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난 그리 많은 책을 읽은 것 같지는 않다. 책을 좋아하긴 하고, 많이 사긴 하는데 구입한 모든 책을 읽지는 않고 끝까지 읽는 책은 그 중에서도 일부다. 이유는 자꾸 생각이 딴 곳으로 새기 때문이다. 한 챕터만 읽어도 생각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예전에 많이 읽었던 삼국지만 해도 관우가 죽는 장면에서 관우가 죽지 않는 수십개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내 기준으로 짧은 기간에 두 권을 동시에 읽은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우연히 알게 된 분의 지속적인 재촉(?) 덕에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사피엔스'를 딴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읽었다.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사회'는 복음이다.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내적 속성 때문에 다른 경제 시스템으로 이행할 것이라는 예언은 너무 매력적이다. 자본주의가 극단적인 생산성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한계비용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게 할 것이며,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면 결과적으로 이윤이 제로 상태까지 떨어질 것인데, 이윤이 제로인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어쩌면 칼 맑스의 예언과도 닮아 있다.
 
자본주의가 그 어떤 외부적 요인이 아닌 자체의 속성 때문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점과 그 주요한 동력이 이윤율 저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리프킨은 한 사회의 경제시스템을 조직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힘을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운송 모체로 보았다. 1차 산업혁명은 전신, 석탄, 철도가 규정했으며, 2차 산업혁명은 전화, 석유, 자동차가 규정했다는 식이다. 1,2차 산업혁명의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운송 모체가 중앙집권적이고 수직통합적인 경제시스템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득세한 것이라고...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재생 에너지, 사물인터넷이 지원하는 운송시스템이 규정하기 때문에 한계비용이 제로수준까지 떨어진다는 주장인 셈이다. 인터넷이 정보생산과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비용을 제로 수준으로 만들고, 재생 에너지 역시 에너지 생산의 한계비용을 제로 수준으로 만드는 속성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사물인터넷이 발달하면 물류의 혁신이 있을 것이고, 운송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수 있다는 데에도 공감이 간다.
 
그런데, 1,2차 산업혁명을 규정한 논리가 3차 산업혁명도 규정할 수 있을까? 과거의 성공 논리가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것 같다. 과거를 효과적으로 해석하는 분석틀도 미래에는 부분적인 해석틀만 제공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운송 모체의 경제시스템 규정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이유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부르는 인공지능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로봇과 결합될 인공지능이 판도를 다시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파고에 대한 글로 관련분야 사람의 조언을 구했더니 기계어로 된 정보에 기반한 인공지능은 많이 발전했지만 자연어 처리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IBM 왓슨의 국내도입 자문을 하다보니 이미 자연어 처리도 상당수준 도달해 있었다. 자연어 인식의 문제에서 이제 넘어야 할 산이 의사가 휘갈겨 쓴 차트(이건 인간도 못 알아본다)를 정확히 못 인식해서 고민이라 하니, 나머지는 끝났다는 의미가 된다.
 
통상 1,2차 산업혁명을 묶어서 1차 기계혁명으로, 3,4차 산업혁명을 묶어서 2차 기계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차 기계혁명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했다면, 2차 기계혁명은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1차 기계혁명에서 기계로 대표되는 생산수단의 소유여부가 계급을 나누었듯이, 2차 기계혁명에서는 인공지능 소유 여부가 다시 계급 비스무리한 것으로 나눌 것이고,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 물류의 한계비용이 제로인 것의 의미를 퇴색시킬 것 같다.
 
어쨌든 리프킨의 책은 기분 좋은 상상이었다. 자본주의의 속성, 그리고 기술 발전으로 협력적이고 분산적이며 수평적인 사회로 대체된다는 예언은 매력적이다. 그의 상상이 실현되기를 바라지만, 인공지능 세상이 너무 빨리 오고 있다. 리프킨이 인공지능의 파괴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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