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 열전 9

 

 지금은 이런 먹들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개 먹물을 사서 글씨를 쓰기 때문입니다.
한두 시간씩 먹을 갈아야 하니, 요즘 같은 바쁜 세상에서 먹을 갈아 쓰기는 점점 힘들어졌겠지요. 그래도 느리게 살던 시절에는 지필을 준비한 다음, 벼루에 먹을 갈면서 마음을 이완시키곤 했었는데요.
가운데 맨 위에 있는 가장 작은 먹 조각이 가장 좋은 먹이었습니다. 30년 전쯤 어떤 지인이 선물해준 중국먹인데 그 향이 너무 좋아서 아끼고 아꼈지만 다 닳아 없어지고 토막으로 남았습니다. 같은 먹을 구해보려 했지만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상표조차 닳아 없어져서 다시 구할 때는 먹향의 기억으로 찾아야겠습니다.
먹은 갈리고 갈리다가 결국 작은 조각 하나로 남습니다. 그렇지만 먹은 닳음으로 얻은 먹향으로 누군가에게 서의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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