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도당동 페어차일드의 홀몸어르신 가족결연

“이제 홀몸어르신 집에 사람이 옵니다”

- 부천시 도당동 페어차일드의 홀몸어르신 가족결연

 

“어머니~ 저희 왔어요 어머 우리 아들 왔네~ 우리 아들 오면 제일 좋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의 한 연립 B101호. 문이 열리자 웃음소리가 쏟아진다. 아들 둘에 딸 셋. 다 큰 자식들이 모이니 집이 꽉 찬다. 제일 분주한 곳은 부엌. 양 손 가득 들고 온 것들을 풀어 놓는다. 아들 김기영 씨(설비기술팀)는 어제 낚시를 다녀왔다며 커다란 생선을 내민다.

큰딸 장미자 씨가 나서니 냄비에서 고기와 생선이 금방 끓기 시작한다. 어머니도 방과 부엌을 오가며 바쁘기는 매한가지. 아들 회사 얘기도 들어야하고 조선간장(국간장)을 찾는 딸한테도 가봐야 한다.

어머니는 올해 83세. “행복하다. 진짜 너무너무 행복하고 아들딸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외롭고 서럽다가도 아들딸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어머니. 허리가 좋지 않다. 오늘은 북적이는 집 덕분에 허리 통증이 싹 가셨다.

‘1부서 1어르신’ 가족이 되다

여기에 등장하는 ‘자식이 아닌 자식들’은 모두 부천시 도당동에 있는 페어차일드에 다닌다. 페어차일드 볼링동호회 회원들. 회사에서 지원하는 가족결연 활동으로 작년 4월부터 시작된 인연. 1년 2개월째다.

처음부터 한 가족 같진 않았다. 당연하게 어색했다. 어머니네 커튼도 손수 고르고 지난해 볼링동호회 전 회장이던 큰아들 집들이에도 함께 했다. 작년 6월 쯤 야외에 나가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전북 부안 변산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백합탕도 같이 해먹었다. 어머니는 아직까지 그 백합탕이 너무 맛있었다는 이야기 한다. 그렇게 정이 쌓이고 이제는 영락없는 가족이다. 볼링동호회 회원들은 어머니를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들, 딸이 호칭의 전부다. 이들처럼 새로운 ‘어머니’와 가족이 된 이들은 현재 15개 팀. 부천시 도당동 어르신 15명은 최소한 한 달에 한두 번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9년 동안 막내딸

방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 한창이다. 사실 이날 윤광수 씨는 첫 방문. 처음이라 쑥스럽다. 어색함에 선배 따라 그저 웃을 뿐이다. 그는 이번에 볼링동호회 회장직을 맡게 되며 따라나선 것.

막내딸 김경현 씨는 어머니와는 1년 정도다. 하지만 다른 어르신들과의 인연은 꽤 오래. 20대 후반부터 벌써 9년이 되었다. 그런 그녀도 처음이라 어색했던 때가 있다. “처음에는 동료들과 어울려서 시작하게 됐어요. 어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시간이 쌓이다 보니 이제 익숙하고 편해요” 한참 꾸미고 친구들이 더 좋은 아가씨. 이제 이 가족 ‘완벽한 막내딸’로 녹아들었다.

애교 담당 둘째딸 서옥례 씨. 그녀는 어머니와의 시간을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수록 우리 엄마에게도 여기 엄마에게도 애틋해지더라고요. 원래 집에서도 막내라 누굴 챙기고 그러지 못했어요. 그런데 자꾸 보니까 마음이 바뀝니다” 효도를 배운 것이다.

이제 방에 들어서도 서로 익숙하다. 분업이 잘된다. 밥을 먹고 얘기하다보면 2~4시간은 금방. 힘든 건 없다. 그런데 어머니의 허리가 걱정이다. 어머니는 계속 앉아있고 서 있다. 딸들보다 큰 키 덕분에 물건 꺼내는 건 어머니 담당이다. 그래서 낮은 싱크대 때문에 허리가 더 아프다. 작은 딸은 여건이 되면 싱크대를 바꿔드리고 싶다.

