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은 제 35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의 날은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이나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그저 많고 많은 기념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날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규정하고 장애인의 차별에 저항하고 장애차별을 철폐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장애차별 철폐를 위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보신각에서 전국의 장애단체 관련자 및 장애인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합법적인 집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참가한 전국의 장애관련 단체 및 장애인들을 과격하게 진압하고 심지어 집회해산을 요구하며 ‘오늘은 장애인의 생일입니다. 여러분도 장애인 될 수 있습니다’라는 발언까지 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 지난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 투쟁대회'를 마치고 행진 중인 장애인의 휠체어를 경찰이 제지하고 있는 모습(출처 : 비마이너)

 

 WHO는 세계인구의 10%를 장애인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2013년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5%, 약 250만명으로 장애 인구를 추산하고 있다. 세계기준을 밑돌고 있으니 장애인 복지 선진국이라서 그런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이것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적용하고 있는 장애등록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를 등록하지 않으면 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그와 동시에 통계에서 조차 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에 장애인 활동가들은 광화문 지하광장에서 900여일째 장애등록제 폐지를 요구하면서 농성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그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애인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과거 역사 속의 장애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다른 나라의 장애인은 우리나라 장애인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과거에도 장애인은 존재했고 서양보다 훨씬 진보적인 제도 아래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었으며, 지금처럼 시설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감금·보호해야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질병과 교통사고, 산업재해, 환경재해로 장애를 입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각종 질병이나 전염병, 생활사고, 전쟁, 형벌 등으로 장애를 입곤 했다. 흔히 과거의 장애인은 오늘날에 비해 매우 힘들게 살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지어 장애인을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근·현대에 이르러서이다.
 과거 우리나라의의 장애인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몸은 좀 불편했더라도, 장애에 대한 편견은 훨씬 덜해 사회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갔다. 비장애인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치고 여행을 다녔으며, 심지어는 살인사건이나 간통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더 나아가 살아가는 데 불편한 것이 있으면, 함께 모여 임금께 나아가 상소하는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임금이 나올 때면 임금의 앞엔 시각장애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앞길을 유도했는데 이를 통해 임금은 백성에게 장애인을 존중하고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당시엔 사람이 귀하고 많은 것들을 사람이 직접 해야 했기에 장애인도 집 안에서 그만의 역할이 있었으며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근현대에 들어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풍속정화라는 이름으로 장애인들을 전부 수용소에 가뒀다. 국제적인 큰 행사에 장애인들이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결과물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장애인은 더 이상 구호와 동정의 대상일 수만은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몸과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정은 물론 사회로부터 차별받거나 소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라 해서 특별한 처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활하는데 있어 불리한 사회구조나 환경이 개선되어 모두 함께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장애와 장애인의 문제를 단순히 일부 한정된 계층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로만 볼 수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정책은 공급자 위주로 추진되어 왔고 장애에 대한 인식과 현황 분석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루어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 등록제 또한 같은 선상에 있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장애인등록제를 시행하고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가 장애인을 통제하고 시혜적인 정책들을 쉽게 입안하고 정책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복지 정책은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법, 제도 등이 제대로 연계되어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 문제는 장애등록제와 부양의무제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후보시절 장애인들과 약속한 장애등록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하루속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 양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을지 모르나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이 배어 있지 않는 한 장애인의 인식 및 정책은 늘 제자리걸음 또는 퇴보할 것이다.

글_함께걸음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이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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