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에게 왜 말을 못 알아듣냐고 하지만, 사실은 말하는 이가 말을 제대로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고도 사람들은 내가 개떡 같이 말해도, 네가 찰떡처럼 알아 들으란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애들에게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라고 묻고, "주인공이 역경 속에서도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같은 환상적인 답변을 기대한다.

그렇지만 애들은 "책이 두꺼웠다. 졸립다, 재미없다. 책이 비싸다."라고 대답하기 쉽다.
질문이 잘못되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인데도, 어른은 아이를 한심해 한다. 알고보면 그 어른이 한심한 것이다.

어른이 "이 책 주인공이 역경 속에서도 노력하는 모습이 어땠어?"라고 찰떡처럼 물어야, 아이가 "좋았어. 대단했어. 훌륭했어."라고 찰떡처럼 답변한다.

며칠 전 안과에 갔다.
작년에 눈이 침침하여 병원에 갔더니, 백내장 초기라고 하여, 그 후로 정기적으로 검진하고 있다.

눈알 사진을 찍으려고 촬영 기계 앞 의자에 앉았다. 앞에 있는 기계 턱받이에 턱을 얹고 이마를 붙이고 앞에 있는 렌즈를 응시하였다.

"편하세요?"
간호사가 내게 물었다.

(이런 자세가 편할 리가 있나? 찍기 편한 거야? 찍히기 편하냐는 건가? 오래 찍을 테니 자세를 편하게 잡으라는 건가?)
잠깐이지만 이런 생각이 오갔다.

"편한 기준이 뭐죠?"
"기계에 턱을 얹고 이마를 댄 것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아~ 예. 괜찮아요."

내가 기계에 턱을 얹는 것을 보며 묻는 것이니, 간호사가 처음부터 내게 "불편하지 않으세요?"라고 말했으면 내가 알아들었을 것이다.

"편하세요?"와 "불편하지 않으세요?"는 아주 다르다. 하루에도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환자를 통해 간호사는 두 문장의 차이를 알 텐데, 처음에 왜 그렇게 물어서 결국 한번더 설명할까?
그러고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간호사는 오히려 나를 답답해 하는 것은 아닐까?

각종 주장과 구호와 설득이 똑같다. 이쪽에서 정확하게 외쳐야 저쪽에서 제대로 알아듣는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요즘 왜 그래?"라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당신, 요즘 너무 늦게 들어오네?"라고 물어야 남편이 알아듣고 대답한다.

개떡 같이 물으면 개떡 같이 답변할 뿐이다. 내 탓이지, 상대방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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