 투자하기보다 민간 의료를 대신 배치하고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의사들은 모순된 제도임을 알고 있지만 수익이 점차 많아지면서 제도를 고치려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요즘 벌어지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 소아과 오픈런 등은 50년 동안 쌓여온 보건의료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지난 코로나 대감염 시기에는 병실이 없어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환자가 발생하는 것도 한국 의료의 민낯이라고 보도되었습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가는 보건의료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공공의료를 확대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하고 공공의 자금을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런 투자가 의사와 병원의 수익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튼튼하게 하는 데에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의사들이 국민을 적으로 두고 국가와 싸우려 한다면 백전백패입니다. 보건의료의 3개 축은 국민(수요)-의료인(공급)-국가(공공)입니다. 의사가 정부와 싸우려고 진료를 거부하면 국민은 의사 편에 서지 않습니다. 아무리 정당한 주장을 한다고 해도 정부에서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여론몰이를 합니다. 보건의료의 3개 축을 중심에 두고 정부와 국민과 함께해야지, 의사의 이익만을 대변하여 싸우면 안 됩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사진출처 픽사베이

 

전공의 후배님들! 대책 없는 의대 증원이 가진 문제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의사 증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추진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았고, 의대 증원에 따른 여러 부수적인 조건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의사 증원만으로는 의료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공공병원 설립과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의료 공급의 왜곡된 구조를 공익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의사 증원이 현재의 의료 문제를 더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드러난 보건의료 문제점들을 이제 제대로 싸워서 고쳐야 합니다.

50년 동안 굳어온 사회 분위기 때문에 지금은 공공병원 건립을 주장하면 철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상황입니다. 좀 화나고 억울하겠지만 지금의 다짐을 꼭 가지고 있다가 의료 현장에서 국민과 함께 왜곡된 보건의료를 개선하는 자리에서 만나기를 바라겠습니다.

 

조규석(부천시공공병원설립시민추진위원회 상임대표, 부천시민의원 원장)

조규석 원장
조규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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