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시민을 제물로 바치며 외면할 것인가?

부천시가 직권으로 뉴타운 재개발을 해제한 지 만 일 년이 되었다. 그러나 뉴타운 재개발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매몰비용을 둘러싸고 건설자본이 조합임원들의 재산에 수십억원씩 압류를 하고, 조합임원들은 다시 조합원을 상대로 가압류를 신청한 구역들이 적지 않다. 쟁송의 기나긴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해제된 곳에서 주민들과 협의도 하지 않은 재건축사업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려하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시야를 좀 더 넓게 돌려보자. 현재 서울 경기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 뉴타운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은 어떤 상황일까? 여전히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고 있다. 곳곳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주민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이 재앙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왜 아직도 사업을 중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주민들이 사업을 중단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원인은 건설사와 정치권 그리고 관피아들의 방해공작 때문이다.

이미 개발구역은 제국주의에 점령당한 식민지처럼 주민들의 의사가 결집되기 어려운 구조다. 개발구역의 모든 의사결정은 점령군의 성격을 띠고 있는 건설사의 지배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이 건설사의 물리적 폭력을 가능하도록 허용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총회에서 주민들의 의사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는 조건도 충분하다. 서면결의서를 제출하는 방식이 허술한데다, 전체조합원의 10%에 해당하는 대의원대부분과 조합임원들이 이미 건설사의 친위부대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논거로는 건설사가 개발현장에서 얼마든지 질서유지요원이라는 명분으로 용역깡패들을 불러들일 수 있고, 홍보요원이라는 미명하에 철저하게 건설사의 홍위병 역할을 해주는 OS요원들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의의 편이 아니다. 자본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사람들인 것이다. 또한 주민총회의 모든 안건들은 이미 건설사가 준비하고, 총회는 형식적인 절차만 거쳐 통과되게 되어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개발 현장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라면 수 십년 간 반복되어 온 공공연한 비밀이란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관피아와 정치꾼, 그리고 자본이 결탁하여 만들어 놓은 탐욕의 결정체, 도정법의 악법조항들은 지금도 버젓이 살아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살아있는 힘이다. 하지만 힘 없고 의지가지 삼을 데 없는 민중들을 빼놓고는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부당한 비리구조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고 있는 세력은 없어보인다. 따라서 관피아와 정치꾼들은 비리의 동맹자가 될 수 있어 호시탐탐 건설자본의 눈치나 살피고 있어 수많은 민중들은 약탈적 개발행위의 피해자가 되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이런 재개발 현장의 조합원이 되어 피해당사다로 직접 주민총회가 진행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면 십중팔구는 폭탄이라도 던져버리고 싶은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라는 점을 나는 확신한다.
그러면 주민들은 왜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는 것일까?

도정법상 주민총회가 있을 때 현장참석자는 전체 조합원의 10% 또는 20%(사안에 따라)이상만 총회현장에 참석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30~40% 이상의 인원은 서면으로 자신의 의견을 대신할 수 있다. 대부분 과반 이상의 인원을 이런 식으로 채우게 되는데, 이때 자신의 의견을 서면으로 대신할 수 있는 일명 “서면결의서”라는 제도가 부조리의 핵심이다. 서면결의서는 선거에서 부재자 투표와 같은 것인데, 이 서면결의서가 개발추진세력들에 의해 대부분 조작된다. 때문에 건설사가 원하는 안건들은 무엇이든 다 통과될 수 있다. 주민의 의사를 철저하게 왜곡시킬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총회가 열리면, 건설사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조합 측 혹은 정비업자들에 의해 조작된 서면결의서가 우편으로 접수되거나, 직접 오에스요원들이 주민들로부터 수거해와 투표함에 집어넣기만 하면, 이후에 주민들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조작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범인과 범행을 특정하여 입증하지 못하면 법정에서도 총회결과는 합법적인 것이 되고 만다. 주민들의 주장은 증거불충분으로 기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피아들은 서면결의서 조작 여부로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품위를 잃지 않고 젊쟎게 말한다. ”서류상 하자가 없으니, 인허가를 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법정에 가서 따지세요” 관리감독도 철저히 하지 않은 그들이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일 것이다.

