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버린 산하여

 

어린 시절을 충청도 외할머니 댁에서 살다시피 한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잔뜩 받아가며 살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울 엄마가 외동딸이 되고 보니, 당시 노부부께서는 늘 쓸쓸하시다 하여 우리 5남매 중 셋째인 나를 유난히 제일 많이 데리고 계셨다. 하나뿐인 외삼촌이 있었지만, 당시엔 어린 아들이었기에 항상 허전함을 느끼신 것 같다.오랜만에 차를 몰고 나들이하는 나의 마음은 한 마리의 노랑나비가 되어 충청도 국도를 달리고 있다. 양 옆으로는 누런 벼이삭들이 쭉 펼쳐져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고 덩달아 산두렁, 밭두렁, 논두렁이 정답게 나를 반겨주고 있다. 이렇듯 아름다운 정경을 쫓고 있노라면 옛날의 그 시절로 돌아갈 때가 있다.

하늘만 빼꼼이 내다보이는 농촌의 주변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늘 적막함을 안고 사는 것 같았다. 봄철 나지막한 돌담에 기대어 앞산을 바라다보면 꿩이 푸드득 날개를 치며 콩밭으로 내려앉아 가는 모습과 아지랑이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봄바람에 실려오는 풀내음이 동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곤 하였다. 5월 모 심은 후의 개구리 울음소리는 개골개골 한밤의 연주회를 열어주고 그 소리에 장단 맞춰 소쩍새의 울음소리 또한 듣는 이로 하여금 짙은 우수에 빠져들게 했다.

무엇보다도 나의 기억에 남는 것은 모내기 할 때 어른들 곁에 따라붙으며 모 한 포기라도 더 심어보려는 안간힘에 여린 손길이 물컹한 논 속으로 쑤욱 다섯 손가락이 파고 들 때이다. 파릇한 모 포기가 그렇게 논 속으로 깊이 모 뿌리를 꽂아가노라면 힘겹다는 표현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어린 마음을 포근히 감싸갔다.

한나절을 어른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모 포기를 꽂다보면 어느 새 아랫배가 썰렁하니 배가 고파온다. 배고픈 적신호를 알아차리기라도 하신 듯, 외할머니는 커다란 광주리에다 점심밥을 챙기시어 머리에 이시고는 산마루를 넘어오시던 모습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의 눈가에 선하게 떠오르곤 한다.

푸짐한 점심식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저마다 잎담배 한 대씩을 피워 물곤 산두렁이건 논두렁이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벌렁 큰대자로 누워 버린다. 그러노라면 뒤켠에 있던 나는 햇빛이 따사롭게 내려쬐는 산자락을 거닐며 냉이 캐기, 달래 캐기 등등 한 시간이 금방 가버리는 거다. 내게는 점심 먹은 후 1시간의 쉼 참이 꿀맛같은 시간이었다.

반면에 내가 제일 징그러워하는 것이 있었다. 그 당시 시골엔 밭이건 산이건 갈색의 긴 뱀들이 깔려있었다. 독사는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을 해치지는 않지만 잠시라도 한눈을 팔 시엔 물컹한 뱀을 밟을 수가 있다. 난 그런 뱀을 하도 봐서인지 별로 겁낼 것은 없었다. 내가 겁내는 것은 그보다도 훨씬 작은 갈색 바탕에 흰줄이 쳐진 거머리나 새끼손가락처럼 굵은 검은 색의 말거머리였다.

