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후쿠시마구에 위치한 16층짜리 게이트 타워 빌딩의 엘리베이터 층수 버튼은 4층 다음이 8층이다. 5~7층에는 하차가 불가능하다. 5, 6, 7층에는 고속도로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고속도로는 거대한 원통형의 구조물로 일본 최초로 도입된 입체 도로 제도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왜 고속도로가 건물을 통과하게 되었을까? 건물을 세우려고 관공서에 건축 허가를 신청했는데 고속도로 계획으로 허가가 나지 않자 건물 안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절충안을 채택한 것이다.

게이트 타워빌딩은 2009년 12월에 완공했다.
토지 소유권자는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이 장소에서 연료업 등을 하고 있었는데 사옥이 오래되고 낡아서 1983년에 다시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도시 계획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되어 있어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소유권자 측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한신 고속도로공단과 약 5년간에 걸쳐 교섭하였고, 결국 고속도로가 건물을 통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게이트 타워 빌딩

덴마크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는 1546년에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가 두 살 때 남동생이 태어나자마자 큰아버지 외르겐 브라헤는 튀코를 납치해갔다. 튀코의 아버지가 아들이 태어나면 양자로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둘째 아들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몰래 데리고 가버린 것이다.

코펜하겐 대학의 법학도였던 튀코는 1560년 8월 21일로 예견된 일식이 실제 일어나자 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1566년에는 수학공식의 합법성에 관하여 다투다가 결투를 벌였고, 결국 코의 일부가 잘려나갔다. 그는 남은 일생 동안 금과 은으로 만든 가짜 코를 붙이고 다녔다.

부모와 큰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튀코는 1580년대에는 덴마크 국가 재산의 1퍼센트를 소유했을 정도로 큰 부자였다. 그의 성 안에는 길들인 큰뿔사슴이 있었다. 그 짐승은 저녁을 먹을 때 맥주를 너무 많이 곁들여 마시는 바람에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튀코는 1600년 보헤미아 왕의 초청을 받아 프라하의 왕실 천문학자가 되었다. 이듬해에 그는 만찬회에 참석했다가 방광염에 걸려 열흘 만에 사망했다. 연회 도중에 와인을 과음했지만 소변을 보러 가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참고 집까지 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튀코는 1570년대 후반에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데, 다른 행성들은 태양의 둘레를 돈다고 주장했다. 즉 천동설과 지동설을 절충한 것이다. 당시 성직자들은 그의 절충론을 제일 좋아했다. 과학적인 발견을 수용하면서 종교적인 신념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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