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보는 대일항쟁기 부천군 역사 - 43회

올해는 3.1운동 105주년이 되는 해로, 우리 민족은 191931일을 기해 거족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는 임시정부를 중국 상해에서 수립하였으며, 만주와 연해주에서는 무장투쟁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미주를 비롯해 해외 각지에서는 동포들이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후원하였다. 우리 부천에서는 3.1운동이 324일 밤에 일어났는데, 소사리 외 6개 마을 주민들이 밤에 산에 올라가 화톳불을 피우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처럼 3.1운동을 통해 민족의식과 정신이 다시 살아났으며, 그 이후에는 다양한 형태로 일제의 억압에 맞서는 항일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3.1운동 이후 부천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항일운동으로 부평농민조합운동이 있다. 부평농민조합운동19271028일에 일어났는데 일제가 설치한 부평수리조합이 촉발의 원인이었다. 일제는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하면서 바로 토지조사사업을 진행했는데 일제가 정한 법적, 제도적 틀이 기존 우리나라에서 행했던 것과 달랐으므로 농민들 상당수가 신고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이들 토지 대부분이 조선총독부에 귀속되었다. 조선총독부가 이 땅을 조선으로 넘어온 일본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 까닭에 많은 농민이 재산을 강탈당한 채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일제는 조선을 안정적인 쌀 공급지로 만들고자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수리시설 확충 사업을 진행하였는데 부평평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결과적으로 소작인들뿐만 아니라 지주들에게도 과도한 수세(水稅) 부담을 안겼다. 부평평야의 수리시설은 1923년 착공하여 이듬해에 준공되었으나, 1925년 대홍수로 파괴되어 복구하는 데 많은 자금이 들어가게 되었다. 1926, 오랜만에 풍년이 들었으나 수세가 수입의 4~5배에 달해 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지주들은 소작인들 동의 없이 1927105, 소작료를 갑자기 인상했다. 구답(舊畓)6, 신답(新畓)5할을 받았던 소작료를 구답은 65, 신답은 6할로 높여버린 것이었다. 이에 1015, 박성환(朴性煥) 10여 명의 소작인이 중리에 모여 농민조합을 조직하여 대항하자는 결의를 하였으며, 창립대회를 23일 오전 11시 오정면 오정리에서 열기로 하였다. 하지만 경찰이 집회를 허락하지 않아 1028일 계남면 소사 정미소 창고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심곡본동 663번지에 세워져 있는 부평농민조합 소작료 인하 투쟁지
심곡본동 663번지에 세워져 있는 부평농민조합 소작료 인하 투쟁지
심곡본동 663번지에 세워져 있는 부평농민조합 소작료 인하 투쟁지
심곡본동 663번지에 세워져 있는 부평농민조합 소작료 인하 투쟁지
심곡본동 663번지에 세워져 있는 부평농민조합 소작료 인하 투쟁지
심곡본동 663번지에 세워져 있는 부평농민조합 소작료 인하 투쟁지

 

이 부평농민조합 창립총회는 사회의 시선을 끌어 조선공산당 사건을 변호하기 위하여 일본 노동농민당에서 특파하여 경성에 머무르고 있었던 후루야사다오[古屋貞雄] 변호사, 경성농민총동맹 중앙위원 인동철(印東哲), 조선노동총동맹집행위원 조경서(曹景敍), 노동대중사 권태휘(權泰彙), 서울청년회 이상학(李相鶴), 경기도청년연맹 고일(高逸), 인천노공친목회 권충일(權忠一) 등 여러 단체의 임원들이 참석하였으며, 또한 각 신문기자, 인천경찰서 소속 순사들도 다수 참석하였다. 소작인들의 분노와 경제적 어려움을 조선총독부도 가볍게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8일 오후 2시 반에 개최된 창립총회는 경과보고, 규약통과, 임원선거, 예산편성, 토의사항[소작료에 관한 건, 농자(農資)에 관한 건, 비료 및 농구(農具)에 관한 건, 농업 근본방침에 관한 건] 등의 의사(議事)를 진행하였으며, 서무부, 교육부, 연구부, 조사부, 선전조직부, 재정부 등 6개 부서를 만들었다.

당시 부평농민조합은 10개 조의 결의사항을 만들어 지주 측과 협의하였는데 그 핵심은 바로 소작률을 기존과 같이하는 것이었다. 부평농민조합운동은 경기도에서 최초로 일어난 소작항쟁으로 그 역사적 의의는 매우 컸다.

이러한 부평농민조합운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심곡본동, 옛 부평수리조합이 있던 곳에 세워져 있다. 심곡본동 663번지에 세워져 있는 이 안내판은 지난 2018, 경기문화재단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설치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각종 쓰레기더미에 묻혀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지만 부천의 자랑스러운 농민운동 역사라는 점에서 이번 3.1절에는 많은 시민이 이곳을 찾아가 보았으면 한다.

부천시는 지난 2021년에 <부천시 일제잔재청산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부평 농민 조합 운동뿐만 아니라 그 밖의 일제 잔재에 관한 연구와 안내판 설치 작업이 진행되길 기대해본다.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