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닭다리는 누가 먹을까?
대화의 중요성은 잘 알면서도 가장 힘든 부분은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고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통이 원활해진다. 문제는 너와 내가 다름을 머리로는 아는 데 실전에서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게 어렵다. 머리로 알지만 현실은 ‘소와 사자의 결혼이야기’처럼 살고 있다. 많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번 더 짚어보자.
소와 사자의 결혼 이야기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하던가. 소와 사자는 어느 새 먹고 싶지 않는 음식을 자꾸 주는 것에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기에 음식에 대한 불만은 그대로 둔 채 사소한 것으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 포크가 지저분하다 ”
“ 그릇이 예쁘지 않다”
등의 엉뚱한 것으로 화살을 돌리며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이렇게 싸우던 소와 사자는 급기야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이혼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던진 그들의 각자 한 마디는
“ 난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어!”
소와 사자의 결혼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가져온 참극이다. 너와 내가 다름을 머리로 알지만 생활 속에서는 여전히 너와 나는 같을 것이란 생각을 더 쉽게 더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위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물어 보면 될 걸~’ 한다. 아주 간단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난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다” 는 한마디였다. 그 최선의 방법이 잘못된 것을 알지 못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것이다. ‘잘못된 최선이 최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흔히 나의 기준으로, 나의 가치 판단으로, 나의 잣대로 상대방을 보고 이해하려 한다. 선입견, 편견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나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상대방을 나의 프리즘으로 관찰하고 고집부렸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 남편과 아이는 닭다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럼 왜 먹었냐고 물으니 ‘주니깐 먹었다’고 한다.
이럴 수가...
물어보면 될 것을..
그렇게 간단한 한마디였는데...
혼자 괜히 뿌듯해하고 혼자 괜히 서운해 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이치를 현실에서는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 날 이후 우리 집에서 배달치킨을 시키면 평화가 찾아왔다. 내가 닭다리 2개를 다 먹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당당하게, 맛나게. 하하하
최숙희의 소통레시피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되더라도 한 번쯤은 질문해 보세요. 나하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