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지기가 읽은 책

도서명: 초년의 맛     만화가: 앵무  출판사: 청비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6.13 지방 선거가 끝난 후 심심치 않게 듣는 말입니다. 당선된 분들이 당선사례로 내건 현수막이나 SNS 상에서 시정을 책임 있게 꾸려나가겠다는 각오를 그렇게 표현하곤 합니다.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엄중한 책임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재임 기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6.13년 지선에서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 분들이 임기 동안 시민들의 입장에서 멋진 시정활동을 펼치길 응원하며 특히 초선 의원들의 신선한 바람을 기대합니다.    

‘초년 – 일생의 초기, 첫 시기’(새국어사전/예림미디어)라고 사전에서 정의합니다. ‘초년’시절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네 인생 자체가 처음이죠. 인생을 두 번 사는 사람, 삶을 복습하는 인생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오늘을 두 번 사는 사람은 결코 없지요. 해서 우리네 인생의 매 순간은 초년이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매 순간이 초년이다’라고 할 수 있지만 특별히 더 초년스러운 ‘초년’이 있지 않을까요? 대학에 갓 들어간 신입생, 직장에 입사한 직장 초년, 막 결혼한 달달한 신혼 초년, 첫 실패를 경험한 어떤 순간, 첫 연애, 첫 실연, 첫 출산, 첫 학부모 등. 심지어 처음 경험하는 가족의 죽음까지도 말입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경함과 낯섦은 추억의 저편으로 자리 잡고, 바쁜 삶 가운데 잊고 살아가죠. 그러다 훅 치고 들어와 그 알싸한 추억의 조각을 호출하는 무엇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옛사랑과 듣던 노래, 걸었던 거리, 빛바랜 사진, 책갈피에서 떨어진 메모지 한 장 등이 그렇습니다.

앵무작가의 ‘초년의 맛’은 일상의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을 통해 초년의 기억, 삶의 의미를 담아냅니다. 좋아하던 육개장 앞에서 어린 시절 친구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날만큼은 육개장을 맛있게 먹을 수 없었던 이야기, 학창시절 도와달라는 친구를 애써 외면한 자책감에 초코파이를 먹지 못하던 주인공이 군대에서 용기를 내 동기를 도와주고 다시 초코파이를 먹게 된 이야기,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에 담긴 모녀의 이야기 등. 미소 짓기도 하고, 콧등이 짠해지기도 하는 우리네 아름다운 초년의 미숙한 이야기를 맛으로 그려냅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음식, 맛일지라도 나만의 이야기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인생을 담아내는 맛으로 추억이 됩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딸에게 “아빠랑 함께 먹은 음식 중에 기억에 가장 남는게 뭐야?”하고 묻습니다. 딸이 이상한 눈빛으로 “글쎄... 뭐가 있지?”라고 합니다. 살짝 서운한 마음이 스쳐지나가지만 나중에 딸도 “아빠랑 먹던 음식인데...”라고 추억을 말할 때가 있겠죠,

참!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임기 첫날 드신 음식은 무엇이였을까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억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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