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천 이야기 13

 함박마을은 옥길보금자리 아파트 단지로 깔아뭉개졌다. 함박산 줄기, 부굴골 골짜기, 새탄말, 함박마을, 게레울 등이 모두 사라지고 거기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부천시의 녹지율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현재 부천시 녹지율은 13.9%이다.

함박마을은 예전에는 무려 60가구 정도가 산 아주 큰 마을인데, 이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휴먼시아 아파트 단지로만 불리워질 것이다. LH가 시공하고 14개동 1,304호의 대규모 단지로 미니신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기존의 함박마을 사람들이 입주한다고 해도 2016년 7월이면 새로운 이주민들이 함박마을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들은 그곳이 함박마을인지 휴먼시아인지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다.
부천은 휴먼시아 천지가 된다. 여월 점말, 사루개도 휴먼시아, 오정 휴먼시아, 범박, 함박마을도 휴먼시아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부천 전체가 휴먼시아로 도배가 될 지도 모른다. 여기도 휴먼시아, 저기도 휴먼시아로 불러 부천 고유의 땅이름은 망가지고, 사라지고, 부서져 버려서 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 2010년도 함박마을 미나리꽝

함박마을 앞에 넓게 펼쳐진 미나리꽝은 물론이고 마을 뒷산도 깎여지고 뭉개져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들로 인해 이 곳이 함박마을인가 의심하게 한다. 함박마을에서 살았거나 한번쯤 들러본 사람이라면 어림짐작으로 마을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휴먼시아 아파트 단지가 완성되면 함박마을이 그야말로 송두리째 사라져 버려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어지게 된다.
현재도 ‘옥길 B2블럭’이라는 괴상망측(怪常罔測)한 이름이 붙여져 있다.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통적인 땅이름을 붙인 것도 아니다. 아직 아파트가 완공을 하지 않아 임시적인 이름을 달고 지도에 올라와 있다. 필히 ‘함박마을’이라는 이름을 써야 할 것이다. 부천 중동, 상동 아파트들이 미리내마을, 포도마을 등으로 쓰고 있으므로 함박마을이라고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연히 그렇게 써야 한다. 휴먼시아는 제발 조그맣게 표기했으면 한다.
함박마을 위쪽에 대동우물이 있었다. 함박마을 사람들이 빨래터에서 한담도 나누고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전하던 곳이었다. 이 대동우물이 수돗물 공급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다가 이제 아파트 공사로 인해 그 이름만 남게 되었다.

▲ 2010년도 함박마을 집

함박(咸朴)마을의 어원

함박마을은 함박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옥길동 함박리(咸朴里)라고 했다. 함박마을이 함지박처럼 생겨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마을의 모양이 미나리꽝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펼쳐져 있어 함지박 모양을 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함지박에서 그 유래를 따온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에 있는 함박리(咸博里)에서는 ‘넓을 박(博)’을 쓰고 있다. 여기도 마을 뒷산이 함지박처럼 생겨서 땅이름이 생겼다고 해설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동에도 함박마을이 있다.
부천 함박마을 앞에 있는 산이 바로 함박산(咸朴山)이다. 할미산 줄기에서 뻗어나왔다. 그러기에 할미산하고 그 뜻이 같다. 함(咸)은 ‘크다’는 뜻이다. 할미산의 ‘할’도 ‘한’으로 ‘크다’는 뜻이다. 박(朴)은 범박마을의 ‘’자와 같은 한자로 쓴다.
이 박(朴)은 ‘밝은, 빛나는’의 뜻이다. 삼한시대 이전 태양신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던 말이다. 태양신은 태양을 지칭하기에 ‘태양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이다. 함박산은 범박마을에서 지은 것으로 보여진다. 함박산 아래 함박마을이 있다. 함박산을 뚫고 아침해가 힘차게 솟아오른다.
또한 박(朴)은 ‘크고 넓은 땅’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박골이라고 하면 ‘크고 넓은 골짜기’를 말한다. 함박산, 함박마을에서는 함(咸)이 ‘크다’는 의미로 쓰였기에 뒤의 박(朴)은 태양신을 지칭하는 것이 옳은 해석으로 보인다.

