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수가 됐냐고요? 그냥 노래가 좋았어요”

부천시 송내동에 있는 향기네무료급식소에 갔다가 그곳 임성택 대표로부터 가수 오혜성의 부음을 들었다. 오혜성은 임성택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BCB 부천방송에서 「오혜성의 행복한 가요」를 진행하던 젊고 재능있는 가수였다. 큰 키에 잘생긴 외모를 지닌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으나 가끔 방송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부천에 저런 가수가 있다니. 참 멋지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진한 선글라스를 끼고 열정적으로 기타를 치던 모습과 긴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채 셔츠 깃을 잔뜩 세우고 가슴을 살짝 풀어 헤친 복고풍의 패션은 언뜻 보기에 엘비스 프레슬리를 닮은 것도 같았다. 언젠가 꼭 한 번 인터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뜻밖에 세상을 떠났다니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가수 故오혜성의 생전 공연 모습
가수 故오혜성의 생전 공연 모습

 

그의 사인은 당뇨로 인한 저혈당쇼크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이 무대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에게도 적잖은 타격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오직 노래를 통해서 대중을 위로하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랑을 해야지라며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애쓴 그였지만 정작 자신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외로움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지난 1,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선후배 가수들이 모여 추모음악회를 연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부디 그의 삶과 음악을 기억하는 선후배 가수들의 목소리가 저 하늘 멀리까지 울려 퍼져서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기를 기도한다. 또한 그는 비록 떠났어도 그의 음악만은 남아 오래도록 외롭고 힘든 지상의 영혼들을 위로해주리라 믿는다.

 

故 오혜성 추모공연 영상

故 오혜성이 진행했던 「행복한 가요」 유튜브 부천방송

 

가수 오혜성의 죽음을 계기로 콩나물신문은 향기네 BCB 부천방송과 손잡고 창간 10주년 특집 명 가수 열전을 시작한다. 모든 예술의 세계가 다 그렇듯이 세상에는 이름이 알려진 가수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가수가 훨씬 많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다. 콩나물신문은 향기네 BCB 부천방송의 도움을 받아 이들 실력파 명 가수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노래가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콩나물신문 창간 10주년 특집 무명 가수 열전, 그 첫 번째 주인공은 하얀나비라는 애칭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수 김경선이다.

 

햐얀나비 김경선 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오혜성 가수 추모음악회에서 노래하는 걸 처음 봤는데, 그때 부른 노래 중에 편지라는 곡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어요. 그렇게 슬픈 노래는 처음 들어본 것 같아요.

, 제 노래는 아니고요, 윤동주 시인의 시에 사랑과 평화유지연 선생님이 곡을 붙인 노래예요. 윤동주 시인이 중학생 때, 죽은 누나를 그리워하며 쓴 시라고 합니다. 소년 윤동주의 누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느껴져서 저도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왠지 감정이 울컥하곤 해요. 특히 오혜성 가수 추모음악회 때는 그런 마음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하는 걸 보면 원래 슬픈 노래와 잘 맞는 가수인 것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어떤가요?

특별히 슬픈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고 밝은 분위기의 댄스곡도 다 소화할 수 있는데 이상한 건 다른 가수가 부르면 경쾌하게 들리는 노래도 제가 부르면 슬프게 들린다고들 하세요. 근데 아무튼 저는 장르는 정말 모든 장르를 다 좋아해서 이거는 안 좋다, 이거는 좋다가 아니라 다 좋아해요. 밝은 노래든 슬픈 노래든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요.

 

가수 김경선
가수 김경선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인가요?

제 고향이 전라남도 보성인데, 원래 소리의 고장이라서 그런지 아버지도 소문난 소리꾼이세요. 악기도 웬만한 건 다 다루시고. 얼마 전 맥도날드 보성녹돈 버거 광고에도 출연하셨어요. “스르르, 스르르하면서 스르르 타령을 부르시던 분요.

저도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어려서부터 노래가 무조건 좋았어요. 무작정 노래가 좋았고 듣는 것도 너무 좋아했고 그런데 제가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어서 남 앞에 나서는 걸 전혀 못 했어요. 그래서 주로 듣는 걸 많이 했었죠.
젊어서는 가수가 될 생각은 꿈도 못 꿨어요. 먹고 살기가 너무 막막하고 바쁜데 그렇게 애들 키우면서 아등바등 살다 보니까 이제 30대가 다 갔어요. 그러면서 40대 중반쯤 되면서 조금 생활이 조금 편안해지고 내가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볼까 하고 이제 그 방법을 강구하다가 우연히 기타를 배우게 됐어요.

그때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식당 일을 했는데 기타를 배우는 즐거움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일을 했어도 그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인터뷰 도중 필자가 제시한 가사를 즉석에서 불러 보이는 가수 김경선 
인터뷰 도중 필자가 제시한 가사를 즉석에서 불러 보이는 가수 김경선 

 

기타를 배운 게 가수가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이네요. 근데 사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가수 같은 경우는 나이 든 사람들이 도전하기에는 좀 어렵잖아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작년 1219일에 첫 앨범을 내셨습니다. 축하드리면서 어떤 앨범인지 좀 소개해 주세요.

저는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으려고 노래를 한 게 아니고 또 제가 노래를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다보니 제 일기가 노랫말이 됐어요. 제 마음을 그냥 노트에다 끄적거린 건데 어느 날 저를 아시는 분이 , 그거 노래 한번 만들어봐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이제 기타도 조금 되고 노래도 몇 년 하다 보니까 그래 노래 한번 만들어볼까?’ 그렇게 해서 노래를 만들게 됐어요. 이번 앨범에 총 10곡이 실려있는데 제 자작곡이 여섯 곡이에요. 곡은 모두 기타리스트 김광석 선생님이 편곡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사석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제가 노래하는 걸 들으시고는 내가 경선 씨 앨범 만들어 줄게라고 제안하셔서 2년 만에 이렇게 앨범이 나오게 된 거예요.
앨범을 내긴 했는데 그러니까 제가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제 노래를 내세우는 게 너무 자신이 없고 좀 창피하고 그래요.

 

김경선 1집 앨범 『나의 그대여』
김경선 1집 앨범 『나의 그대여』

 

 

저처럼 글 쓰는 사람들도 시, 소설 뭐 이렇게 꼭 정식으로 배워서 잘 쓰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부터 재능이 있는데 누군가가 이제 그 재능을 살짝살짝 이렇게 건드려주면은 그게 저절로 발휘돼서 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자신감을 가지시고 용기 내시기 바라겠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데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가요?

나중에 어느 순간에 가서 여러 군데에서 초대가 오고 그러면 이제 가수를 본격적으로 해야죠. 하지만 아직은 전문적인 가수로 활동하기보다는 직장생활을 제가 따로 하고 있으니까 직장생활이 우선이고요. 가수 활동은 주로 토요일, 일요일 주말을 이용해서 하려고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이 평택인데, 서울 인천, 부천 등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주말엔 항상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거절하지 않고 어디든 달려갑니다. 노래할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우니까요. 예전에 까치울역 3번 출구에 있었던 <올라>에도 자주 갔었는데, 지금은 성곡동 행정복지센터 앞으로 옮겼지만요. 기회가 되면 어디서 건 부천 시민 여러분과 만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가수 김경선
가수 김경선

 

인터뷰이종헌(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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