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에서 만난 깨진 됫박

 

앤시언트콜린토스박물관에는 깨진 됫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4-5세기경의 유물이라네요. 저울추와 함께요. 위와 아래의 직경이 같은 원통형 됫박입니다. 고등어자반이나 마른 멸치 등을 사서 일반찬을 마련하기위해 우리 어머니들은 됫박질을 해서 곡물들과 바꿨습니다. 이 때 쓰던 직륙면체형 됫박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다 거래를 위해 쓰던 부피의 척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쌀독에는 또 다른 됫박이 있었습니다. 바가지 됫박이었습니다.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게 대를 물려가면서 쓰던 바가지입니다. 깨져도 버리지 않고 바늘로 꿰매서 썼습니다.

척도는 변하면 안 되니까. 손때가 묻어서 새까맸습니다. 끼니때마다 식수를 헤아리고 그에 맞춘 양의 밥을 하기 위해 쌀을 푸는데 쓰던 자가 됫박입니다. 쌀을 만든 자연의 엄중함을 기억하기 위해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됫박질을 해서 밥을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과의 신성한 거래를 위한 척도였습니다. 신성하다는 건 돈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뜻(챨스 아이젠슈타인의 '신성한 경제학')입니다.이 됫박의 통제자가 사실 한 가정의 가장 큰 권력자였습니다. 곳간지기였습니다. 이 곳간지기는 물론 농부의 아내이자 농부의 펠로우였습니다.

농부가 아니면 됫박질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곡물의 신성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공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 부채가 주도하는 이 미친 신자유주의경제는 바로 됫박질을 잘 못하는 데 기인합니다.

글사진Ⅰ유진생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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