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희 (거제 옥포고 교사)


음~ 어디로 갔을까?

대입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끝났다. 어디로 갈까? 긴긴밤을 지새운 아이들이 하나둘 책상에 엎어지고, 한 달 내내 끄적거렸던 자기소개서만 눈을 끔벅거리고 있다. 창밖에는 부슬부슬 부슬비가 내리고, 나는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성적이 낮아 갈 곳 없어 헤매던 아이들은 죽을 맛이다. 그들도 학원이다 보충수업이다 야자다 하면서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패배감과 좌절감 뿐. 나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지금 답답하고 힘들겠지만 그동안 견뎌온 자신을 고생했다고 토닥여주면 좋겠다. 부족했던 자신을 꼭 껴안아주라. 때가 되면 너희들도 모두 꽃피울 수 있다. 포기하지 말고 걸어가라. 자신감을 갖고 세상을 향해 달려가라.”

그렇게 힘겹게 청춘을 보내고 꿈에 그리던 대학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미래는 우울하다. 청년 태반이 백수인 사회, 양극화는 극단으로 치닫고 생존경쟁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오로지 입시를 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빡빡한 하루를 바쁘게 보내며 살아왔는데, 이제 대학마저 희망이 되지 못한다.

대학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대학까지 모든 학비가 무료지만 40% 정도만 대학에 간다. 우리나라는 비싼 학비에 등골이 휘면서도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도대체 왜 기를 쓰고 대학에 가려하는가?

나도 철없는 고교시절에 대학은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껏 놀면서도 대학은 가야만 머릿속에 교양도 채울 수 있고, 어깨에 힘도 좀 주며 평안하게 살 수 있으리라 여겼다. 가난한 부모님께서도 대학 진학을 간절히 원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대학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을 나왔고, 내 머릿속에 채운 건 별로 없었지만, 대학 졸업장은 여태껏 나를 풍요롭게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모든 것을 거는 학부모를 매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난 세월 살아오면서 아무리 위급한 일을 당해도 정작 국가나 사회는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자식에게까지 가난을 대물림해줄 수 없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다.

대학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 가더라도 적성과 재능은 찾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명문대를 나오면 모든 것이 유리한 것은 맞지만 모두가 꿈을 이루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졸과 고졸의 양극화가 좁혀지지 않는 이상 대학에 목숨 거는 세태를 막을 길이 없다. 대학 안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면 괜찮겠지만, 세상 험난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으면 대학을 가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간다. 대학 나와 봤자 별 뾰족한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간다.

대학에 가야할 이유를 찾을 기회를 주자

그렇다고 이 과열된 입시 열기 속에서 아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나? 아이들이 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사회와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대학을 가더라도 왜 가야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허망하겠나. 충분히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깊이 대화를 하고 적어도 학과 선택은 자녀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진로를 결정할 때는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것을 왜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결정한 목표에 따라서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고 갈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아이들마다 자기에게 맞는 다른 길이 있다. 대학 공부가 맞지 않다면 가지 않아도 된다.

인생의 목표는 누구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공부가 조금 뒤떨어져도 직업이 조금 힘겨워도 인생이 망가진 것은 아니다. 나도 꽃피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게 하자.

대학 나오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만들 수 없는가?

대학이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하는데 나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술집과 거리만 배회했다. 진리를 배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진실을 말할 용기는 배워야 하는데 사회를 냉소하면서 좌절감만 키웠다.

지금 대학은 배움이 일어나는 곳인가.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진리를 말할 용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인가.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할 힘을, 행복한 사회를 만들 희망을 키울 수 있는 곳인가.

나는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훈련받았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경쟁이 아닌 공유의 삶을 동경했다. 만약 모두가 의사, 변호사, 사장이라면 사회가 돌아갈까. 세상에 직업은 얼마든지 많다. 다 꼭 필요한 직업들이다. 어째서 이 사회에서는 이런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일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즐겁게 살 수 있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힘겹게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고생한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고 그저 ‘헬조선’으로 사회를 냉소하는 청년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김중희 기자 ghkdwp1228@hanmail.net

출전 : <단디뉴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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