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안에작은나무 도서관 관장 나유진 조합원

 마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그러나 한 마을에 사는 그 다양한 사람들은 서로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한 동네에 산다고 저절로 관계가 만들어지기에는 각자의 삶이 너무나도 바쁜 탓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갔다가 이 학원 저 학원을 모두 돌고 나서야 학원 가방을 질질 끌면서 집에 돌아가는 어린이도,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지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어른도.

 마을이란 무엇일까? 우리 집 주소지 이상의 의미는 사라져 버린 요즘, 그 곳에 가면 마을을 실감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있다.
 
 평일 오전에는 네다섯 살 아이를 둔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모여서 그림책을 가지고 책 놀이를 하고, 오후에는 수업이 끝난 초등학생 어린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만화책을 읽으며 시시덕거린다. 저녁에는 사교육을 받는 것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는 학부모들의 교육강좌가 열린다. 때때로 동네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모임을 갖고, 시민단체의 회의나 행사장소로도 이용된다. 한달에 한번마다 ‘뜰안에작은음악회’라는 이름으로 공연장을 필요로 하는 인디 뮤지션들과 공연을 즐기고 싶은 마을 주민이 만나는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에는 작은나무교회가 되어 예배를 드린다.
 
 17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600여명이 넘는 동네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동네 친구’를 만들어 나가는 커다란 공간 ‘뜰안에작은나무’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역곡의 작은 도서관 ‘뜰안에작은나무’ 관장이자 청소담당, 그리고 ‘작은나무교회’ 목사인 나유진 조합원에게 그 즐거운 소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콩나물신문협동조합 나유진 조합원
 
저는 부천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도서관을 하면서 ‘동네’이야기, ‘역곡’ 이야기를 하니까 동네에서 오래 산 줄 아세요. 그런데 도서관을 만들면서 이사를 왔으니까 이제 역곡에 산지는 2년이 되었죠.
 
 제 고향은 서울인데 직업이 목사다 보니 교회를 따라서 많이 옮겨 다녔어요. 용인도 갔다가 부산에도 갔다가 그리고 부목사로 마지막에 있었던 곳이 구로구 오류동이었어요. 거기서 주변을 둘러봤어요. 서울을 벗어나고 싶지만 시골살이를 안 해봤으니까 시골에서는 살 용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부천 역곡을 택하게 되었어요. 아파트 숲은 싫어서, 가까이에 자연이 있고 아파트도 조금 있고 연립도 있는 환경이 맘에 들었어요. 처음에 이사를 올 때부터 더 이상 떠돌아다니기 보다는 이곳에 정착해서 아이들을 고등학교 때까지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오래 살고 싶으니까 좋은 동네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정말 관점이 달라졌어요. ‘학교가 맘에 안 들어. 애들이 공부를 잘 하네 못하네, (이 학교에는) 폭력이 있네 없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냥 난 이 동네에서 살 꺼고, 여기서 키울 거야.’ 그러면 좋은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좀더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학교를 둘러싼) 환경과 (동네) 사람들을...
 
 그리고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빨리 만났던 것 같아요. 저는 도서관을 통해서 가치가 맞고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초반에 빨리 만났다면 가족들도 그런 친구들을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도 학교나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되면서 빠르게 적응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 놀이터에 아이들은 없지만
 
 아이들을 학원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뛰어 놀면서 더불어 건강하게 키우는 사람은 소수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소수는 맞아요. 그런데 그 소수 외에는 다 학원에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더라고요. 학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확고한 교육관을 가진 분들 역시 소수였던 거예요. 사실 그 밖의 다수는 고민하고 계세요. 그렇지만 이분들이 접할 수 있는 건 학원 밖에 없어요. 이게 대세인거 같고, 이거 밖에 길이 없는 것 같지만 부담스러운... 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애들이 좀 놀아야 하지 않는 그런 생각은 가지고는 계세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학원 외의 다른 대안은 안 보이는 거죠. 놀면서 키우자? 그런데 놀이터에 애들은 없어, 맨날 프로그램 찾아 문화센터를 다녀야 하나? 체험활동한다고 박물관 가야 하나?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그 분들에게 다른 걸 이야기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걸 설득할 능력은 없지만, 이러한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교육 전문가들을 불러서 강좌를 열기 시작했어요. 도서관에서 하는 강좌들이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제시해줄 수 있었으면 했던 거죠.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존경할만한 노력이지만, 갈 수 있는 건 소수잖아요. 나머지 다수도 행복해질 수 있는 학교가 되면 좋지 않겠나? 공교육이 변하고, 우리가 사는 마을이 변하고, 대안적인 문화들이 확산되면 좋지 않을까? '숲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좋은거야. 놀이터에 나와 봐. 친구가 있어.' 지금 현실에는 없어요. 그러나 있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고, 우리가 같이 있어주고 싶고, 그렇게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사실은 도서관도 그런 거죠. 그런 차원의 놀이터가 되고 싶어요. 저희 도서관에서 2년째 지속되고 있는 퐁퐁 책놀이의 경우에도 갈만한 놀이터가 사라진 아이들의 엄마가 '여기에서 책 놀이를 하는게 너무 즐겁다.'해서, 지나가다 와서 함께 노는 엄마와 아이들이 생기고 그렇게 지속되고 있거든요. 우리 때는 그냥 운동장에서 공 하나 가지고 막 뛰어 놀고, 나무 잘라서 칼 싸움하고, 놀다가 다치고, 그렇게 새로운 애들도 알게 되고 그런 게 놀이터 문화였는데, 이제는 어른들이 나와서 가르치는 놀이가 되었다는 점이 씁쓸하지만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어른들이 망가뜨렸으니, 무너뜨린 사람이 복구를 어느 정도 해줘야 아이들이 그 기반 위에 올라서지 않을까요? 이런 대안적인 것들이 꼭 이 동네에서 해야만 한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까, 그런 걸 꿈꾸는 사람들이 (이 곳에) 많아지면 좋겠다. 나중엔 어느 동네든 그럼 좋겠다 싶은 거죠.
 
 교회가 교인들만 쓸 수 있는 닫힌 공간이기보다는 지역사회에 활짝 열린 공간으로 주민들에게 활용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운영된 지 2년째, 상상보다 더 커진 현실은 ‘앞으로 이렇게 10년 뒤라면 역곡은 어떤 모습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목사’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내려놓고,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나유진 조합원. 요즘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강좌를 기획하게 될 때가 참 좋다고 한다. 공간을 통해 이렇게 콩나물신문과도 인연을 맺게 되고, ‘어린이 좌담회’도 하게 된 것도 공간을 처음 만들었을 당시 상상이나 했겠냐며, 마지막으로 콩나물 신문에게 바라는 점을 질문해달라고 스스로 요청해주셨다. 그 대답은 바로 “지금 이대로만 해주면 좋겠다. 끝!” 
 
 한 교회가 만든 이 작은 공간은 그 가치를 경험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하루가 다르게 더 풍요로워진다. 콩나물 신문도 나유진 조합원의 참여와 응원으로 한 뼘은 쑥쑥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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