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웃, 소설가 이주연을 만나다

“얘들아, 괜찮아”

우리 동네 이웃, 소설가 이주연을 만나다

 

 

 더위가 일찍 찾아온 역곡, 어렵게 시간을 잡아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오세요. 잘 지내시죠?” 필자와 마주한 사람은 얼마 전 출판된 청소년 소설 ‘애들아, 괜찮아’의 이주연 작가다. 단단하고 단아한 외모, 40대 초반처럼 보여 나이를 물으니 “젊게 봐주셔 고맙네요. 큰 아이가 올해 해병대 입대 했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작가도 필자처럼 저소득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기에 어려운 속사정을 대략 알고 있다. 대부분의 운영자들은 아이들 활동 공간 임대료를 마련해야 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매월 50~100만원 내외의 적지 않은 금액을 지역아동센터에 기부하며 운영한다. 대부분의 이용아동 학부모나 시민들은 국가에서 모두 운영자금을 지원받아 운영된다고 알고 있다. 자비로 후원하며 운영하는 대표입장에서 생각하면 속이 터지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당연히 해결해야할 ‘빈곤’ 아동에 대한 복지 정책에 아동센터 운영자들의 헌신과 그 가족의 희생이 숨어있는 것이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감내하며 최전선에서 아동 청소년 인권을 지켜나가는 지역아동센터 운영자들의 진정성을 우리 사회는 재평가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저런 필자의 생각이 겹쳐서 그런지, 마주보고 있는 이주연 작가의 눈빛에 선함이 느껴졌다. 진한 진정성이 눈빛에서 묻어 나왔다.

  얼마 전 근황이 궁금해 전화했더니 소설을 썼단다. 와~우 책 내기가 그렇게 힘들다 던데.. 경외심과 함께 궁금해 졌다.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책 속 내용 등이 말이다. 만나자 마자 첫 질문에 왜 책을 썼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단순하고 짧았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위한 책이에요” 우리사회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버리는 경향이 많다. 물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아직 학생이기에 사과하고 용서받는 경험을 잘 살려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에 가해학생을 위한 책을 썼단다. 이어지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아직 사과할 용기를 찾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한 책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먼저 사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인터뷰 과정 속에서 작가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선’하게 보는 듯했다. 가해학생이더라도 인간내면의 그 선함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용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했다

  “학교폭력 해결책은 없는가?”라고 다소 큰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주연 작가는 국내 학교폭력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학교폭력 관련 책도 여러 권 집필했고, 서울 남부 교육지원청 WEE(상담센터) 센터장 , 서울가정법원과 EBS 등에서 학교폭력 중재상담가로 탄탄하게 전문성을 길러온 교육자이고 임상전문가이다. 한 참 생각하더니 덤덤하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 남에게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는 성숙된 문화가 필요하겠죠” 다소 거창한 답변을 기대했던 나에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우리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책임을 묻고, 숙제로 그 실천을 남기는 통찰력있는 답변이었다. 학교폭력 해결을 거창하게 멀리서 찾지 않고, 우리 모두의 작은 성숙된 자세에서 작가는 찾고 있었다. 생각해 볼수록 명쾌했고 간결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회복적 정의’에 대해서도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회복(restorative)이라는 개념이 금방 안 들어오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도 아니구요. 아마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게 아닌지...”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보호관찰소(현 준법지원센터)가 회복적 정의의 원조 메카 같은 현장이라고 말하며 필자에게 가까운 부천 보호관찰소 등에서 적극적으로 봉사해 볼 것을 추천했다.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도 있었는데, 회복적 정의의 핵심은 ‘써클’이라 말했다. 회복모임인 ‘써클’을 집단상담이나 집단코칭의 부분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아울러 회복적 중재상담을 위해 상담자는 장이론 (field theory), 게슈탈트 심리치료, 트라우마(traum) 등에 대한 임상적 훈련이 꼭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추상적인 ‘회복적 정의’의 단어 등에 매달리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회복적 정의의 ‘실체’는 지금 이곳(Here and Now)에 머물며 자기 자신이나 공동체에 대해 ‘알아차림 훈련’을 꾸준히 하는 것이 회복적 정의의 시작이고 끝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다소 개념적으로 혼란스러웠던 ‘회복적 정의’에 대해 생활 속에서 무엇을 실천하는 것이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지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국 ‘알아차림’이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작가에 대한 궁금함이 늘어갔다. 그 동안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된 순간은 어느 때였는지 물었다. 바로 답변이 나왔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근무할 때 학교 내 체벌금지를 위한 TF위원으로 활동했던 순간을 꼽았다. 실제로 이주연 작가는 체벌금지를 위한 실무를 담당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체벌금지’는 여러 저항이 있었지만 서울시 교육청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그는 역사 속에서 아동·청소년 인권이 꾸준히 신장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진일보한 사건을 학교 내 ‘체벌금지’라고 믿고 있었다. 그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 나갔다는 인권활동가로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중앙대 교육학과에서 교직과목을 강의하며, 예비교사들을 위한 학교폭력 교과목을 개발했던 일에도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부천에도 인연이 있어, 30대 때 부천시 청소년수련관에 근무했었는데 그때 청소년지도자 모임인 ‘푸른모임’을 만들었던 일도 기억난다고 했다.

