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광장 도서관 광장지기 남태일 조합원

 1호선 역곡역 2번 출구, 남부광장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부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다 보면 역곡남부시장이 나온다. 시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부천동중학교, 동여자중학교로 올라가는 언덕 길이 있다. 그 언덕을 따라 언덕 마루까지 올라가 만나는 사거리 왼쪽에 부안초등학교가 있고, 그 오른편에 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이 있다. 도서관 이름에 ‘언덕’이 들어간 이유는 도서관을 찾아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정말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서관, ‘언덕위광장’에서 광장지기이자 어.울림교회 목사 남태일 조합원을 만났다.

 

 

 언덕위광장 도서관은 지역주민이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회원이 아니어도 와서 책을 읽을 수 있고, 회원이면 책을 빌릴 수도 있다. 물론 회원 가입은 무료이다. 또 비영리 모임활동, 세미나 등의 공간 등이 필요하다면 무료대관도 가능하다. 올해 3월 3일에 개관하여 운영 된 지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도서관 회원들의 다양한 모임활동과 교육 행사가 진행 중이다. 소사구 괴안동 언덕 위에 세워진, 작은 공간임에도 큰 역할을 하는 이 도서관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언덕위광장 도서관은 어.울림 교회가 운영주체이다. 평일에는 도서관으로 운영하지만 일요일은 예배를 드리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어.울림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인데, 교회가 공간이나 건물을 꼭 가져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지난 1년 동안 자신들 소유의 공간을 갖지 않고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그 1년은 역설적으로 공동체에게 일정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했다. 크고 세련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같이 밥을 먹고 공동체임을 확인 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가치나 행동을 위해서 필요했다. 그래서 역곡 북부와 남부 지역에서 공간을 찾던 중에 이곳 괴안동에서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역곡 북부에서 30년을 살았지만 역곡 남부는 남태일 조합원에게 낯선 곳이었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동네, 역곡 남부 괴안동에 언덕위광장 도서관을 교인들과 함께 만들었다.

 사회과학적인 생각과 마주칠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

  언덕위광장 도서관은 작은 도서관 중에서도 돋보이는 특징이 있다. 아동도서, 교육 관련 도서 이외에도 작은 도서관답지 않게 묵직한 인문, 사회과학도서들을 구비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사회과학 책에 주력하게 된 이유에는 도서관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실현하고 싶은 큰 포부가 담겨있다. 남태일 조합원은 “이 지역에서 어떤 담론을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삶이 바쁘다보니 같이 고민을 나누거나 지역에, 사회에, 정치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무관심하고 그런 무관심 가운데 지역과 사회, 정치는 그 순기능을 잃어가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이 고리를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선순환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가치관의 충돌이 이런 사회과학적인 생각과 이야기들에 자꾸 노출되어야 가능해지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리고 도서관 이름이 언덕위광장이잖아요. 다양한 철학과 사상이 고대 그리스의 광장에서 시작된 것처럼 언덕위광장에 모여 소통과 토론, 삶의 이야기를 통하여 새로운 대안, 나아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을 함께 만들어 가는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는 광장.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된 거예요. 또 성경에서 언덕 위의 도시를 말하는 구절이 있어요.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거죠.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곳. 그런 의미에서 언덕 위를 이야기 하게 된 거예요.”

 남태일 조합원은 이번 여름방학부터 진행하게 될 청소년 인문학 모임에 대해서도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변에 중학교가 두 개나 있고 하니, 2-3명이라도 함께 책을 읽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나눌수록 채워지는 공간

 지역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대안적인 ‘공간’을 운영하고 있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많다. 또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지만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부탁드렸다.

 “공간을 얻자고 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경제적인 문제에서 우리가 만들었던 원칙은 ‘돈 있는 한 명이 얻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몫을 하자.’였어요. 물론 산술적으로 액수를 나눈 것은 아닙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의 1/n이지요. 이를 위해 먼저 마음을 모았습니다. 모일 때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방향에 대하여 의견을 진솔하게 나눴습니다. 그런 과정 가운데 공간에 대한 필요와 당위성을 각자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책임도 나눠 감당할 마음이 생겼지요. 이렇게 공간을 얻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구성원 전체의 책임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간을 얻었다고 하여 그 구성원이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유기적 결합관계 가운데 공간이 있잖아요. 건물은 우리가 얻었지만 앞에 길을 내고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가게가 있어 편리한 생활을 하고,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공간을 얻었다고 우리만의 것은 아니죠. ‘함께’ 있기 때문에 공간이 더 공간다워지는 것이니 오픈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제대로 된 공간 이용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공간을 이렇게 나누려고 하니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들로부터 뜻밖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도서관에 책상이 생기고, 책장에 책이 채워지고, 도서관을 알리기 위한 전단지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어.울림 교회가 언덕위광장의 운영주체지만, 그 자리가 지역주민들로 채워져서 혹시 교회가 떠나게 된다고 하여도 지역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기를 바라는 꿈을 꾸고 있는 남태일 조합원. 언덕위광장의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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