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이 무너지고 난 뒤, 물자가 넘쳐나는 일본에서 생긴 일

 세계 최고령국가인 일본에서는 “구매난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뜻은 생활에 필요한 식재료 등 필수품을 원할 때 사지 못해 곤란을 겪는 이들을 뜻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대두 중인 이슈이다.
전국적 유통인프라가 탄탄하고 물자도 넘치는 일본에서 구매난민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간단하다. 생활주변에 생필품을 살 구매공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선 나이가 들면 이동수단은 걷는 것에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이때 생활공간 주변에 필요 상점등 편의시설이 없으면 불편함은 한층 높아진다. 원래대로라면 식료품등 일용품 구매가 도보 5~10분 거리로 해결되었겠지만, 지역밀착형 점포가 폐업하는 바람에 먼 곳까지 가지 않으면 구매자체가 힘들어서다.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행동반경을 좁힌다. 나이가 들수록 거동이 불편해서다. 자동차등 교통수단이 유효하지만 대개는 이마저 만만찮은 경우가 보통이다. 고령자는 자가운전자체가 힘들고 채산성을 이유로 버스등 대중교통수단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대도시 주변에 1960~1970년대 대거 공급된 뉴타운, 신도시에 구매난민이 집중돼있다. 당시 입주자가 지금은 고스란히 고령인구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주택단지 안에 있던 중소형점포도 매출저하를 이유로 문을 닫는 추세다. 청장년세대마저 점차 이탈하면서 노인만의 주거공간으로 인식되면서 경제적 활력도 사라지고 있다. 대도시골목상권도 거의 붕괴된 느낌이다. 소매업점포는 1982년 172만개에서 2007년 114만개로 급감했다. 지금도 계속 급감하고 있다. 결국 고령자로선 멀리까지 장을 볼 수 밖에 없어졌다. 택배, 배달을 맡겨도 되지만 냉동식품의 경우 적당하지 않다는 불만이 많다.

일본에서는 기본적인 생필품을 사지 못하는 구매난민이 상당하다. 더 답답한 것은 구매난민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란 점이다. 돈이 있는데도 생필품을 원할 때 사지 못하는 최대이유는 지역밀착형 소매상권의 붕괴 때문이다. 원인은 1980년대 후반부터 경쟁적으로 출점하기 시작한 교외입지의 대형점포가 대표적이다. 경쟁적으로 출점중인 교외입지형 대형점포는 골목상권은 물론 백화점 등 도심역세권 대형점포마저 심각한 매출부진에 빠트렸다.
그나마 구매난민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있으니 일본유통업의 패자라 할 수 있는 편의점이다. 편의점 점포숫자는 5만개에 육박하여 인구 2,200명당 1개꼴이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편의점으로 해결이 안되는 것이 있다. 야채, 생선을 비롯한 조리필요 식재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괜찮은 신선야채, 생선 등을 사려면 도심중심부의 대형마켓에까지 가야 한다. 편의점의 인스턴트음식이 노인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여론도 많다. 어쩔 수 없이 사먹지만 건강에 좋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해법은 지역밀착형 소형, 인근 상점의 활성화다. 즉 골목상권의 부활이다. 일본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지역사회 복지차원에서 구매난민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영세상인의 상권보호 못지 않게 고령자의 삶의 질 유지, 인프라확보차원에서 접근도 중요하다. 필요한 경우 보조금 등 인센티브까지 부여해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중이다.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전영수 저, 맛있는책 출간 내용발췌 P76~88]

 

위 내용과 같이 우리나라도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교외입지형 대형점포들로 인해 대형유통업체의 SSM과 각종 프렌차이즈 업체들만 늘어나고 소규모 자영업자인 골목상권을 심각하게 매출부진에 빠지게 하면서 지역밀착형 소매점포가 줄어들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 않은 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구매난민”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사회문제 등이 일본과의 시차를 두고서 일본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 인구감소, 고령화문제 등은 일본과 별반 차이가 없이 시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 그러므로 코스트코가 부천 오정물류 단지에 입점할 경우, 당장 싼 물건을 살 수 있는 이점이 있겠지만,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결국 지역경제를 위축시키고 우리가 당장 편리한 생활을 선택한 대가가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미래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코스트코 입점문제는 지역내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복지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나중에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을 고려한 심사숙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김의섭 조합원(큰길부동산 대표,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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