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환한 나라에 늘 환한 얼굴로 터질 듯이 환하게 웃고 있는...

 

 뜨락의 꽃들이 시들고 있다. 진달래는 이미 졌고, 철쭉도 이제 그 꽃잎을 떨구고 있다. 봄이 저만치 성큼 달아나고 있는 것이다.

“나 잡아봐라!”

머리에 허리에 분홍빛 꽃으로 장식한 봄이 이제 진한 초록으로 입을 갈아입고 있다.

“이 봄꽃이 시들어가면 무슨 그리움으로 세상살이를 이겨낼꼬.”

하, 봄이 아주 간 줄 알았더니 새롭게 봄이 시작되고 있다. 보랏빛 라일락이 한참 진한 향기를 뿜어댄다. 키 작은 미스킴 라일락도 수줍게 작은 꽃잎을 펼쳐내며 유혹한다.

대문에는 송송이 등꽃이 피어 있다. 대낮부터 환하게 등불을 켠 등꽃이 매달려 있다. 차마 하늘로는 고개를 들지 못해 땅 아래로 등불을 비추고 있다.

‘저 많은 등꽃을 누가 매달아 놓았을까.’

한 밤중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오색 초롱불을 켜놓은 것 같다.

이 등꽃을 찍기 위해 그 집 대문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도 전에 요란스레 개가 짖어댄다. 형상은 영락없이 늑대를 닮았다.

샤를로스 울프하운드. 네델란드 체고가 고향인 이 친구가 부천 중동 마을에서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닮은 것은 늑대이지만 나 같은 사람 보고 짖는 것은 슬프게도 개다.

느닷없이 한밤중 달을 바라보며 구슬피 울어대는 늑대가 보고 싶다. 이 땅에서 늑대는 동물원에서나 살지 야생에서 살지 않은 지 오래되어 늑대에 대한 전설이나 설화조차 까마득하게 잊혀져 간다.

개가 짖자 삼층 창문이 드드득 열렸다.

“야, 고만 짖어. 손님이잖아.”

백발 어르신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내다보고 있다.

“등꽃 사진 찍어도 되지요?”

“물론입니다.”

“등꽃이 아주 예쁘네요.”

“그거 여기 집 지을 때 심은 겁니다.”

“그럼, 삼십년 가까이 되어가네요.”

“세월이 그렇게 빨라요. 그때 난 팔팔한 오십 중반이었는데...”

“세월 이기는 장사 없지요.”

등꽃 사진을 여러 컷 찍자 꽃멀미가 일었다. 아, 이렇게 많은 꽃송이를 담다보니 멀미까지 생기는구나. 꽃멀미! 향기로운 말인 듯도 싶었다. 꽃향기에 취하고 꽃타래에 취하고 꽃말에 취하면 어지러운 멀미가 생겨날 듯 싶었다.

“등꽃이 있어 집이 환해 보입니다.”

“밤에 가로 등불하고 멋진 조화가 됩니다. 대문에 수많은 등불을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이따, 밤에 와서 사진 찍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등꽃

                            오영해

혼자는 갈 수 없는 나라

그대를 안고 가다보면

내 안에 어둠이 아픔처럼 차올라

거기 연보라 꽃등을 걸었습니다.

 

빛 부신 오월

바깥보다 그늘이 더 환한 등나무 아래

그대 내 안에 꽃으로 피었습니다.

 

어둠을 지나서만 갈 수 있는

그 빛나는 나라 멀리서

그대가 발길을 멈추면

홀로는 추락할 수밖에 없는 허공에

해마다 연보라 향기가 여울져

시간을 거슬러 올랐습니다.

 

벼랑이어도 좋고

벽이어도 좋으니

그대 어디든 계시기만 하소서.

혼자는 갈 수 없는 그 환한 나라를 위하여

 

친구의 시(詩)가 떠올랐다. 목포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틈틈이 시창작에 매진하고 있는 시인이다. 작년엔가 목포에 들러 밤새 술을 마시며 시며 인생에 대해 논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싱싱한 민어회를 먹고 갖가지 목포만의 특별한 해물요리를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도 등꽃의 향기가 친구의 향기까지 불러들인 모양이다. 벼랑이어도 좋고, 벽이어도 좋으니 그 환한 나라에 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그래, 등꽃을 보면 환한 나라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환한 나라에 늘 환한 얼굴로 터질 듯이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영해 시인(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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