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배운다

 

 

빨강, 파랑, 노랑. 색색의 레고 블록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공주들이 나오는 그림책도 여기저기! 소쿠리에 널린 나물에선 킁킁 냄새가 나고 인형 친구들이 나를 반겨주는 그곳, 그곳은 바로 나의 작은 공간 쪽방.

어릴 때 살던 집은 작은 방이 있었고, 그 안에 나무로 된 여닫이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면 좁고 기다란 쪽방이 나왔다. 그곳은 난방이 되지 않아서 바닥이 차가웠는데 어머니는 거기에 내 장난감이며 잡동사니 살림을 두셨다.

그때부터 그곳은 내 작은 놀이터이자 나 혼자만의 비밀공간이 되었다. 서늘한 공기, 차가운 바닥에서 뒹굴며 놀고 있으면 어머니가 "이제 그만 나와서 놀자." 라고 부르셨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노는 게 좋았다. 그 방에서 놀 때 바닥도 공기도 차가웠지만 나에겐 쪽방서 보낸 시간이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한낮의 따뜻한 볕이 방으로 찾아오면 햇살 가득한 방바닥에 엎드려 색칠공부도 하고 손으로 그림자놀이도 했다. 그곳에서 난 뭐든지 될 수 있었다. 공주도 되고 가수도 되었다가 화가도 되고 의사도 되었다. 틀에 박힌 형식이나 순서에 매이지 않아 자유롭고 즐거웠다. 그 시간 나를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기억 속의 어린 나는 올망졸망 작은 블록으로 내 집을 짓고 그 안에 꼬마 친구들을 데려다 놓는다. 그러곤 혼자 몇 역(役)을 한다. 흥얼거리는 노래는 필수였지!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새 해는 보이지 않고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날 부르시네! 기분 좋을 때든, 우울할 때든, 언제라도 그 공간은 나를 반겨주고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성년이 되어서는 내 마음대로 선뜻 행동할 수 없고 주위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무언가 정말 신나고 즐겁게 해본 게 언제였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할 때 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을 먼저 할 때가 많다. 내가 한 행동들에 책임을 져야 하고 또 결과로 남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경우도 셀 수 없다.

그럴 때 지치고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따뜻하고 즐겁던 추억을 준 그 방이 다 자란 내게 위안을 준다. 차가운 그 방에서도 너는 행복했었다고, 지금의 각박한 현실에서도 너는 자유롭고 따스하게 놀이 할 수 있다고.

생각만 해도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는 그 시간이 그냥 좋다. 어릴 땐 그 방이 차갑다는 걸 어떻게 몰랐을까? 다 자란 내가 어린 나에게 배운다.

글∥신동숙(글 빚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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