처음엔 아무 것도 모르고 첨벙 논으로 뛰어 든 거다. 그런데 종아리가 근질근질 한 것 같아서 손으로 쑤욱 문질러보면 뭔가 미끄덕한 느낌이 좋지 않아 다리를 불쑥 들어 올려보면 손가락 만한 거머리 댓 마리가 종아리에 찰싹 늘어붙어 가지고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거다.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손으로 문질러봐야 소용없으니 흙을 한 주먹 집어서 문질러 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논둑의 진흙을 한 줌 움켜쥐고는 정신없이 양다리를 문질러댔다. 그러자 흙한테는 당할 수가 없는지 여기저기서 거머리들이 흙에 떠밀려 논두렁으로 뚝뚝 떨어져내렸다. 그런데 이번엔 거머리가 떨어진 부위에서 붉은 피가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그 후론 논에는 들어가지 않고 논 속을 핥는 솔개가 되어버린 거다. 어느 만큼 시일이 흐르자 난 다시 논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번엔 헌 스타킹을 신고선 논 속으로 뛰어든 거다. 스타킹 일은 주변사람들이 나중에 알려줘서 해본 것인데 신기하게도 거머리는 한 마리도 다리에 늘어붙지 않았다.

시골의 모내기가 그렇게 끝이 나서 여름이 가고 오곡 풍성한 가을이 돌아오면 익은 벼이삭의 고개가 축 떨궈진 사이로 메뚜기의 숨바꼭질이 한창이다. 당시엔 농약을 뿌리지 않아서 들에만 나가면 밟히는 것이 메뚜기요, 가슴이고 머리고 파닥이며 툭 튀어오르는 게 메뚜기였다.

난 그 메뚜기들을 가느다랗고 긴 풀줄기에 구슬을 실에 꿰듯이 메뚜기들을 잡아 꿰어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서너 줄기의 메뚜기 사냥으로 한 손엔 메뚜기들이 제법 무겁게 매달려 있다. 잡아온 메뚜기들을 저녁 소여물 쑨 아궁이 속에 그대로 집어넣는다. 메뚜기 바비큐가 구수하게 코 끝에 묻어 온다. 노릿노릿하게 잘 익은 메뚜기구이를 아궁이에서 꺼내어 재를 톡톡 털어낸 다음 마루로 가지고 나와서 서산마루턱에 걸터앉은 붉은 노을을 바라다보며 메뚜기 바비큐를 먹다보면 어느 새 동심의 싹이 움터오는 노래가 나직이 흘러나오곤 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울고

귀뚤뀌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충청도 부용리(안골)의 하늘 아래에 나의 옛 푸른 추억들이 알알이 맺혀있던 그날들. 부용산 산자락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금강줄기 강 나룻배에 두어 차례 금강을 타 내리던 그 곳. 한 폭의 동양화처럼 산자락을 감고 도는 금강의 나루터엔 옛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지금은 회색의 콘크리트 벽에 에워싸인 현대식 공장들이 현기증이 나도록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꿈에서도 잊어본 적이 없는 그 곳. 예전엔 금강줄기를 따라 병풍처럼 쭈욱 이어져나간 산자락 아래에 보기에도 풍성한 뽕나무들이 십리 길을 마다 않고 군대의 몇 소대를 세워 놓게 한 것처럼 위세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선 하늘을 찌를 듯한 자태로 띄엄띄엄 서있던 아름드리 미루나무들은 한더위 뜨거운 햇살을 피해 나무그늘 아래서 쉬었다가는 백사장의 휴게실이 되어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하나씩 그 수효가 줄어들며 나무 밑 부분이 짤려 나가기 시작했다.

푸른 금강의 나루터엔 불규칙한 모래 웅덩이들이 흉물스럽게 파헤쳐진 채 여기저기 어지럽혀 있고 그 세월 속에 붉게 녹슬어 가는 모래알들. 곱디 고왔던 옛날의 하얀 백사장은 지금 어느 곳에서 숨쉬고 있는 것인지? 문명의 손이 닿고 문명의 기계로 밀어붙였으니 분명 그 옛날의 산하는 아닌 것 같다. 그 많던 뽕나무와 미루나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네 바퀴 달린 차들이 그 백사장 위를 달리고 있으니 세상은 참으로 무섭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 깊숙이 느끼고 있다. 남은 것은 유령의 흔적만이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할퀴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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