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름은 <알묏부리>이다

벌응절리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자!

 

벌응절리 마을을 걸어보았다.

약대 초등학교 앞 4시,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출발했다.

학교 뒤 뱀골을 한 바퀴 돌아 둔대골로 오르던 중간쯤에서 새재골로 향했다. 뱀이 많아서 뱀골인가? 마을 분들은 뱀굴로 불렀다.

초등학교 앞 큰 길을 건너 까치울로 향하는 옛 길목에 서낭당이 있던 자리를 비롯해 건넛마을 안쪽 능골과 왜곡된 역사가 있는 박진 장군 기념비도 돌아보았다. 박진 장군 기념비는 왜곡 논란이 많은데, 그대로 두는 것이 신기했다. 아직 역사적인 평가가 덜 되었다는 뜻일까?

벌응절리에는 개발제한구역이 포함되어 있어 높은 건물에 콘크리트로 시야가 가려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지난번 답사를 갔던 새럴산과 뒤편의 멀미(원미산), 마을 앞 왼편에 소탈미(소탈산)까지 볼 수 있었다. 소탈미라는 이름이 아주 귀여웠다. 마을 앞에는 감배들, 춘교들, 장구들이라는 각각의 이름을 가진 들판들이 펼쳐져 있었다. 춘교들은 용교들로 불린다고 했다. 방아다리들, 뱀골과 둔대골에서 흘러나온 물이 마치 디딜방아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이 넓은 들판이 논과 밭, 뽕밭으로 이용되었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런데 뱀골 앞에는 역곡초교가, 능골 앞에는 역곡고교가 산과 골짜기에서 오는 물길과 바람길을 막고 있었다. 옛 우리 선조들은 산을 쓸 때나 집을 지을 때나 앞이 트이고 시원하게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이기를 선호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함부로 훼손하지 않고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말이다. 부천의 대부분의 골짜기가 이처럼 바람길을 막아놓은 건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골짜기 수난시대라고 할까?

뱀골 안쪽에 조성되어 있는 인공조림에는 목련나무가 많았다. 목련이 피는 봄이 되면 하얀 꽃이 만발하여 좁은 뱀골이 환하게 빛날 것 같았다. 둔대골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대동우물이 있었다. 아쉽게도 물은 말라버리고 표리석도 없는 채로 덩그러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 분들 모두 이 대동우물을 마셨다는데... 나중에는 작두샘이 생기고, 마을 안에도 두레박 샘이 생겨났다고 했다. 건너말에도 우물이 하나 파였다고 했다. 괜히 미안하여 표지석 하나 세워주고 싶던 마음이 들었다.

새재골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다. 춘덕산 복숭아꽃 축제를 하는 곳이다. 이제 간신히 흔적만 있는 옛 소사 복사꽃이 되어 새재골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복숭아를 다 따고 그걸 쌌던 노란 봉지들이 반겨주었다. 주변에는 주말농장으로 사용되던 밭들이 많이 있다. 복숭아나무를 더 심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곡고교 뒤에 작은 언덕배기가 있다. 옛 이름은 <알묏부리>이다. 왠지 낯설면서도 신기한 이름이다. 부리하면 제주도 <산굼부리>가 떠오른다. 제주도는 산의 언덕을 모두 부리라고 하는데 사실 부리는 백제어라고 한다. 그렇기에 <알묏부리>라는 이름은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이 백제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케 할 수 있다.

부천에는 높은 산이 많지 않아 성주산이 제일 높은 산에 속한다. 때문에 등산이 다소 어려울 듯 보이지만 직접 체험한 바로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다닐 수 있다. 봉배산, 멀미(원미산), 모두 둥글둥글 큰 언덕배기 정도이다.

햇살 따스한 주말, 눈이 한가득 내리면 가족과 함께 내 고장 부천의 옛 모습도 보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해 보시면 어떨까?

글 | 김순희(콩시루 회원, 하늘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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