“원래 집에 식구가 많아 준비하면서 조금 더 하면 별로 힘들 것도 없다”는 큰딸 장미자 씨. 교대 근무를 하다 보면 피곤하다. 하루 쉬는 날 더 쳐진다. 하지만 장 씨는 어머니네 저녁 뭐해 갈까 생각에 기운이 난다. 요리를 잘 못한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녀는 “다들 맛있다 해주고 여럿이 먹으니 더 즐겁다”고 말한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하루는 돼지등뼈찜을 대접했다. 그걸 먹고 어머니는 “이런 맛은 처음”이라고 했었다.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던 그녀는 새로운 요리에도 자꾸 도전하게 된다. 음식 도전이 일상이 됐다.

이제는 사람이 집에 온다

장 씨는 일주일에 한번쯤 어머니에게 종종 전화를 건다. 만날 약속을 정하거나 날씨가 안 좋을 때 등. 용건은 다양하다. 어머니는 휴대전화가 없다. 집으로 전화를 거는데 목소리만 듣고 “딸내미야~”하고 단번에 알아듣는다.

더 많은 회원들에게 참여를 독려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주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매번 처음 오는 사람이 있으면 어머니가 낯설다. 오던 사람이 안 오면 어머니가 기다린다. 김기영 씨는 “어머니 위주로 해야죠”라고 말한다. 마음이 참 곱고 깊다.

김기영 씨(설비기술팀)는 어머니에게 예전에 물은 적이 있다. 언제가 제일 외로운지. 어머니에게 제일 외로운 때는 명절. 남들은 자식들도 오고 손주도 오는데 어머니는 혼자였다. 이제 어머니는 매달 명절이다. 다섯 자식들이 북적거린다. 사람 사는 집 같다.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벌써 저녁 준비가 끝났다. 오늘 메뉴는 제육볶음과 매운탕. 푸짐하다. 밥은 무조건 두 그릇. 예외는 없다. 밥상에서 아들 김기영 씨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딸들보다 아들이 더 재롱이 많다. 어젯밤 낚시 이야기부터, 딸 남자친구가 군대 간 이야기까지.

20여 년 전 입사시절 부터 알고 지낸 큰딸과 아들의 그때 그 시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둘째딸은 임신과 출산이 겹쳐 번번이 승진 놓친 이야기도 늘어놓는다. 어머니는 이게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 따뜻한 밥상에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있다. 아들 윤광수 씨가 한마디 거든다. "오늘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이렇게 아들이 되어간다. 이미 페어차일드 볼링동호회 회원들은 ‘부천 사람이고, 도당동 든든한 아들’이 되어간다.

허모 복지국장은 “페어차일드는 ‘수호천사봉사단’부터 임직원까지 모두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나눔 기업’이다.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이 진짜 문화특별시 부천의 1등 기업”이라고 밝혔다.

 

<페어차일드 천우영 상무 인터뷰>

“천우영은 부천사람이고 도당동 일꾼이다”

부천시 도당동에는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이하 페어차일드)가 있다. 복지 측면에서 본다면 도당동의 효도기업이다. 직원들의 참여를 끌어내 도당동 곳곳에 나눔의 손길이 이어지도록 한다.

동네 경로당도 찾아가고 지역 아이들 공부도 돕는다. 외로운 어르신들에게는 가족이 된다. 도당산의 환경지킴이가 되어 청소도 한다. 동네에 이만한 효도가 없다. 페어차일드는 직원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나눌 대상을 연결한다. ‘신나게’ 나눌 수 있게 격려도 아끼지 않는다.