  부천시 아동·청소년 정책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 살짝 물었다. “나름 잘하고 있지요” 라고 짧게 말한 뒤, 작년에 부천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아동 청소년 2명이 부모의 폭력으로 잔인하게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천시는 박근혜 정부로부터 청소년 정책을 잘했다고 상을 받았죠. 시청건물에 현수막을 붙이고 웃기지도... 아이가 맞아 죽었는데 상이라니. 완전 개그 콘서트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죠. 상황이 잘 맞지 않았던 거죠” 그 현수막을 보는 학부모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하니, 청소년지도자로서 부끄러워 일부러 시선을 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주연 작가는 소설적 감수성 때문인지 이야기를 나눌수록 내게 마력 같은 힘을 주었다. 마을 활동가이고 시민운동가로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돌아보게 하였다. 작년에 그런 큰 사건이 지역에서 났을 때 한 명이라도 양심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누군가 책임지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동·청소년 이름 팔아 밥 빌어먹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얘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는 망설이다, 부천시청소년 수련관에 근무할 때 역곡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형제, 유괴 살해 사건을 이야기 했다. 마침 역곡에 본인이 살고 있을 때라 그에게 적지 않는 충격으로 다가왔단다. 20년 넘게 청소년지도자로 살아오면서 죽은 형제에 대한 미안함이 항상 있었고, 그 형제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숙제가 가슴 한 곳에 늘 있었다고 한다. 부천에 원미산아동센터를 운영하며 억울하게 죽은 형제들이 뛰어 놀았을 기찻길 옆 ‘나비공원’에 벼룩시장을 3년째 준비해 열었다고 한다. 그에게 벼룩시장은 억울하게 죽어간 형제를 기리는 ‘3년상’ 같은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 ‘3년상’을 모두 치뤘으니 무언가 그 아이들 위해 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 놀라기도 하고, 한 편으로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모두 잊고 있는 사건이었지만, 청소년지도자로서 양심을 지키며 누구도 짊어지지 않는 짐을 혼자 힘들게 지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이야기를 할 때 이주연 작가는 눈빛이 더욱 빛나고 반짝였다. 아마도 그 눈빛만큼이나 청소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탈놀이 이수자로서 공연예술 전문가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이들을 위한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만들고 있단다. “인형은 큰 틀에서 가면이다”라고 말하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말한다. 대본도 직접 써야하고 인형도 만들어야 해서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죽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바쁘고 힘든 일상이지만 즐기는 듯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인터뷰 내내 전화와 행정일로 분주한 그를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 왔다. 부천지역 아이들이 행복하고 폭력과 학대로부터 안전하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이주연 작가가 쓴 청소년소설 “얘들아 괜찮아”가 작지만 큰 울림이 되길 기대해 본다. 또 아동, 청소년 정책을 펼칠 때 이런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길 희망해 본다.

  사진을 찍자고 하자 “책이 제 얼굴입니다”라고 말하며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책 구매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네이버 검색창에 “얘들아 괜찮아”를 치면 구입할 수 있다고. 판매 수입은 아동센터에 기부되니 많이 홍보해 달라고 멋진 인터뷰 기사를 부탁했다. 개인적으로 자녀를 둔 학부모님은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며, 누군가에게 사과할 마음은 있지만 아직 사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작가를 만나는 동안, 겸손하게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소설가 이주연이 살고 있는 부천이 너무 좋다. 오랜만에 참 좋은 사람을 만났다.

 

 

글·사진 | 김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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