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여행은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자원봉사와 문화체험이 어우러지는 여행이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전모임에서 프로그램과 진행 일정 등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생각하던 공정한 여행,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여행을 가는구나!

함께 한 마을활동가 15명은 몇 차례의 사전모임을 통해 봉사의 내용과 취지를 공유하고, 봉사에 필요한 재능을 배우고 연습했다.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문 미용사에게 교육을 받고, 실습도 했다. 한 선생님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가족의 머리카락을 손질하기도 했다는데, 캄보디아에서 커트 손질하는 걸 보니 소질 있다고 느낄 정도로 많이 연습해 오셨다.

 

캄보디아 쓰라쓰렁 마을의 천진난만한 아이들
캄보디아 쓰라쓰렁 마을의 천진난만한 아이들

 

2017년 생협 활동을 하면서 소속 조합이 우수조합으로 선정되어 홍콩 사회적경제 연수를 간 적이 있다. 홍콩으로 연수를 간다고 하니 모두 한결같이 홍콩 야경 보러 가는구나? 라고 말했지만, 최대 3만 보 걸음을 찍었던 7년 전 홍콩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홍콩 현지 사회적기업의 안내를 받으며,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기업들을 방문해서 배우고, 체험하고, 윤리적 소비를 실천했다.

정부의 정책으로 개발위기에 처한 역사적 건물을 주민 간 이견조율, 공청회 과정을 거치며 청년의 거주공간,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거듭나게 한 사례, 홍콩 청년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 공방이면서도 사업성이 가미된 샵 PMQ, 오래된 건물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을 통해 계속 다른 쓰임새로 활용되는 곳들을 보며 높은 빌딩과 화려함 속에 감춰진 홍콩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웠다.

그리고 취약계층 여성을 고용한 식당, 식당 주인 외에는 직원 전부가 장애인인 식당, 매장 한편에 공정무역 물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던 가게 그리고 홍콩에서 2016년 문을 연 자연드림 매장과 가가아이쿱생협까지 참으로 뜻깊은 홍콩 공정여행이었다.

홍콩 공정여행 이후로 관광이나 휴양지 방문의 일반 여행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의미 있는 캄보디아 여행을 가게 되어 일찍부터 마음은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게 될 기대와 설렘으로 부풀어 있었다.

 

쓰라쓰럼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 김치담그기
쓰라쓰럼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 김치담그기
쓰라쓰렁 마을 미용봉사
쓰라쓰렁 마을 미용봉사
쓰라쓰렁 마을 주민과 함께한 노래하기
쓰라쓰렁 마을 주민과 함께한 노래하기
쓰라쓰렁 마을 주민을 위한 치위생 교육
쓰라쓰렁 마을 주민을 위한 치위생 교육

 

이번 캄보디아 봉사+문화 체험은 기획과 답사, 현장 세부 진행까지 맡아 준 세 분의 발품과 노고로 큰 어려움 없이 봉사자와 현지인 모두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음알음 협찬받은 의약품과 문구, 칫솔 치약 등의 생필품까지 전달받고 분류하고 짐을 나누며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우리의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쓰레기마을 up dream 교회와 가난한 농촌 마을 쓰라쓰렁에서 이틀 동안 다양한 컨셉의 마을축제를 열었는데 나는 다행히도 김치담그기, 부추전, 종이접기 부스에 배정되었다.

처음에는 캄보디아에서 웬 김치인가 싶었는데, 현지인들은 김치를 좋아했고, 그 맛도 우리 김치와 별반 다르지 않아 호응도 좋았다. 배추 겉잎을 떼어 부침가루 옷을 입고 노릇노릇 구워낸 배추전은 예상보다 훨씬 맛있어서 소쿠리 가득하던 배추를 부쳐내기에 바쁠 정도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여섯 줄의 행복 기타 팀은 동요와 가요를 신나게 부르며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빛을 나누고 하나 되게 하기에 충분한 음악을 선사했다. 음악과 함께 우리는 온몸으로 서로를 환대하며 손을 맞잡고 친구가 되었다.

후원해 준 물품으로 치 위생 교육도 진행하고, 간단한 네일아트, 얼굴에 마스크 팩도 붙여주며 하루가 어떻게 간지도 몰랐다. 지나고 보니 150명이 넘는 캄보디아 현지 주민들과 15명의 여행자들 그리고 현지에서 가난한 자를 섬기며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사님과 캄보디아 사역자들은 35도의 더운 날씨에도 그 흔한 에어컨 하나 없이 더위를 잊을 정도로 축제에 흠뻑 빠져있었던 것 같다.

 

쓰라쓰렁 마을 봉사활동에 함께한 15인의 마을활동가와 현지 교회 관계자
쓰라쓰렁 마을 봉사활동에 함께한 15인의 마을활동가와 현지 교회 관계자
앙코르와트 사원
앙코르와트 사원

 

축제를 마치고 하루 반나절은 앙코르와트도 가고 전통 재래시장도 방문했다. 깨끗하지 않은 주거환경과 더위, 물건 파는 아이들, 값싼 노동의 대가와 높은 문맹률, 세계 최빈국. 여러 가지 수식어가 그들의 삶에 붙어있지만, 어디를 가든 그 누구보다 따뜻한 눈빛으로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는 그들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나는 끊임없이 되물었다.

많은 걸 가졌지만 끝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우리를 생각하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여행은 자기 밖으로 떠나는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글이 나에게로 오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집이 그리웠다. 낯선 곳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 복귀하면서 나는 또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게 되리라. 그러나 해내야 할 일들과 시간의 빠듯함 속에서 나도 모르게 부서지는 것 대신, 다음 여행을 위해 또 일상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46일 동안 함께 한 모든 이들과 마음으로, 물질로 여정에 동참해 준 후원자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원건형 (콩나물신문협동조합 이사, 소비자기후행동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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