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5주년 특집

삼점일절’, ‘삼점일운동’. 적지 않은 중학생들이 3·1절과 3·1운동을 이렇게 읽었다고 한다. 2013년의 일이다. 서울 시내 중학교 5군데에서 20명 남짓 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라고 한다. 20% 정도의 중학생이 3·1절을 읽는 법조차 몰랐으며. “3·1절은 무슨 날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북한군이 쳐들어와서 벌어진 전쟁이라고 엉뚱한 대답을 내놓은 학생도 있었다.

3·1운동은 ‘191931일을 기해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으로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며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3·1운동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다. 191931일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일제에 강제 병합당한 지 9년 만인 1919년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여기에는 총독부의 억압적 통치, 1차 세계대전 이후 대두한 민족자결주의,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치밀한 준비, 고종의 죽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서울, 평양 등 7개 도시에서 시작한 3·1운동은 인근 도시와 농촌 지역으로 확산하며 4월 말까지 지속되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19193~5월 동안 50인 이상의 시위가 1,542회 전개되었으며 2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일본 측 자료는 3~4월 동안 848회의 시위가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세를 불렀다.

 

3·1운동 105주년 기념 아우내 봉화제 장면(사진 출처 천안시)
3·1운동 105주년 기념 아우내 봉화제 장면(사진 출처 천안시)

 

3·1운동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만세’, ‘대한(조선)독립 만세를 외쳤지만, 그 실제 의미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이미 독립이 된 줄 알고 만세를 외쳤고, 어떤 이는 독립만 외치면 곧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하고 만세를 외쳤다. 나라의 독립과 상관없이 현재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 해결되리라는 유토피아적 희망과 욕구 속에서 독립을 외친 사람도 있었다. 3·1운동의 양상도 다양했다. 도시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대개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3·1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평화적 시위로 일관하자 지역에 따라서는 일제 당국이 만세만 외치는 수준이면 시위를 용인하기도 했다. 반면 농촌에서 전개된 3·1운동은 보다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다. 농민들의 폭력은 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같은 식민통치 기구와 면장, 순사 같은 식민통치의 대행자들을 향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육군성에 ‘19194월 상순 시위가 극에 달해 거의 내란과 같은 상태가 조성되어 있었다라고 보고했다.

1945815일 일제가 패망한 이후 3·1운동이 가진 이미지는 더욱 분열되었다.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31기념행사는 정치집단의 극심한 대립 끝에 남산과 서울운동장, 두 군데서 거행됐다. 한편에서는 민족대표 33인이 3·1운동을 주도했다고 여겼다. 이들은 3·1운동이 가진 비폭력성과 3·1운동의 정신을 임시정부가 계승하였음을 강조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중들이 3·1운동을 이끌었다고 보았다. 이들은 무계획적이고 타협적이며 무저항주의라는 행동을 보인 3·1운동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비록 여러 가지 약점이 있었음에도 민족대표가 3·1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음을 인정하며 3·1절 기념행사의 통합을 꾀하는 이들도 있었다.

2019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해를 넘어 2024년 다시 31일을 맞이하게 됐다. 지금의 우리는 191931일을 기억하며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3·1절보다 익숙하지 않은 삼일절 노래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끝내고자 한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이재석(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수료)

 

이재석(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수료)
이재석(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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