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가방끈' 공현 활동가와의 대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성장주의와 소비주의가 지배하는 가운데 배제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쟁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줄 세우고 상대평가 하면서 사람들이 상품화된 노동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 대학이 있습니다. 더 이상 대학답지 않은 모습을 더 해 가는가 하면 대학 서열화가 사람차별의 척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런 모순에 저항하기 위해 대학 가기를 거부하거나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면서 이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나선 일군의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이름 하여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하 투명가방끈)>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책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들 중 공현 활동가와 대담을 했습니다.

 

▲ 대담 중인 유진생 조합원과 공현 활동가

유진생 : 수능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투명가방끈의 ‘투명’은 어떤 의미가 있죠?

공현 : 우리 사회는 흔히 출신 학교를 따지고 가방끈 길이를 말합니다. 그런 가방끈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가방끈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투명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단지 가방끈이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라는데 반대합니다.

유진생 : 대학을 거부하고 자퇴를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은요?

공현 : 좋은 점은 학자금 대출을 더는 안 받아도 됐다는 거겠죠. 제가 바라던 게 대학 졸업자로 불리고 싶지 않다는 거였는데 그런 제 소망이 이루어진 게 가장 좋은 점일 거구요. 나쁜 점이라고 하면 아마도, 제 바람과 달리 사람들이 저를 그 대학의 자퇴자로 기억한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항상 받죠. 그만 두면 그만 두는 거지 왜 거부라고 까지 하냐. 그런 것들에 대해서 항상 설명하는 걸 거예요.

유진생 :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일을 잡는데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나요?

공현 : 저 같은 경우는 이력서에 학력도 써주세요 라고 한다거나 졸업증명서나 전공을 알려달라고 하다가 그런 게 없다고 할 경우에는 강사로 좀 곤란 하겠다 하는 경우도 있구요. 정부기관에 따라서는 학력에 따라서 강사비를 차등 지급할 때도 있는데 그런 부분이 차별 받는 부분이라고 느꼈어요.

유진생 : 투명가방끈 입장에서 보면 그런 부분이 수용하기 어려운 거겠죠?

공현 : 계속 바꿔 나가야 할 부분이고요. 정부가 내주는 자격증 가운데도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요. 성폭력 상담사라던가 아니면 청소년 관련 일이라던가 상담사, 지도사도 그렇고 회원 중에 그런 쪽 자격증을 따고 싶은데 대졸이 아니라서 못한다는 사례가 있어서 그거에 대해 조사하고 문제 제기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어요.

유진생 : 졸업장 말고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평가할 수 있는 다른 척도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을 텐데요.

공현 : 아무래도 기업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알아낼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인데 학력으로 쉽게 제한하기도 하고, 정부도 대졸자면 바로 자격을 딸 수 있고 대졸자가 아니면 현장 경력이 4년 5년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대학학력을 큰 메리트로 쳐주는 관행들이 많이 있죠.


유진생 : 학력과 배움은 별개의 것일 수 있나요?

공현 : 사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이 학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어느 학교를 나왔냐가 그 사람의 배움이나 능력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요? 학교 밖에도 다양한 배움의 기회가 있고 실제 살아가면서 하는 경험이 모두 배움이잖아요. 실제로 학교 밖에서의 교육이나 배움의 기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유진생 : 투명가방끈 활동을 하는 분들도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그 속에서 일을 하고 살아가기 위해, 배우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겠죠?

공현 :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끼리는 같이 책 읽고 세미나를 하기도 합니다. 글쎄, 다양하긴 하지만 교육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회원도 있구요, 아니면 일터에서 일하면서 연수나 도제식으로 배우는 경우도 있고요. 진로에 따라 다르지만, 대학교육 제도나 시스템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분야로 바로 가서 공부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 투명가방끈 공현 활동가

 
내 삶을 찾겠다는 '거부' 선언

유진생 : 그러다보면 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변두리 인생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절망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공현 : 대학 거부자들의 경우는 그것을 감수하고 거부선언을 하는 거라고 봐요. 거부 선언이 없었다면 패배자나 낙오자 또는 이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 정도로 자신을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거부선언을 통해 내가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와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고 ‘나는 내 삶을 찾겠다’는 선언을 할 수 있었어요. 정체성을 찾고 자긍심을 회복한다고 할까요? 변두리라고 할 수 있지만 변두리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고 봐요.

유진생 : 우리 교육에서 무한경쟁 환경을 어떻게보는지요?

