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이 ‘문화특별시’라는 말은 부천시민이 모두 문화로 특별한 시민이라는 말이 아니라, 시민이 문화로 특별해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부천 시민의 문화정신 함양을 위해 지역의 관련 여러 문화단체에서는 문화정신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문화의 도시’이라는 말에 명실상부하게 부합되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시민의 노력을 담보해야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해 11월에 부천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되어 가입 기념식을 갖고 올 4월1일에는 부천시 조직에 ‘창의도시추진팀’을 신설하였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는 역사와 전통을 넘어 그에 합당하고 인프라가 문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부하여 세계적인 명성으로 이름이 있는 도시들이다.
부천시는 과연 문화나 문학적인 측면에서 국내나 국제적으로 내세울 만큼 성숙한 문화 시민이거나 문학적인 명성에 과연 걸맞는 유산이나 유물이 있거나 전통적으로 축적된 역사가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물론 목표를 내걸고 지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 있는 부천시의 정책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애써 도시로 지정을 받았고 서둘러 조례를 급조하고 조직을 정비한 것에 비해 정작 시민이 무관심한 것 같아 매우 유감이다.

지난 3월9일에 국내에서 부천을 대표하는 문학 경쟁 문학상인 ‘수주문학상’의 위원 전원이 불만과 불평 가운데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급기야 그 위원장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매우 안타깝고 심히 불행한 사태다. 수주문학제 예산이 증액되자 이에 대한 이해관계가 갈등의 원인이었다고 하니 그 이름이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뿐 아니다. 지난 3월22일 오랜 시간동안 연구하고 자료(약 2,000여종)를 모아온 부천시에 오래 거주해온 한 문학인이 급기야 공식석상에서 ‘김소월 문학관’ 설립 요청이 무산되자 자료의 보존과 선양을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인근 김포시에서 전폭적으로 이를 수용하면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일체의 자료를 이관하기로 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물질은 정신과의 관계에서 지식 습득을 위한 외부환경으로 작용하는 데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대상물이다. 견문이란 측면에서 물질은 정신의 함양을 위한 필수불가결하게 반드시 지녀야할 소중한 자료이고, 역사는 자료와 만난 시대의 반영이며 미래를 위한 등대이고 좌표라는 것은 상식이다.

전문가는 자율을 근간으로 하고, 창작은 무한한 자유 보장을 담보로 하는 특수한 인간 정신의 발로다. 결국 ‘수주문학상’을 부천시 담당 공직자에게 위임 했다고 한다. 공직자는 행정을 근간으로 전문가 집단이다. 때문에 위탁과 용역에 기대고 의지하고 보신과 합리화가 일상이다. 불행이다. 전문가는 갈등으로 외면하고 비전문가는 과제를 안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시민의 권리가 있다면 시 정책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넘어 조언과 건의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요청일 것이다. 말을 전할 수 없고, 건의가 거절되거나 복잡하고, 요청에는 절차가 따른다면 외면은 당연하다. 그것을 바라고 원하는 바가 행정 편의적이고 무사안일의 표상이기에 불만을 안고 관공서를 외면하는 시민은 불행한 손님일 뿐이다. 누가 과연 부천시의 주인인가.

오늘도 가장 넓은 부천의 대로변에 위치한 거대한 회색의 부천시청 외벽을 치장한 ‘유네스코 창의도시 부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현수막이 어지럽고 요란한 선거의 계절에 부천 시민의 우롱과 탄식을 더해주는 분노와 소외의 펄럭이는 헝겊조각으로 나부끼는 형국을 바라보면 시민으로서 답답하고 부끄럽다.

시민이 진정으로 주인이라면, 그리고 시 행정부가 시민을 위한 존재 이유라면 관행과 타성을 우선 능동적으로 벗어야 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시민 의견 반영과 참여를 위한 시스템이라도 만들어 주인답게 시민을 배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시민은 지민(知民)이 되기 위한 그 방편으로 지난한 노력으로 의무와 책임에 답해야 함이 마땅한 도리이다. 과연 어떻게, 언제쯤이면 부천시민으로서 문화특별시민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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