부천에서도 그렇게 개발구역에 이미 진지를 구축한 점령군들이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의 일이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전국에서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출구전략을 마련하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여야 정치권은 사업을 중단하기 위한 유명무실한 ‘한시법’을 부랴부랴 통과시켰다. 그러나 효과가 없자, 슬그머니 매몰비용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각 구역에서 조합이 사용한 사업비용(매몰비용)때문에 건설사들이 사업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으니, 사업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매몰비용을 지원해 주는 법안을 만들어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다급한 주민들은 쉽사리 위험한 사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그런 주장에 부화뇌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주민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권에 침해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중단할 수 없는 문제였다. 따라서 건설사들이 주민들의 의사를 부당하게 조작하거나 물리적인 폭력수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령을 개정만 하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어질 일이었다. 이때, 부천시 원미갑 지역구에서 수년 동안 노동운동을 해왔다는 용감한 초선의원이 나타났다. 평소 도정법에 전혀 이해가 없어 보이던 그가 획기적인 뉴타운 출구전략이라며 들고 나온 법안은 “조세제한특례법”이었다.

법안이 발의되고 국회에서 조세제한특례법이 통과되자, 그는 자신이 법안을 발의한 장본인이라며, 온 동네를 돌아치며 선전을 했다. 또한 조세제한특례법이 매몰비용에 획기적인 대안이라, 뉴타운사업이 해산되는데도 큰 역할을 할 것처럼 자신의 의정보고서에 대문짝만한 기사로 실어 대대적인 선전까지 알뜰하게 써먹었다.

그러나 조세제한특례법의 결과는 참혹했다. 조세제한특례법이 통과되고 나서 건설사 스스로 사업을 포기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뉴타운사업은 주민들의 눈물어린 해산동의서 징구 활동에 의해 해산 되었거나, 주민들의 원성을 더 이상 결딜 수 없었던 지자체가 직권으로 해제한 사실만 보아도 우리는 조세제한특례법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상,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정치적 이해타산 속에 탄생한 잘못된 정책으로 책임은 정책에 실패한 정부와 협잡하여 온갖 불법 부당한 방법으로 투자를 강행한 기업(건설사)이 책임져야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정부는 손쉽게 시민의 혈세를 털어 넣어 투자에 실패한 기업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향후, 스스로 사업을 포기하지도 않은 건설사에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일은 없는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정치권과 자본은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필자는 언론과 주민설명회를 통해 ‘조세제한특례법’이 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정책인지 조목조목 밝혀 나갔다. 조세제한특례법은 ‘건설사가 사업을 포기하면 법인세 22%를 감면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실제 건설사가 조세제한특례법 때문에 스스로 사업을 포기한 경우는 전국에 단 한 곳도 없었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훗날 조세제한특례법이 입법 발의된 과정을 알아보니, 조세제한특례법은 사실상 건설사들이 여야 정당에 요구했던 법안이었다.

당시 건설사들은 조세제한특례법을 통과시켜주면 사업성이 없는 뉴타운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여야 정치권에 입법을 요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 용감한 초선의원이 탐욕스런 건설자본의 말만 믿고 입법발의를 하고, 마치 주민을 위한 출구전략인양 선전전까지 하였으니, 우리는 경악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틈만 나면 새민련은 새누리당을 향해 1% 재벌만을 위한 정당이라며 비난하고, 자신들은 마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인양 선전전을 펼친다. 이런 새민련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충고하고 싶어진다. 새민련의 그런 주장이 진정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사악한 개발이 우리 현실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도정법의 독소조항을 제거하는데 앞장서라고.

새민련이 새누리당의 2중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고, 그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판의 동지라는 의혹에서 벗어나려면 건설자본의 눈치나 보고 적당히 알아서 기는 정당이 아니라, 위에서 열거한 건설사의 탐욕의 결정체, 도정법의 악법조항을 확실하게 개정하기 위한 싸움을 하라고.
명심하라! 새민련에 남아 있는 시간과 기회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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