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처음엔 누군가 내 입술을 담배불로 지진 줄 알았다.
그리고 물 속인데 불가능한 일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는데 1초.
그게 해파리의 독이었다는걸 깨닫는데 1초.
빨리 해변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1초.

2주전 삼척 장호해변에 캠핑 겸 스노클링을 갔을때 얘기다.
풍랑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심각한 파도 때문에 물에 들어가기는 커녕 해변에 접근조차도 힘들었던 첫날의 아쉬움을 보상받고자, 파도가 잔잔해진 다음날부터 신나게 바다를 돌아다녔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이었다.
바다의 안은 온통 처음보는 동식물로 가득차있었고, 오리발과 스노클링 도구의 기능은 물을 그리 무서워하던 나를 물 속을 날아다니는 돌고래로 만들어 주었으니.

그러나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끈적한 뭔가가 수경에 들러붙었다고 느끼자 마자 오른쪽 윗입술에 담배불에 지진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바다에 들어가본 적이 거의 없는 내게 가해진, TV에서나 볼 수 있던 경험인 해파리의 공격.

급히 물가로 헤엄쳐 나오자마자 수경을 벗어던지고 구급약을 찾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건 버물리나 마데카솔 정도가 전부였기에 도움이 되질 않았다.
데굴데굴 구를 정도의 심각한 고통은 아니었지만, 지속적으로 벌에 쏘인듯 아픈 입술을 위해 필요한건 암모니아를 사용한 독의 중화작용이다.

다리나 팔을 쏘였으면 그냥 투덜거리며 참았겠지만, 상대적으로 인체에서 약한 피부인 입술의 통증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일행들에게 급히 암모니아수를 찾아봤지만 있을리가 만무.

"아! 아퍼 아퍼! 계속 아퍼! 오줌이라도 뿌려야해 이건!"

해파리 독이나 벌의 독을 중화할 수 있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암모니아성분 가득한 물질은 역시나 사람의 소변 뿐이라는걸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채널 같은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여친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나의 해결사가 되어줬다.

"오빠 나 마침 오줌 마려워!!!"

"그래? 역시 우리 마누라! 얼렁 가서 컵에 받아와!!!!!"

마치 느닷없이 집에 들이닥쳐서 행패를 부리는 채무자들에게
"아 우리 오빠 빚 내가 다 갚아주면 될거 아냐. 얼만데?" 하며 지갑을 꺼내서 지폐를 뿌리듯 화장실로 달려간 사랑스런 여친.

그녀가 지갑에서 꺼낸 소벼...아차차 해독제;;로 나는 입술을 조금씩 적셔나가기 시작했다. 입술 사이로 조금씩 스며드는 해독제;;의 맛;;과 향;;은 문제가 아니었다. 아파 죽겠는데 어떡하겠나.

...놀랍게도 10분도 채 되지 않아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민간요법의 놀라움이란! 수천년을 이어온 인간의 지혜란! 이런건 인류의 아카이브에, 아카식 레코드에 저정해놓아야 한다 반드시.

(그 와중에 "어떡해! 오줌이야 오줌!" 하며 빵 터진 일행놈들 얼굴 다봤어. 니들 전부 해파리가 목젖을 쏠거다.)

"역시 사람은 잡학상식이 있어야해. 오줌 아니었으면 계속 아팠을거 아니냐고."

"그래그래 오빠 내가 소변 안받아다줬으면 어쩔뻔 했어."

"응, 그거 맛도 봤으니 니가 나 책임져."

통증이 사라졌다고 신나서는 시덥잖은 농담을 해대던 나.
화장실로 간 후 볼일을 보다 뭔가를 깨닫고, 내가 머리가 얼마나 나빠졌는지, 혹은 그때 얼마나 당황했었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아....내 오줌 쓸걸...'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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