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냐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고려 공민왕 때,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서 형에게 하나를 주었다. 나루터에 와서 형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는데, 아우가 갑자기 금덩이를 강물 속으로 던지므로 형이 괴이하게 여겨서 물었다. 아우가 대답하기를, “제가 평소에 형님을 독실하게 사랑하였는데, 이제 금을 나누어 가진 다음에는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갑자기 생깁니다.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강에 던져서 잊어버리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형도 “네 말이 참으로 옳다.” 하고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고려 말에 개성 유수를 지냈던 이억년이 벼슬을 버리고 경남 함양군으로 낙향할 때 동생 이조년이 한강 나루 건너까지 배웅해 주다가 생긴 일이었다.

이억년의 동생 이조년이 지은 시조가 바로 <이화에 월백하고>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냐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현대어 풀이]
하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 자정을 알리는 때에
배나무 가지에 깃든 봄날의 정서를 소쩍새가 알고 우는 것이랴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 듯이 잠을 이루지 못하노라.

 

이 시는 봄밤에 느끼는 애상적 정서를 시각적인 심상과 청각적인 심상을 활용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얀 배꽃과 환히 비치는 달빛, 은하수를 통해 고독과 애상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소쩍새의 울음을 통해 화자가 느끼는 한의 정서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초장과 중장에서는 밝은 달 아래 배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어디선가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봄밤의 분위기를 제시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특히 봄날 밤에 배꽃이 피어 있는 나뭇가지에 어려 있는 시적 화자의 마음을 달빛, 은하수, 소쩍새 등의 자연 현상과 연결하여 절묘하게 노래한 점이 돋보인다. 종장에서는 봄밤의 애상과 우수에 잠겨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계간지 《나래시조》가 2006년에 현대 시조시인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고시조를 설문조사한 결과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 1위에 뽑혔다. 황진이의 ‘어져 내일이야’(6위), ‘청산리 벽계수야’(8위)도 10위 안에 들었다.

이어 홍랑의 ‘묏버들 골라 꺾어’(2위),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3위), 계랑의 ‘이화우 흩날릴 제’(4위),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5위) 등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화에 월백하고>의 지은이 이조년은 5형제 중 막내였는데,
형제들의 이름은 이백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이조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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