▲ 2010년도 부굴골

함박마을 앞 부굴골 골짜기

함박마을 앞으로 펼쳐진 골짜기가 부굴골이다. 지금은 장승백이 고개로 넘어가는 곳에 눈곱만큼 작게 남아 있다. 나머지는 휴먼시아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거나 옥길로가 확장되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함박마을 이름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부굴골 골짜기 이름도 사라졌다.
부굴골은 부골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원래는 구부골이었는데 이게 부굴골로 바뀐 것 같다. 골짜기가 구불구불하게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할미산 오른쪽 소새로 펼쳐진 골짜기가 구부골인데 그 이름이 똑같다. 구부골의 앞뒤 말이 순서가 바뀌어 부굴골이 된 것이다.
부굴골에서 ‘부’는 산의 옛말인 ‘ᄇᆞᆮ’이 어원이다. 이 ᄇᆞᆮ골이 붇골로 되고, 붓골, 북골, 부골로 바뀌었다. 한자로 표기할 때는 부곡(富谷), 부곡(釜谷) 등으로 쓰였다. 부굴골에선 한자로 표기되지 않고 순 우리말로 쓰여졌다. 즉 ‘산골’이라는 뜻이다. 함박산 골짜기라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휴먼시아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부굴골 위쪽에는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아래쪽으로는 벼농사를 지었다. 당연히 미나리꽝도 있었다. 골짜기 폭이 좁지만 함박마을, 새탄말, 게레울 사람들이 이 부굴골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 2010년도 새탄말에 있던 절
▲ 2010년도 새탄말에 있던 천주교 수련원

새탄말은 함박마을이 생긴 뒤 나중에 새롭게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함박마을과 이웃한 마을이었다. 새탄말을 다른 말로 사태(沙汰)말이라고 한다. 지금은 부천옥길 보금자리로 다 편입이 되어 그 흔적도 없다. 마을 위쪽에 천주교 수련원이 있었고, 새탄말엔 여러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천주교 수련원을 짓기 전에는 그 자리에 대동우물이 있었다. 어느 해 아주 가물어 이 대동우물을 스물다섯자 정도로 깊이 팠다. 그런데 거기에서 사기그릇이 나왔다고 했다. 바로 바가지로 떠서 먹는 우물이었다.

게레울은 함박마을에서 산 하나 넘으면 있는 마을로 나중에 해설을 할 것이다.
가뭄이 들 때면 전부가 천수답이어서 하루종일 웅덩이 물을 퍼서 논에 대기 바빴다. 논마다 둠벙이라는 웅덩이가 있었다. 함박마을 대동우물도 논에 물을 대는데 한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새탄말에서 시작된 부굴골이 함박마을을 거쳐 골짜기 아래에선 신앙촌에서 시작된 불당골, 범박 마을의 암우들과 만나 큰 벌판을 이루었다.
부굴골 중간쯤 골짜기에는 창고형 공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 공장들이 들어서 있지 않은 들판엔 미나리꽝이 조성되어 있었다.
장승백이고개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골짜기라고 해서 장승백이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2010년도 함박마을에서 시흥으로 넘어가던 장승백이 고개

장승백이고개

함박마을 근처에는 세 개의 고갯길이 있었다. 함박마을에서 새탄말을 거쳐 시흥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장승백이고개라고 불렀다. 이 장승백이고개는 네이버 지도에 비교적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다른 고개는 함박마을에서 새탄말을 거쳐 계수리로 넘어가는 고개는 길고개라고 했다. 장승백이고개하고 길고개로 갈라지는 삼거리였다. 길고개에도 장승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다른 한 고개는 함박마을에서 옥길동 옥련마을로 가는 아주 긴 고개인 장고개가 있었다. 이 장고개는 부굴골을 빙돌아 가는 고개길이었다. 장고개는 도당마을에서 겉저리인 춘의마을로 가는 곳에도 있었다.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던 장승은 거리 표지판의 역할까지 하였다. 함박마을 사람들은 주로 시흥 뱀내장을 보았다. 거리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뱀내장을 보고 온 마을 사람들은 이 장승을 보고 안심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함박마을은 부천에서 오지에 해당했고 숲이 우거지고 골짜기가 빽빽했기 때문이었다.
장승백이고개를 거쳐 시흥으로 갔던 계수리 범박마을 사람들도 자신의 마을까지 거리를 추산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장승백이고개 근처 숲속 곳곳에 장사꾼들의 짐을 털던 도둑들이 포진해 있다가 덮치기 일쑤였다. 도둑들이 극성을 부린 것은 부천의 하우고개도 마찬가지였다. 깊은구지에서 하우고개를 넘어 시흥 뱀내장을 보고 온 장꾼들을 덮쳐 생활용품이나 금전을 갈취해 갔다.
또한 범박국민학교가 1986년도에 개교하기 전에는 함박마을 어린이들도 장승백이고개를 넘어 시흥시 계수동에 있는 계수국민학교로 다녔다. 계수국민학교는 1949년도에 개교했다.
그러기에 장승백이고개는 함박마을, 새탄말, 게레울, 범박마을에서 살았던 이들에게 많은 추억을 제공해 주고, 다리가 아플 때 다리쉼을 해주었던 쉼터이기도 했다. 이 장승백이고개를 널리 알리고 자주 애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15년 7월 게레울에 지어지는 보금자리 휴먼시아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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