천사의 1천400원

그들의 이름은 ‘페어차일드 수호천사 봉사단’(이하 수호천사단). 페어차일드 직원이라면 누구나 1구좌에 1천400원 기부에 참여할 수 있다. ‘천사’라서 ‘1천400원’이다. 참여는 자유지만 10구좌, 50구좌를 하는 이도 있다. 페어차일드 직원은 1천500여 명. 이 중 80% 이상이 여기에 참여한다.

금전적 지원과 활동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달에 한번 회사는 수호천사단의 사례 발표 자리를 연다. 공유하고 확인한다. 도움이 필요한 곳은 함께 고민한다. 제대로다. 보여주기 위한 일회용 나눔이 아니다.

"이웃에게 나눌수록 직원 만족도가 높아져요. 애사심도 생기고요” 페어차일드 천우영 상무는 나누니 직원에게도 회사에게도 좋다는 소리다. 직원들은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애틋해졌다. ‘우리 회사 꽤 괜찮은데~’라는 자부심도 생겼다. 그들의 진심에 지역도 행복하다. 천 상무는 “자발적인 나눔이 직원들에게 보람을 느끼게 한다”고 믿는다.

페어차일드에서 수호천사단을 비롯한 사회공헌활동을 전담하는 천우영 상무. 그는 멀티 플레이어다. 안전, 소방, 환경, 보안, 총무.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처음부터 관리직은 아니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당시 서울산업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한 공학도다. 생산 파트에서 시작했다. 실무에서 여러 일을 배우고 관리자가 됐다. 이른바 ‘현장형 관리자’다. 현장 실무로 잔뼈가 굵은 그는 안전 관리에 딱이다.

천 상무. 그는 나눔도 현장에서 관리한다. 사무실에서 수치만 보고 돈으로 나누지 않는다. 지역과 이웃에 나누는 일도 하다 보니 부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사회복지과정까지 이수했다. 열심이다. 지역에 여러 모임에 참여한다.

사람들을 만나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다. 2014년 9월 도당동 복지협의체가 생기면서 그는 위원으로 참여했다. 벌써 3년차 위원인 그는 회사가 ‘동네’에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페어차일드’는 진짜 ‘나눔 기업’

페어차일드는 도당동에 산다. 도당동 복지협의체는 페어차일드의 착한 나눔을 인증하고, 지역주민에게 널리기 알리기 위해 ‘나눔 기업’ 협약식을 개최하고 현판을 달아줬다. 페어차일드 수호천사단은 지난해 1월부터 매월 장학금과 결연금을 도당동 복지협의체에 기탁한다. 현재까지 총 972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도당동 복지협의체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열심히 학업을 수행하는 청소년 12명을 선정해서 페어차일드의 기금을 꼭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과 결연 후원금으로 지급해오고 있다. 그 외에도 지난 겨울 ‘수호천사단’은 도당동 복지협체와 협의, 홀몸어르신들에게 온수매트를 지원했다. 회사에서도 동네에서도‘일꾼’이다.

천우영 상무는 부천에 산다

그가 처음 부천에 온 것은 1985년. 삼성반도체(현재 페어차일드)에 취직하면서다. 첫 직장이 지금도 직장이다. 도당동의 작은 연립이 첫 보금자리였다. 고향은 충청남도 논산. 서울 용산의 육군본부에서 일반 병사였던 그는 당시 하사관을 만났다. 그 사랑이 결혼으로 연결됐다. 지금은 드럼동호회를 지휘하는 아내 이경옥 씨다.

천 상무는 여느 한국 남자와 마찬가지로 ‘반 가정적이고 친 사회적’이다. “부인이 남편 대신 드럼을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천 상무는 다른 지역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제 부천에서 지낸 기간이 더 길다.

그는 아파트 보다 논밭이 많았던 부천을 기억한다. 부천에서 일하고, 자식도 길러냈다. 부천과 함께 살며 이웃도 돕는 천 상무. 영락없는 부천 사람이고 도당동 동네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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