공현 : 생존이나 교육이나 그런 부분에서는 사실 경쟁이라는 논리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봅니다. 저희가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대학을 안 가도 다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건데요.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일 텐데 더 좋은 점수를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고 패배할까 라는 불안감이 동기가 된다면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잖아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교육이나 사회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유진생 : 대학을 거부해서가 아니고 본의 아니게 대학에 못 간 사람들도 많지요?

공현 : 적지 않죠. 포기가 됐든 배제가 됐든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거부자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획기적인 기획이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 접촉면을 넓히고 만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수능 거부 이외에도 ‘나도 투명 가방끈이다, 가방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반대한다.’라고 생각하고 회원으로 가입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러 경로나 일상적인 실천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유진생 : 교육이라는 건 각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는데요. 바람직하기로는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이 과정이 이루어지면 더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 대학에 갈 사람도 있고 난 대학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죠.

공현 : 중,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진학을 위한 준비과정이 아닌 그 나름대로 완결성을 가져야겠죠. 학교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으로부터 벗어나서 개개인의 삶이나 진로라는 문제와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민적 교양의 습득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봐요. 덴마크 같은 경우 초등학교 때 아예 1,2주를 수업을 비우고서 내내 급식소에서 요리하고 밥하고 뒷정리하고 이런 것만 익히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는데 음식재료나 요리나 가사노동에 대한 것들을 익히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관점을 바꿔야 해요.

 

학력으로 줄세우기, 우리는 대부분 학벌사회의 피해자

유진생 : 투명가방끈의 지향점이 결국은 전 사회적 시스템과 대척되는 지점에 고독하게 서 있는 것 같아요.

공현 : 투명가방끈은 (현재의) 어떤 주류적 시스템, 교육, 대학, 노동과 대척점에 있기는 한데요. 투명가방끈이 이야기 하는 게 어떤 측면에서는 상식적이잖아요? 대학 안 나와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하고, 학교 교육이 입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하고, 학력 갖고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건데 그런 점에서 공감대가 더 넓게 존재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사실 우리 사회가 가방끈으로 차별한다는 게 둘로 가르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줄 세우는 거잖아요. 학력과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를 가지고서요. 그렇게 세웠을 때 굉장히 세분화된, 다양한 다수의 피해자가 생기는 거고요. 그런 사람이 겪는 차별이나 피해에 대해서 공감하면서 운동을 더 넓혀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진생 : 일이나 노동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이나 노동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거든요.


공현 : 두 가지인데 일단 사람들의 삶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도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생계에서 노동이 해방되는 게 필요해요. 기본소득 이런 이야기도 하지만.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해야 하는 노동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노동을 어떻게 만들 거냐 하는 거죠. 그런 고민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을 한다’라는 것이 개인의 맘에 드는 것이나 취향대로 한다는 게 아니라 사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지잖아요.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더 보람을 느끼는 것이고요.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노동’이라기보다는, ‘노동’이란 함께 하는 거고, 필요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고, 나에게도 맞는 일이라서 한다는 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겠죠.

 

당장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유진생 : 혹시 이런 문제를 이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정치적인 해결을 통해서만 점진적으로라도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공현 : 녹색당이나 노동당 같은 데가 정책적으로는 맞긴 하겠지만... 부분적으로 학력 학벌 차별 문제나 대학평준화에 관해서는 저번 대선 때도 공약으로 나왔었고 논의 자체는 꽤 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공약으로 한 줄 들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진지하게 정책으로 이슈화 되고 당론으로 추진하는 차원까지 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요.

유진생 : 대학거부가 알고 봤더니 총체적 거부다 전 이렇게 받아들였거든요. 물론 총체적 거부를 통해서 당장 아니면 짧은 시간 내에 이 사회나 교육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거부행동을 통해서 이 사회가 그래도 자극을 받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삶의 태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공현 : 저희에게 대학이라는 지점이 딱 그전에 초중고 시절과 그 후의 노동과 삶의 문제 사이를 가르는 분수령이잖아요. 딱 중간에서. 20대 초반에. 대학거부라는 게 가지는 함의가 이전에는 ‘교육개혁’으로 접근했는데, 이제 교육문제와 노동과 삶의 문제이기도 하고 "대학 거부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렇게 의미부여를 한다면 어떨까 합니다.

글 | 유진생 조합원
사진과 정리 | 김이민경 기자

* 투명가방끈 홈페이지 : hiddenbag.net
* 투명가방끈을 더 알고 싶다면, 책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대학거부 그 후>를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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