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동 소천화실 화가 강해운 조합원

 

 강해운 화가는 신흥시장 사거리에 있는 건물 2층에 화실 겸 작업실을 꾸려나간다. 시댁이 화곡동이라 거기에서 살다가, 화곡동과 가까운 원종동에 이사하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고 16년째 부천사람으로 살았다. 지인과 콩나물신문사에 놀러 왔다가 협동조합신문 매력에 끌려 그 자리에서 가입원서를 썼다.

나이 먹을수록 친구가 필요해

 “요즘 사람들은 줄도 맞추지 않고 컸다 작았다 자유스럽게 쓰는 글씨체를 좋아해요. 틀에 박히지 않은 거를 좋아하는 거죠. 그래서 서예하시는 분들이 캘리그라피 쪽으로 많이 넘어가더라구요. 맥락이 닿는다고 할까요. 서예에 창작을 더해서 글씨를 그림처럼 하자는 거에요. 서법을 중시하시는 선생님들은 싫어해요. 그렇지만 글과 그림이 어울리려면 글도 좀 바보스럽게 못생기게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본을 충분히 익혀야 합니다. 자칫하면 글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게 되거든요. 기본이 약하면 나중에 슬럼프에 빠져요. 뭐든지 기본을 갖춰야 발전이 되는 거지요.”

 사람들은 자기 정서를 밖으로 드러내야 산다. 그런데 어떻게 드러낼지를 잘 모른다. 그런 면에서 예술가들은 신기하다. 눈앞에 보이는 실체와 현상을 한 순간에 잡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글로든, 그림이든, 몸동작으로든 표현한다. 눈앞에 놓인 토마토를 보고도 화가들은 각자 달리 그린다. 일반인이 사람들 틈에서 늘 언행으로 정서를 드러낸다면, 예술인은 노래와 그림, 춤 등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맞아요. 왕성하게 활동하고 떠들던 사람이 나이 먹을수록,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죠. 나이가 들수록 말이 통하는 친구가 필요하잖아요. 근데 이건 친구인거 같아요. 상대가 없어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친구죠. 그림이나 글은 하루 종일 같이 대화할 수 있어요. 붓을 잡고 있는 동안에 내가 어떻게 하든 얘는 뭐라 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서 더 좋을 거 같아요. 평생 같이 가는 동무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걸 접했으면 좋겠어요. 이거는. 정말. 아휴~”

 

 좋아하는 표정이 얼굴에 확 드러난다. 듣고 보니 그렇다. 그렇게 따지자면 굳이 나이든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일상적으로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기 삶을 더 풍요롭게 하겠다. 그런데도 우리는 바빠서 할 새가 없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핑계를 대며 정서를 털어내지 못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쌓으며 산다. 그래서 더 예민해지고 더 치열해지고 더 각박해진다.

 지금 이 나이에 뭘 해?

 “지금도 경기가 안 좋잖아요. 회원들도 많이 떨어지고. 어머님들이 많이 안 나오죠. 경기를 제일 많이 타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예술은 당연히 더 필요하죠. 더구나 우리는 나에게 투자하는 것은 너무 인색하잖아요. 핑계 아닌 핑계를 대요. 다음에 여유가 되면, 다음에 뭐하면 어쩌니 해요. 그러다가 세월이 다 가는 거지요. 다 늙어서는 ‘지금 이 나이에 뭘 해.’ 이러더라구요. 저는 원종1동 주민 자치센터에 1주일에 두 번 가서 가르치는데요. 나이 드신 분들이 사군자 배우신다고 나오고, 노래 배운다고 나오는 걸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멋있어 보여요.

 현대인은 무조건 일주일에 두 번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기를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요. 처음엔 그림이 왜 안 되지 하지만, 그 불만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 그건 나중이고 붓을 들 때는 아무 생각이 안나요. 잡념이 없어지죠. 들고 있는 동안에는 막 복잡했던 사연들이랑 내 마음 심란했던 것들이 사라져요. 다른 생각할 여지가 없죠. 그러니까 그 시간만큼은 좋잖아요. 이 매력을 알면 붓과 헤어지기가 어렵죠. 정말 헤어지기가 힘들죠.”

 “주민자치센터에서 가르치는 이유요? 제가 그림 공부를 어렵게 했어요. 뭐든 식구들에게 배우기가 힘들잖아요. 잘 가르쳐 주지도 않고, 칭찬보다는 계속 혼내는게 많았어요. 속으로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가, 이렇게 실력이 없는가’ 하면서 어떤 때는 하기 싫었어요. 칭찬 한 번 해줬으면 좋겠더라구요. 그래서 다른 선생님한테 배우러 갔는데, 잘 안 내려주시더라구요. 내 마음은 이렇게 닿을 거 같은데 내려주시는 건 조금이라서 너무 갈증이 심한 거예요. 그런 과정에 들어가는 경제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구요. 손 놓으면 안될 거 같아서, 이 선생님한테도 가보고 저 선생님도 기웃거리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구요. 내가 진짜 어느 정도로 수준이 되면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정말 편하게 배울 수 있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가르칠 때는 정말 경제적인 부담을 안 느끼게 가르쳤으면 좋겠다, 아무나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배울 수 있게 해야겠다 싶었지요.”

 독특하다. 남다르다. 뭐라고 딱 꼬집지는 못하겠다. <서편제>는 애비가 자기 딸내미 눈을 멀게 해서 그 고통을 예술로 드러나게 한다는 설정이었다. 엄청난 관객을 모으고 한국인의 한을 잘 담았다는데, 영화를 보며 내내 불편했다. 한 여자가 미친 아비를 만나 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아버지 소원대로 산 게 한국인 정서야? 왜 그런 식으로 최고 경지에 올라야 하지? 그럼 모든 예술인은 모두 눈을 뽑아야 하나?

잘 하지 않아도 되요

▲ 소천화실 수강생들과 함께
▲ 수강생들의 습작

 “나한테 글씨를 배우던 그림을 배우던 어느 경지에 오르라고 요구하진 않아요. 끝없이 목표를 향해서 가겠다면 도와주죠.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그런 것에도 맞춰주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하는 게 좋아요. 저도 틀에 박힌 건 정말 싫어하거든요.” “가장 보람이 있는 거라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예요. 지금은 인성도 평가하는 세상이 되었어요. 앞으로 인성 학원도 다녀야 해요. 너무 모든 게 입시 위주잖아요. 인성을 배우러 학원을 다닌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붓을 들고 있으면서 참을성도 길러지고 산만한 것도 없어지지요. 자연스럽게 어른들하고 대화하면서 사람의 관계도 배우고요. 애들이 이렇게 접하면 될 일이지, 따로 인성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우습죠.”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으로 몸을 감고, 아름다운 것만 보는 것일까? 부천 초등학생들이 시에서 지원하여 의무적으로 수영을 배운다. 그걸 좀더 확대하여 진짜 문화특별시답게 초중고 학생들이 1년에 하나씩 악기든, 춤이든, 서예든, 그림이든 배웠으면 좋겠다. 그런 활동을 하겠다는 학급과 동아리를 어른들이 제대로 지원하면 더욱 좋겠다. 따지고 보면 그 작은 예산으로도 아이도 행복하고, 수많은 예체능 강사도 행복하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할지도 모른다.

 강해운 화가는 콩나물신문 조합원이 원하면 화요일쯤에 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내주시겠다고 한다. 콩나물 조합원 함 모여보자. (조합 사무실 전화 : 032-672-7472)

 

▲ 인터뷰를 마치고 한효석 조합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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