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라 우리 사남매는 하루 종일 그늘진 앞 마당에서 사방치기나 공기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가끔은 한 길가에 나가 플라타너스에 붙은 송충이를 피하는 가로수 뛰어넘기 놀이를 했는데 그 소름 끼치는 스멀스멀한 벌레는 엄마가 등허리에서 떼어줄 때까지 반나절을 함께했다.

 

 

 방학이 되면 집 앞에 새로 생긴 군인 수영장엘 자주 갔다. 오늘은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수영장에도 가지만 우리 사남매는 신촌 고모네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고모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서로 가겠다고 다투기까지 했다.
 신촌 고모네엔 술만 드시면 노래를 부르시는 고모부와 공부 잘 하는 큰 오빠, 그리고 잘생긴 두 오빠들이 있었다.
 큰 오빠는 유독 시험 때만 되면 발톱이랑 수염을 깍질 않아서 발뒤꿈치가 허옇게 곰팡이가 필 정도로 갈라져있고 엉성한 수염이 염소같다고. (지금은 누구보다 근사한 사람이 되었지만)우리들은 놀려댔었다.
 딸이 없던 고모는 친정 조카들을 무척 반갑게 맞아 주셨다. 우리 사남매는 엄마의 잔소리도 피하고 형제들이 없는 곳에서 느긋하게 대접받고 방학숙제도 오빠들이 다 해주고 집으로 오는 날이면 새 옷을 사주는 약속의 땅, 고모네를 서로 가려고 했다.
 거의 방학 한 달 내내 눈치 없이 손님 노릇하는 조카 딸이 고모부 보기에 얼마나 불편하셨을지 지금 자식을 키우는 내가 봐도 참, 우리 고모는 착한 시누이였고 우리 엄마는 그냥 철 없는 올케였음이 분명하다.

 고모는 훌륭한 요리사였다.
 손님 아닌 손님에게 끼니와 간식까지 챙기느라 부엌에서 하루 종일 나올 줄을 몰랐다. 오빠들과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두툼하고 노릇노릇한 영양빵이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랗고 시커먼 후라이팬으로 아궁이 불에서 어떻게 그런 마술 같은 빵이 구워져 나오는지 마냥 신기했다. 분유 냄새 가득한 고모표 영양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방학이 끝날 즈음, 집으로 오는 날이면 그 영양빵을 더 크게 구워서 싸주셨다.
 고모가 사준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오빠 손에 이끌려 한 달 만에 집에 온 막내 여동생보다 우리들은 늘 그 영양빵을 먼저 반겼다.
 우리 사 남매는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마다 고모가 사 주신 손목시계를, 오래도록 차고 다녔다.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은 날은 왼쪽 어깨가 자꾸 올라가서 이리기웃 저리기웃 괜히 친구집에 가서 자랑도 했다.
 내 친구 옥경이는 시티즌이 좋다고 우기기도 했지만 우리 고모가 사준 오리엔트 시계가 더 광택이 났다.

 내 앞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영장 출입증을 검사하나보다. 튜브를 어깨에 메고 장난만 치는 동생들을 불렀다.
 멋지게 선글라스도 끼고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 섰다. 계란 반쪽 모양의 헌병모자를 쓰고 보는 사람마다 경례를 하는 군인들의 검열을 마친 뒤 잡초들이 삐죽 튀어나온 보도블럭을 밟으며 수영장으로 입장했다.
 군데군데 의자도 없이 파라솔이 꽂혀진 잔디밭에 짐을 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새로 지은 수영장은 깨끗했다. 옥색커튼이 쳐진 화장실엔 반짝반짝 윤기나는 일이 새하얗게 광을 내고 있었다.
 미끄러질까봐 엉거주춤 커튼 사이로 하얀요강이 보였다. 용도는 분명해 보였지만 알길이 없었다. 뚝뚝 물이 떨어지는 수영복을 입고서 두 발로 젖은 양변기에 올라섰지만 미끄러질까봐 바둥거리면서 변기뚜껑을 부여잡고 소변을 본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세식 화장실을 한 순간이었다.

 수영장에선 가끔 토요일 오후에 공연을 했다. 수영장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면 TV에서 보던 멋진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원맨쇼도 했다.
 관객들은 대부분 군인들이어서 손뼉치는 소리가 아주 우렁찼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아주 키가 큰 여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과 나는 풀밭에서 빨간 꽃망울이 활짝 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영모자를 벗지도 않은 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허겁지겁 펼쳤다.
 수세미로 벗겨진 누렇고 둥그런 알루미늄 찬합엔 보리밥이 빽빽하게 가뿐 숨을 몰아 쉬고, 라면 봉지에는 오이지가 분을 털어내고 얌전하게 짜글짜글 누워 있고, 고추장은 참기름도 없이 다른 봉지 한 켠에 멋적게 숨어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던 시절! 그냥 꿀맛이었다.
 잼도 없이, 깔깔거리면서 누가 더 먹을까봐 순식간에 식빵까지 먹어치운 우리는 쨍쨍 햇볕이 내리쬐는 잔디밭에서 그제서야 수영모자를 벗어던진채 귀 속에 들어간 물을 빼냈다.
 한 발짝씩 콩콩거리며...
 손바닥으로 귀를 두드렸다.

 그렇게 해가 저물어 수영장에서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놀고 온 날이면 무슨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끙끙 앓아누웠다. 등은 벌겋게 타서 바로 누울 수도 없었다. 얼굴은 대머리원숭이처럼 동그랗게 자국이 나고 반질반질 코끝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도록 어깨에 새겨진 수영복 자국은 이듬해 여름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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